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부스 옆을 지나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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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 옆을 지나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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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것들에 대한 단상

어느 시인은 '공중 전화 부스 옆을 지나노라면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찾게 된다'고 했다. 이제는 시인의 그 말조차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지나다가 공중 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역광장의 줄지어 서 있는 공중 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시나브로 공중 전화 안에 드나드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 두어달 전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텅 빈 공중 전화 부스를 비춰 주며 전하는 뉴스를 보았다.

역광장에 서 있는 여러 개의 공중 전화 박스는 텅 비어 있었다. 나도 한때는 공중 전화 부스 앞을 지나노라면 걸음이 저절로 멈춰지곤 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 때라도 전화 해도 몇겹의 서론이나 겉치장을 둘러 대지 않고, 맨 얼굴과 벗은 발을 보이듯 속살과 속 마음을 바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편안한 벗이 혹 없을까 떠올려 보느라 골똘한 얼굴로 공중 전화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냥 지나쳐 가던 날들이 있었다.

다른 수식어를 나열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마음 편안한 사람,아무 때라도 전화 해서 내 속 마음을 열어 보여도 흉 보지 않고 비밀한 일을 남에게 옮길까봐 말을 하고 나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 없을까 하고 서성거리곤 했었다.

가을날, 스산하게 바람이 불어대는 날, 떨어져 내린 마른 나뭇 잎새가 가릉 가릉 소리를 내며 뒹굴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가슴 뜨뜻하게 뎁혀 오는 이름 하나 없을까 걸음이 멈춰지곤 했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는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중략)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로 찻길을 거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되미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유유함을 느끼에 될 게다.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다.

요즘은 휴대 전화가 일반화 되다보니 공중 전화에 가서 전화 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길을 지나 가면서도 울려 대는 휴대 전화를 주고 받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큰 목소리로 휴대 전화를 주고 받는 것이 흔한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 장소에서 조차도 여기 저기서 울려 대는 것이 휴대 전화다.

마치 공중 전화 부스 안에라도 들어가서 통화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의식 하지 않고 떠드는 목소리를 듣는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공중 전화를 많이 사용하던 때에는 전화를 지정된 장소에서 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휴대 저화가 넘쳐 나는 이 세상에는 어느 장소와 때를 막론하고 사적 공간이 된 듯 하다. 소음으로 넘쳐난다.

얼마전, 태풍 매미가 남부 영남 지방을 관통하며 지나가면서 사정없이 핥퀴어 놓았다. 아직까지도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복구 소식들이 들려 오고 있다. 태풍 매미는 그냥 지나 갈 수 없다는 듯이 우리 집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다른 큰 피해 상황들을 들어 보면 아주 경미한 흔적이다. 가게 샷다문을 우그러뜨려 놓았던 것이다. 덕분에 이틀 동안 가게문을 열지 못했다.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곳들이 많았던 관계로 샷다 가게는 정신 없이 바빴다.

사람들이 태풍 피해 때문에 덕본 곳은 유리집하고 샷다 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 전화도 정전으로 인해 안되고 휴대폰 역시 안되어서 하는 수 없이 공중 전화 부스로 갔지만 역시 불통이었다.

즉각적으로 전화 통화가 가능 했던 그동안의 생활에서 전혀 전화 통화가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 답답함과 막막함이란...

갑자기 60년대 초로 돌아간 듯 했다. 옛날 사람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급한 일이라도 생길 때면 금방 연락이 닿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몇일,혹은 몇달이 지나야 소식이 겨우 닿곤 했던 옛날엔 참 힘들었으리라.

지금은 즉석 시대다. 편리한 통신 시설로 인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손다박 안에 들어오는 작은 휴대폰으로 즉각적인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기도 전화도 없던 시절에는 기다림이 익숙한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한 마음들이 소음을 일으킨다.

공중 전화 부스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던 시절도 지났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움직이느 시대에 살고 있다. 즉각적인 정보들을 즉석에서 진설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가 현대 사회다.

가을이다. 가로수 옆에 서 있는 공중 전화나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공중 전화 부스 앞을 지나다가 문득, 발걸음이 멈추어지고 가슴 따뜻하게 뎁혀 오는 그런 이름 하나 있거든,

공중 전화 부스 안에 들어가 보자. 익숙한 혹은 기억에서 아슴 아슴한 전화 번호를 떠올리며 신호음을 보내자.바다를 보며 전화를 하고 있어...공중 전화 부스 옆에 서 있는 나무의 다풍이 너무 곱구나...'하면서 그 마음에 노크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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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2003-09-25 11:39:21
기자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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