^^^▲ <모항...>의 표지 ⓒ 열림원^^^ | ||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1년 다니다 때려치운 뒤 줄곧 농사를 짓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는 반농반어(半農半漁)민.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시와 산문을 긁적이는 시인. 그가 바로 박형진이다.
그는 지난 1992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봄편지'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다시 들판에 서서>란 시집과 <호박국에 밥 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이란 산문집을 펴냈다. 그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은 제목 자체부터 정겨운 고향내음에 푹 절어 있다.
왜 그럴까? 그는 전북 부안 변산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다. 터줏대감? 그는 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변산을 떠나보지 못한, 말 그대로 푹 익은 된장 같은 촌놈(?)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변산의 터줏대감'이란 단어가 별명처럼 늘 꼬리를 치며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그가 펴낸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열림원) 또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내음이 난다. 매운고추와 호박을 듬뿍 집어넣은 그 된장찌개. 그리고 금세 김이 모락모락나는 된장찌개를 한 그릇 듬뿍 퍼서 "맛이 어떨랑가 모르것소잉"하면서 우리들에게 건넬 것만 같다.
이 책은 모두 2부, '울퉁불퉁한 변산 사람들'과 '곡식 키우기나 자식 키우기나' 속에 '바다를 안고 사는 사람들', '가스라진 놈보다 모자란 놈이 좋제', '소주 댓병이면 치질도 낫더라', '솔섬학교와 매화반 학생들' 등이 토속적 언어를 통해 가지런하게 실려 있다.
표제에 나오는 '모항의 막걸리집'은 여느 시골동네의 길목에 하나쯤 있을 법한 그런 대포집이다. 이 대포집은 마을 사람들과 이웃 마을 사람들이 오며 가며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그런 집이다. 그래서 이 집에 들어가면 늘 넉넉한 웃음과 격렬한 논쟁과 꼬인 속내를 스르르 풀어내는 막걸리가 약간 엎질러져 있다.
이 산문집 속에 나오는 '봉니', '갑열이', '종태', '고막녀' 등은 모두 이 마을 사람들이다. "담뱃집 맴생이 양반, 눈끔쩍이, 고자리밥, 갑열이, 똑똑니, 오징개…. 나는 이 사람들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처럼 시인 자신 또한 이 책 속에서 '봉니'가 되기도 하고, '눈끔쩍이'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는 시인이 태어나 자란 부안 변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람 씹는 맛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 책 속에는 한나절은 들에 나가 농사를 짓고, 또 한나절은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변산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희로애락이라고 해서 대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런 계산적인 희로애락이 아니다. 이 고장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자연 그대로를 꼭 닮아 있다. 다시 말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그대로, 대자연에 순응하며 '꼬시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사실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그 말이다.
오빠와 신랑이 죽었을 때도 미친년처럼 히죽대다가 비만 오면 무덤가에 나가 마치 귀신처럼 해괴한 소리를 읊어대는 고막녀, 남의 배를 타다가 품삸을 받으면 하루 저녁에 술로 다 조져버리는 조지기,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신 뒤 조갈증으로 참기름을 물로 알고 마신 뒤 설사병을 앓다가 겨우 살아난 허석모.
술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뱃머리 나침반 속에 들어 있는 알코올까지 빼내 마신 기열씨, 닭똥집 좋아하는 군수를 대접하다가 군수 대신 닭똥집을 먹은 죄(?)로 좌천을 당한 박 면장님, 새참으로 콜라와 빵을 먹다가 콜라에 중독돼 목만 마르면 간장국 가져오라고 고함지르는 영만씨 등.
하지만 시인은 이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결코 자신의 잣대로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미친 년은 미친 년 그대로, 술주정뱅이는 술주정뱅이 그대로 그려낸다. 또한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시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4남매를 둔 시인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에도 귀가 솔깃해진다. 푸짐이, 꽃님이, 아루, 보리로 지어진 자식들의 이름 또한 전혀 꾸밈이 없다. 시인은 4남매에게 일종의 편짓글 형식으로 4자녀들이 탄생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를 자분자분하게 들려준다.
시인 정호승은 말한다. "그가 지닌 자연에 대한 소박함과 행복함을 조금쯤은 훔치고 싶다. 언젠가 그를 만나면 그가 직접 산 밑의 밭 한 귀퉁이에다 3년 걸려 지은 흙벽돌집에서 보리새우 양념젓에 상추쌈을 싸서 먹는 점심을 한 끼 얻어먹고 싶다. 모항 막걸리가 곁들여지면 더욱 좋겠다"라고.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는 물질문명으로 인해 점차 퇴색되고 사라져가는 우리네 고향, 그 고향에서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가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고향의 언어를 통해 이야기투로 풀어가는 글맛은 이 책을 읽는 이에게 두고온 고향의 향수에 퐁당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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