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안'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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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안'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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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양성우 열한 번째 시집 <물고기 한 마리> 펴내

 
   
  ^^^▲ <물고기 한 마리>의 표지
ⓒ 문학동네^^^
 
 

""어쩌면 아직도 흔들리는 내 삶 속에서 단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마저도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고이는 시의 샘물을 부단히 길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나를 자극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탓으로 나는, 비록 온갖 유혹과 절망과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거듭하여 상처받고 넘어지면서도 결코 시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1975년 YWCA에서 '겨울 공화국'이라는 시를 낭독, 광주 중앙여고 교사직에서 파면되었다가, 1977년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시 '노예수첩'을 게재한 죄 아닌 죄(?)로 투옥됐던 시인 양성우(59)가 열한 번째 시집 <물고기 한 마리>(문학동네)를 펴냈다.

2000년 1월, 열 번째 시집 <첫 마음>을 펴낸 이후 3년 6개월여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은 그동안 현실과 맞닥뜨리는 강인한 이미지 대신 깔끔하고도 잔잔한 서정으로 넘쳐난다. 즉, '밖'의 세계에서 '안'의 세계로 천천히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악 솟아오르는 죽순처럼 꼿꼿했던 시가 대나무처럼 부드럽게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동안 양성우의 시세계는 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짱돌과도 같았다. 또한 그러하면서도 늘 사람에 대한 '사랑'과 무언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 '사랑'과 '그리움' 때문에 시인은 온몸으로 이 세상과 철저하게 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그동안 '밖'의 세계에서 거침없는 언어를 토하던 시인은 이제 그 '밖'의 세계를 끌어안고 '안'의 세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때 국회의원을 하기도 했던 시인. 그 시인이 목소리를 낮추고 '안'의 세계로 들어가서 바라본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안'의 세계. 그 '안'의 세계에는 제일 먼저 시인 자신의 지나온 삶을 비추어주는 대형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사랑과 열정, 그리움과 후회, 상처 등이 흑백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시인은 그 흑백필름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들추어 내며, 무욕(無慾)과 무념(無念)의 세계를 체득한다.

이른 봄날 반구정에 오르다.
옛정승 황희가 빈손으로 돌아와
물새들과 놀던 곳,
아직도 잔 물결 반짝이며 흐르는
강언덕에 서서
벼슬 높은 도둑들로 어지러운
이 시절을 한탄한다.
차라리 하루 세 끼니 거칠고
비 새는 초가지붕 찬 구들일망정
늘 스스로 만족하던 그.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티없는 이름 앞에 옷깃을 여미며,
힘 가진 큰 도둑들로 인하여
기우는 이 나라를 근심한다.

('반구정에 올라' 모두)

신경림 시인은 말한다. "양성우의 시들은 대체로 사랑의 시, 그리움의 시로 읽어서 잘못이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의 모든 시에 아름답고 값진 것에 대한, 참된 것에 대한, 그리고 이웃과 우리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이미지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고.

그렇다. 양성우는 이제 그동안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그만의 시의 밭에서 풍년가를 부르며 시의 알찬 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신경림의 지적처럼 그 열매는 "미숙한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온갖 간난과 신산을 겪고 난 뒤의 성숙과 구체성을 가지고 나타나고 있어" 더욱 알차고 달착지근한 그런 열매다.

그래. 비바람이 강한 여름을 통과하지 못한 과일이 어찌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을 만날 수가 있겠는가. "한때 현실 정치에 몸을 담았던 체험이 그의 시를 성숙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고 신경림 시인이 강조했듯이.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거칠다고 하여도
한순간의 입맞춤이 벽을 허물고
두꺼운 얼음을 녹인다
사랑이 어찌 몸 하나만의 일이냐?

('길 위의 사랑' 몇 토막)

몸과 마음. 몸이 모질고 거친 이 세상이라면 마음은 그 세상과 입을 맞추는 따스한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계산도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이 세상의 온갖 풍파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시인은 '안'의 세계에서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이 세상을 보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그래. 이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거칠"어도 "한순간의 입맞춤이 벽을 허물고/두꺼운 얼음을 녹"일 수가 있다는 것을. 또한 그 벽을 허물고 얼음을 녹이는 "사랑이 "몸 하나만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잊지 마라.
물 밑에 물이 흐르고
이미 흔적도 없이 아득히 사라진 꿈 뒤에도
또다른 꿈들이 따라오는 것을"

('동막리 일출' 몇 토막)

그리고 시인은 도인처럼 나즈막하게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속삭인다. "물 밑에 물이 흐르고/이미 흔적도 없이 아득히 사라진 꿈 뒤에도/또다른 꿈들이 따라오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고. 그렇다. 언제 시간을 내서 밭에 나가 풀을 한번 뽑아보라. 풀 뿌리까지 깨끗하게 뽑았다고 해서 그 밭에서 다시 풀이 나지 않던가.

그래. 지금 내 앞에 내가 증오하는 그 어떤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그 대상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내가 그 어떤 일로 인해 희망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얼마 지나면 희망이 사라진 그 빈 자리에 또다른 희망의 싹이 꿈틀대며 피어오르지 않던가.

마음이 고운 이가 오는가보다
작은 새 대숲에 울고
앞뜰에 매화꽃 봉오리 머무니
새순같이 티 없고 여린 이가
오는가보다
<중략>
빈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에도
얼굴이 붉어지니
가슴이 따뜻한 이가 오는가보다

('매화의 추억' 몇 토막)

그렇다. 그 절망의 나날을 뚫고 솟아오르는 희망의 싹이 꿈틀대는 바로 그 자리, 그 자리에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곱고, "새순같이 티없고 여린 이가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휑 하니, 마른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 설레임 속으로 내가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가슴이 따뜻한 이가"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집 표제가 된 <물고기 한 마리>는 바람소리에도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시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왜? 그는 늘 이 세상의 아픈 상처를 감싸주는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 순례자의 시선이 만리포와 도솔암을 거쳐 반구정, 선운사, 대포항, 소래포구 등 우리 나라 곳곳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우수수 잎 지는 숲길을 간다
이 찬바람이 쓸쓸함을 몰고 오는 것을
모른 척하기에는
이미 내 상처가 너무 깊다
한 세월 티 없이 마음을 나눈 사람들은
다 떠났느냐?
('마른 잎 혼자 밟으며' 몇 토막)

시인 양성우의 열한 번째 시집 <물고기 한 마리>는 '안'의 세상을 통한 바깥 세상 읽기다. 이는 연어가 시내를 거쳐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평생을 바다 속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다시 처음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다시 '밖'으로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안'도 '밖'도 사라지고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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