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여자를 끄는 최고의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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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여자를 끄는 최고의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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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戀愛論>

김민웅은 나와 대학동창생인데 내가 알기로는 아마 그 방면에, 그러니까 연애에 대해서는 대단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김민웅이 목에 힘을 주며 주장하는 것이지만, 인생의 가장 깊은 핵심은 정(情)이며 자기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연애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며 느물거렸다.

하기야 이 세상의 남자 치고 젊은 시절에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과식은 위장기능을 저하시키고 과음은 간장을 위협하듯이, 연애에 열중하다보면 가정파탄은 물론,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할 때 그의 건전치 못한 사고방식은 도저히 좋게 봐 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김민웅에게는 엄연히 처와 자식이 있고 큰애가 고등학교에, 그 밑에 작은 애와 막내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3남매의 가장으로서, 그러한 도가 넘친 여성편력에 대해 눌러 백 번을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깨지려는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고 권태를 몰아내기 위해 가끔가다 외도를 하는 거에 대하여는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그것을 일삼으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여간 마뜩치 않았다.

김민웅에게는 속시원이 풀어야할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마흔 다섯이라는 중년나이인데도 아직 젊은 기분에 , 20대의 발랄한 청춘에 매달려 있었다.

"이제 그 방면에서 은퇴할 때가 됐잖아?"

한 달 전이던가, 어느 날 토요일 오후 카페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슬쩍 떠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두어 번 흔들더니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나를 무시하려 들었다.

"인생을 보다 멋지게, 정열적으로 살고 싶어. 여자를 통해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구!"

그의 정신 못 차린 나르시스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여자를 통해서 인생의 진미를 체험하겠다는, 아직 꿈에서 덜 깬 그의 지론은 내 잔잔한 가슴에 큰 물결을 만들었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그렇게 덜 깬 상태로 언제까지나 푹 빠져있을 거냐고 다그치며 물었다.그는 동해물이 마를 때까지 라고 대답했다. 물론, 억지소리겠지만 그의 연애에 대한 신념은 고집에 가까울 정도로 일직선 이었다. 술기운이 오른 그의 얼굴은 저녁놀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김민웅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열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하더니 그 동안 사귄 여자가 대략 열 손가락의 제곱은 될 것이라며, 그것도 자랑이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며 자만을 떨었다.

나는 충격적인 그의 말을 듣고 마시던 술잔을 떨어뜨렸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크게 벌렸으며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의 넘치는 정력에 감탄했고 능란한 수완에 감탄했으며, 대학시절 B학점 이상을 취득해 본적이 없는 보통수준의 두뇌인데도 너스레를 떨며 그 많은 여자들을 낚아 올렸다는 사실에 또 한번 감탄했다.

그는 끝이 안 보일 만큼 아직도 창창했고 자신 만만했으며 봄과 더불어 파릇파릇 돋아난 새순처럼 연분홍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살아 온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억울하지도 않았고, 바보처럼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나도 기회가 없어서 그 축에 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넉살좋은 김민웅처럼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방면에 취미를 붙였다면 아마 그가 거둔 것보다 더 앞섰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니, 쿡쿡 웃음이 나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숫컷으로서 강인함을 한번쯤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아름다운 얼굴에 탐스런 몸매를 가진 여성을 보면, 군침을 삼키며 친밀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섹스란 남녀간의 뜨거운 피를 활기차게 하는 상호향상 운동이라고 어느 생리학자가 말했다지만 이성간의 사랑처럼 감미롭고 짜릿한 맛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김민웅은 한 세기를 앞서가고 있었다.

보험회사 부장자리에 있으면서, 그렇게 많은 여자들과의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신분상의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고 용케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은 축복일 수도 있었고 정말이지 잘 봐준 하느님의 덕분이었다.

여자가 바람을 피울 정도라면 자기의 비밀도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고, 예쁜 여자와의 사랑은 보약이상의 효과가 있으며, 한번의 연애는 30분간의 아침 운동에 해당된다며, 나 같은 친구는
재수 없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공박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지만 실은 나도 가끔가다 만나서 부담없이 서로 즐기는 베스트 파트너가 있었다. 서로 뒤돌아보지 말자며 마지막 헤어지는 날 그녀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피력했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이혼을 피하기 위해서 나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알쏭달쏭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지금까지도 이해 못하고 있다. 어떻든 간에 나는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그 방면에서 얼른 발을 뺐다.

김민웅처럼 연애를 무슨 평생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연애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하기야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누가 들을까봐 겁이 난다. 모두들 그 방면에 한 몫씩을 하고 있었다.

여자고등학교 교사인 H는 졸업한 그의 제자와 슬쩍슬쩍 놀아나고 있었고, 출판사에 다니는 M은 같은 사무실 직원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대학강사인 K는 고속버스를 같이 탄 것이 인연이 되어, 만난 지 3시간만에 섹스에 진입하는 , 그야말로 그 방면에 초스피드의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었다.

연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김민웅의 지론처럼 인생에 활력을 불러 넣어 주는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김민웅의 여자유혹에 대한 연기 또한 대단했다. 60년대의 영화계를 주름잡던 최무룡이나 신성일은 저리 가라 였고, 80년대의 톱스타 안성기는 쪽도 못썼다. 더구나 그의 여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심장을 찌를 만큼 신선하고 깊이가 있었고, 때와 장소에 따라 구사하는 임기웅변은 상대여자를 축축하게 만들어 놓고도 남았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최상의 연기로 각색 연출 주연배우로서의 1인 3역을 거뜬히 해내는 아주 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연기를 하기까지에는 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내가 비아냥거리자 그는 피식 웃더니 열 아홉 살 때부터 갈고 닦은 기량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라고 예사롭게 말했다.

"도대체, 여자를 끄는 최고의 무기가 뭔가?"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들유들하고 매우 두꺼웠다.

"맨입으로 되나. 다년간 투자한 건데."
나는 금방 산 '플레이보이 잡지' 한 권을 슬며시 그에게 디밀었다.그러자, 그는 넌덕스럽게 웃더니 대중 앞에서 무슨 명언을 낭독하듯이 갈파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정복당하기를 기대하며, 남자 못지 않게 즐기고 싶어 하느니라.

그는 아주 그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 후, 그의 바람기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은 되게 추운 날이었는데, 나는 여느 날 보다 일찍 귀가하기 위해, 건너편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려고 지하도 층층대를 내려가다가 정말 우연히 김민웅을 만났는데, 그는 오랜만이라면서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잡아끌었다. 그렇게 끌려 찾아간 카폐는 연자방아를 비롯해서 반다지,삼태기,절구,멍석,함지박,짚세기 등으로 실내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마음에 쏙 드는 분위기였다.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런 카폐가 있다는 것이 여간 흐믓하지 않았다. 우리는 앉자마자 드라이진을 시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뒤집었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김민웅은 곤드레 만드레가 되자, 왜 바람을 피우는지에 대해서 중대한 발표를 했는데,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마음에 경련을 일으키며 그만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실은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지……." 그의 숨김없는 목소리는 너무나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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