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실버] '공원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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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실버] '공원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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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까지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까지는 도보로 20분이면 족하다. 그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면, 길옆에 늘어선 노점상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이 코앞이 요즘 천 원 짜리 한 장 값의 검정색 장갑과 유행 지난 목도리가 삼 천 원에 판매되는 노점상이 여럿 서 있다. 이는 상당수 노인들의 패션이 이곳에서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어디선가 주워온 듯한 낡은 겨울 외투를 이 만원 안쪽에 파는 노점상도 있다. 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뒤척이는 사람은 모두 노인들이다. 하지만 선뜻 사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길거리 구경도 오늘 하루 긴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 밀 듯 탑골에서 종묘로, 종묘에서 탑골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노인들은 어느 정도 해가 뿌려지면 대부분 종묘공원에 멈춘다. 무임 승차에 몸을 싣고 아침바람이 끝나는데로 집을 떠났을 것이다.

거기에 손에 들린 생활정보지는 오는 길에 뽑아들었을 것이다. 차가운 벤치에 그나마 이런 신문은 이래저래 많은 도움이 된다. 불편한 몸을 끌고 뒤늦게 오는 친구의 자리를 맡아주기에도 좋고 무료 급식을 타서 잔디밭에 깔고 먹기에도 좋다.

"아침이야 먹었지. 그 나마라도 먹고 나와야 덜 춥다구..." 이젠 찬바람과 세월에 거칠어진 손으로 추위에 아랑곳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 만 남았다. 이곳의 노인들에게 시간은 활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뭘 하긴, 그냥 여기 있다 가는 거지. 장기판 벌어지면 훈수 좀 두다. 나도 한 판 두다. 그러다 밥 먹고..." 장기를 두는 표정에는 아직 총기가 서려있다. "뭔들 못 할까. 다 할 수 있어. 자식들이 마다해서 내가 이러고 있지. 나도 젊었을 때는 사람 꽤나 부렸다구." 이는,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의지가 아닌, 일을 하고 싶은 열정의 다른 표현이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노인들이 하나둘 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종묘공원 입구의 한 쪽 공터에 무료 급식 차가 서고 시계탑 광장에는 무명 트로트 가수의 자선공연이 시작된다. 비집고 들어서서 구경을 하는 노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천진하다.

사회자가 구경꾼을 향해 나이를 묻자 손을 번쩍 번쩍 들어올린다. 그러다 신분증으로 나이를 확인하려 들면 이내 주춤하며 숨는다. 사회자의 짓궂은 질문에 '동사무소에 불이 났다'고 둘러댄다. 그래도 한 손에는 카세트 테잎 하나를 선물로 받아 쥐고 내려온다. 오늘은 횡재한 날이라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마나님 줄 거야? 애인 갖다 줄 거야?" 다른 노인이 샘이 나서 한마디 건네지만, 곧 다른 노인에게 일,이천원에 흥정이 되어 진다.

급식 차가 선 작은 나무숲 사이로 무료 급식을 먹는 노인들의 무리가 멀리서 보면 흡사 검고 작은 둥지 같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넬 수도 없이 조용하다. 그 뒤로 일본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내려 종묘공원에 입장한다.

이 곳 노인들의 눈빛은 두개로 나뉜다. 바라는 눈빛과 포기하는 눈빛. 쉴 새 없이 자신에 대해 항변하며 포기하지 못하는 눈빛과 이미 자신들이 설 곳이 없음을 알고 포기하는 눈빛이 섞여 있는, 그래서 싸움과 톤 높은 목소리로 그 생명을 지탱하려 이 곳에 모여드는 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곳으로 오다보면, 세상과 부딪치고 있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들에겐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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