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많이 온다고 분위기 잡았던 신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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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많이 온다고 분위기 잡았던 신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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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가르쳐준 교훈

새벽 2시에 눈을 떠야 하는 극도의 고통을 겪는 신문배달부에게 추석 연휴의 3일간의 휴무는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연휴 전후의 신문이 정말 신문지(?) 수준의 두껍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도합 5일을 아주 편안한 휴가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토바이 뒤에 신문을 실었을때 보통 때의 1/3 정도의 높이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학교 개강과 더불어 좀처럼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다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의미에서 더욱 의미 있는 날들이었습니다.

특히 올 여름은 가히 비와 함께한 신문배달부의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어 휴무가 이처럼 감미로운 것도 같습니다. 6월부터 족히 40일은 넘게 비가 왔다고 하니 말입니다.

때로는 엄청난 비를 그냥 맞으면서, 때로는 배달 도중에 갑자기 퍼내리는 비를 야속히 생각하면서, 어떤 날은 비닐 작업하는 기계가 고장 나는 설상가상의 사태가 벌어지고 또 어떤 비 오는 날엔 신문수송 차량이 사고가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도 6월 말 경에는 비에 손이 미끌어져 상가 셧터에 손가락이 째져 여덟 바늘을 꿰메는 나름대로의 중경상(?), 그리고 얼마 전에는 너무 불어난 물이 상가를 덮쳐 상가 안의 온갖 음식물 기름을 도로 밖으로 유실한 것에 기인하여 오토바이가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져 오토바이 마후라(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표현)에 종아리 부분이 화상을 입어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피부과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가슴 아픈 여름의 추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매미'가 남겨둔 흔적을 보니 제가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즐기고 있었던 '빗속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였는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태풍 '매미'는 유리창을 박살내버렸고 나무들을 뽑아버렸으며 도로를 들추어놓았고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저지대 서민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잠시나마 하는 순간에 상가를 들이닥친 해일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가져갔습니다.

엄청난 무게의 크레인이 무너져 국가산업이 위험할 지경이며 곳곳의 정전과 단수는 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공포와 함께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태풍 '루사' 로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이제나마 재기의 몸짓을 추스리는데 '매미'는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연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한반도를 집어삼킨 흔적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저 우리집은 유리창 몇 개 파손으로, 안테나 쓰러진 것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저의 모습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연휴의 마지막을 도심지의 네온사인에 묻혀서 보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어제 새벽에 신문을 돌리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서울은 그저 뉴스로, 신문으로 이런 소식을 들을 뿐입니다. 어떻게 나라 한 곳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재해의 현장이 존재하고 있고 또 한 곳은 전혀 상관없는 '쾌락의 도시' 일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좀 온다고 그저 짜증 부렸던 저 자신에게 많은 반성을 합니다. 근데 그 짜증이 싫어서 비가 오는것에 분위기 잡았던, 쏟아지는 빗줄기에 기사 아이템이나 찾았던, 또 그것을 낭만으로 생각한 저 자신에게도 반성을 해야 하겠습니다.

저의 짜증이, 저의 낭만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실로 '매미'가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비가 오는 날은 짜증을 내면서, 또 그 짜증이 싫어서 나름대로 웃으면서 신문을 돌려야 하겠죠.

그러나 가족을 잃은, 집을 잃은, 자식같은 가축을 잃은, 온갖 정성을 다해 기른 한 해 농사를 잃은 그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짜증'과 '낭만'의 조화를 찾고 있는 저 자신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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