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스, 독무덤과 호화분묘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우스, 독무덤과 호화분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산하가 죽은 자의 묘지로 변해 간다

명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귀향한다. 금년 중추절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차례와 성묘를 위해서 민족대이동을 하였다. 매년 이러한 반복성이 생기는데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제례문화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 중에 묘지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국토가 많은 묘지로 변한다. 분묘는 사람의 시체, 유골을 땅속에 파묻은 곳으로 옛날에는 봉분도 만들지 않았고, 나무도 심지 않았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었고, 농경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분묘는 중국의 주나라 대에 처음으로 생겼다. 신분에 따라서 천자는 높이가 21척이고 제후는 그 절반이며, 대부는 8척 등으로 하였다. 그 형태도 집처럼 높은 것, 제방처럼 긴 것, 토끼모양을 한 것이 있었다.

지금처럼 원형의 것은 없었고, 일반 서민들은 봉분을 만들 수가 없었다. 무덤 위에 심는 나무도 신분에 따라 달라서 천자는 소나무, 제후는 잣나무, 서민은 버드나무를 심도록 하였다.

우리나라는 주로 매장과 화장을 하여 왔다. 독무덤은 신라와 백제의 초기 무덤에서도 보이는데 복장제에 따라서 처리된 유골을 매장한 것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을 하였다가 살이 썩은 후에 그 뼈를 골라서 독에 넣어서 매장하는 방식이다. 지금의 납골당 전신이 된다.

나우스(naus)는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고대의 매장 시설로서 '배'를 뜻하는 이 말은 그리스에서 따온 말이다. 이슬람교도 이외의 매장 시설에 붙인 이름으로 조로아스터교도가 시체를 새나 짐승의 먹이로 한 뒤에 그 뼈를 담은 그릇을 두기 위해서 벽돌로 만든 배 모양의 건축물로 뼈 단지를 안치하였다.

세계의 장례문화는 나라와 민족마다 다르다

또한 생전의 업적을 금석에 새겨서 무덤 한쪽에 파묻는 묘지명도 한나라 초기 때에 시작되었고, 후기에 와서 무덤가에 석마를 두는 습속으로 석인 석양을 진열하였다. 무덤에 명기, 보물, 석상 같은 것을 같이 넣고 묻어서 그 신분의 정도를 나타냈다.

그러한 것이 후세에는 역작용으로 변해서 도굴범이 생기고 이를 막는 묘비지기까지 생겼다. 무덤을 관리해 주는 댓 가로 농지의 일부나 묘지의 일부를 무료로 경작하게 하지만, 정말로 웃기는 제도가 된다.

우리 민족은 조상의 뼈를 존중하는 관념이 매우 강한 민족이다. 타향에서 죽거나 외국에서 죽어도 그 뼈만은 조국에 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생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예전 사람들 역시 죽어서도 저승에서 생활을 계속할 수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맹목적인 조상숭배 사상으로부터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는 풍습과 호화스러운 분묘치장을 성행하게 한다. 인간이 죽어도 혼령만은 살아 있다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이 존재해서 좋은 명단자리를 찾는다.

봉건통치자들의 위선적인 유교적 도덕규범도 그렇게 만들었고, 개인별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 성의에 대한 감정도 그렇다. 효도라는 도덕적 규범이 과장되고 절대화되어서, 부모의 죽음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쳐서, 허례허식, 번잡성, 형식화를 가중시켜왔다.

그러한 조상숭배 사상은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해서 봉분의 크기나 비문을 세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이 사는 과정에서 생기는 길흉사도 조상의 묘지와 관련해서 생각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흉사가 생기면 산소자리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지관에게 의뢰하여 다시 산소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고 모든 것이 잘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올바른 매장의 방위와 지세 등을 점치는 미신을 맹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부부는 반드시 함께 묻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고, 남편은 왼쪽에, 아내는 오른쪽에, 첩은 모두 남편의 오른쪽에 묻어야 하는 격식도 그렇다. 한 사람만을 묻는 무덤을 가급적 피하여 집단화하고, 처녀가 약혼했으면 약혼자 무덤에 묻고, 약혼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총각과 명혼을 시켜서 까지 합장해서 적은 국토활용에 더욱 장애를 준다.

또한 자살자, 전사자, 사형자, 객사자, 천재지변에 의한 사망자 등은 흉사라고 하여서, 그 영혼을 산소자리로 다스리려고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유귀가 잠들지 못하고 방랑하면서, 여러 가지 장난을 부리거나 질병을 퍼트린다고 믿어서, 반드시 위령제를 지내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산 하나를 통째로 사서 지관을 불러서 산소자리를 잡고, 관, 비석, 장석 등을 최고의 것으로 쓰고 호화롭게 치장한 묘지가 있다. 그러나 일반 서민은 공동묘지나 공원묘지에 매장하거나 화장을 하고 있어서 서로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요즘 화장을 권유해서 많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불교식으로 화장을 해서서 그 탄재를 강물에 띄우거나 산 속에 뿌리기도 한다. 공원묘지가 늘고 화장이 크게 확대되지 않는 것은 국민생활수준과 관련이 있어서 다소 여유가 있는 쪽이 더 적극적이지 못하다.

또한 근대산업화 추세에 따라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묘지의 규제는 토지이용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필요하고, 도시계획의 일원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국토가 협소해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택지를 형성하거나 도로를 건설하는 데도 묘지의 합리화 방안이 필요하다. 명절날 성묘문화정착과 토지경관의 견지에서도 그러하다.

죽은 자의 영혼불멸을 믿고 이에 따라서 시체를 매장한다. 이러한 풍습은 아주 오래 전인 선사시대부터 있었고, 그 뒤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분묘를 만들었다. 시체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였다.

신석기 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집 근처의 땅속 및 조개더미 밑에 묻었지만 처음에는 봉토하지 않았다. 주로 돌로 꾸미는 방법을 썼지만 최초의 것은 뚜껑도 바닥도 없었다. 자연석을 직사각형으로 둘러 세우고 그 속에 시체를 안치하는 환석묘이다.

이것이 여러 형태로 변하여 고인돌이라고 불리는 지석묘, 괴석으로 관을 만들어 흙 속에 묻는 돌무덤, 그리고 구덩이를 파고 묻는 널무덤과 독무덤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역시 분묘의 대개가 고려시대의 것과 유사한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가 있다.

고분은 과거나 현재의 무덤 중에서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분묘를 말한다. 고분에는 땅속에 파묻은 토장, 물 속에 넣는 수장, 지상에 시체를 노출시켜서 썩게 하거나 짐승에게 먹게 하는 풍장, 불에 태우는 화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무덤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현재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구석기 시대 중세기부터이다. 약 7-8만전의 것이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당시는 땅을 약간 파고 묻기를 한 것이 그 형태다.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은 자기 집단의 성원으로 죽은 뒤에도 인정해 주려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이 사는 동굴바닥에 묻고 흙이나 나무 가지, 짐승의 뼈로 덮었다. 그리고 일정한 도구와 음식을 함께 묻었다.

고대 주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령만 남기 때문에 저승에 가서도 다시 현실 세계와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승에서도 생활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서 여러 가지 장식물, 그릇 음식물 생활용품을 함께 무덤에 묻었다.

우리나라는 주로 매장과 화장을 하여 왔다. 독무덤은 신라와 백제의 초기 무덤에서도 보이는데 복장제에 따라서 처리된 유골을 매장한 것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을 하였다가 살이 썩은 후에 그 뼈를 골라서 독에 넣어서 매장하는 방식이다.

독 안에 시신 전체를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지금의 납골당의 전신이 된다. 고구려나 백제 시대에는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상복을 3년 동안이나 입었고, 신라는 왕이나 부모처자가 사망한 경우에 상복을 일년만 입었다.

일본 훗가이도의 아이누 족은 토장을 하는데, 묘혈은 인체를 넣을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로만 판다. 만일 크게 파면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또다시 사람이 죽게 된다고 믿어서 그렇게 했다. 사할린의 아이누 족은 보통 시체를 거적으로 싸서 묻고 널을 쓰지 않지만 지붕모양의 널을 이용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카자흐족은 측면에 감실을 가진 묘혈에 토장을 했다. 부장품 없이 시체가 흙에 닿지 않도록 헝겊으로 싸서 감실 안에 안치한다. 베트남의 산악지대에 사는 화전민인 라데 족은 무덤을 분구 형으로 만들고 무덤 옆에 조그만 집을 세우고, 매장후 3일 후에 무덤 근처에서 물소를 잡고 연회를 한다.

유럽의 무덤은 카돌릭교 지역이 다소 화려하고, 그리스도교 지역이 조금 빈약한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그 차이가 크고 공통점이 많다. 프랑스는 한 장의 석관에 한 개의 십자가를 만들고 짧은 비문이 전부이지만 때로는 흉상을 장식하기도 한다.

북아메리카 애리조나의 호피 족은 시체의 머리에 가면을 씌우고 성장을 시키며, 새털로 장식을 한 다음에. 거적 모포로 싸서 절벽 아래에 둥근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아프리카 우간다 농경민인 간다 족은 묘혈을 파고, 나무 껍데기를 깐 침상을 만들어서 그 위에 시체를 안치한다. 때로는 무덤 위에 지붕을 이은 봉분을 만들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술, 가축 등의 공채를 받기 위해서다.

비석의 시초는 지금의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비석의 유래는 중국에서 제래 때 희생으로 바쳐질 동물을 매두려고 만들었던 돌 말뚝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장례 때 관을 매달거나, 광내에 시신을 공손히 내려놓기 위한 목적으로, 묘방을 사방에 세웠던 돌이다.

이것을 비석으로 부르게 된 것은 전한 말기나 후한 초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비석이 언제부터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구려 때 광개토왕비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 묘지의 역사는 매우 길어서,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죽음의 신, 오시리스에게 사자의 성명, 혈통, 관직을 적은 <사자의 서>가 있다. 이것을 미라와 함께 매장하였는데, 사후 세계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두루마리로 된 파피우스, 가죽 등에다가, 성각문자 등으로 적어서 시신과 함께 묻었다. 사자는 사후 세계에서 여러 가지 사건에 부딪친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는 주문이나, 신들에게 서약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내세관을 아는데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고대 로마나 그리스 의 묘지는 묘비 형식이 많다. 묘비명은 고인의 명문이나 시문을 기념한 것으로 BC5세기 페르시아전쟁의 명예로운 전사 들을 애도하는 시모니데스의 작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묘비명은 다른 기념 각문과 함께 발달하여 '에피그램' 이라고 하는 문학장르의 일부를 이루기도 했다.

로마의 묘비명은 그리스와는 달리 단순한 사실만을 새겼는데 주로 지나가는 사람만의 주의를 끄는 말 등이다. 문학적인 묘비명에는 작자의 시대와 취향에 따라 깊은 슬픔을 나타낸 것이 있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있으며, 냉소적인 것이 있기도 하다.

묘갈은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럼한 작은 돌비로서 죽은 사람의 사업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세운다. 옛날에는 묘갈과 묘비가 같이 통용되었으나, 후세에 와서 벼슬 등급에 따라서 명칭이 구별되었지만 실제로는 크게 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