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기념일에서 제외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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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기념일에서 제외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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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사태를 재조명 한다

5.18 광주사태가 지금은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되여 국가 기념일로 치뤄 지지만 아직 국가 기념일로 지정 되기에는 풀리지 않은 몇가지 의문사항들이 있기에 국가기념일로 지정 되는것은 제외 되거나 보류 되어야 한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광주사태 직접 가담 통치권자들의 정권하에서 5.18 사태가 평가 된다는 것은 그누가 봐도 편향적 평가가 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객관적 평가로 따져 본다면 5.18은 민주화 운동이라기 보다는 광주 폭동이나 광주사태가 더 옳은 표현이다. 사태의 원인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전두환 군부의 계엄군에 의해 먼저 발포 된것이 사태의시초 라고 말하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5.18 이전에 벌써 일부시민들에 의한 군인들 폭력 사건이 있었으며 80년 봄이라 불리던 당시의 정국 상황은 박대통령 서거를 틈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씨의 정권욕 싸움이 광주사태를 불러온 최초의 화근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김대중은 정권 수탈을 위해 최초로 지역 감정을 이용한 망국적 싸움을 전개했고, 전국으로 번진 이들의 정권 다툼에 국정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혼란의 시기였던게 사실이였다. 당시의 보안 사령관 전두환은 정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시범 타켓 도시를 선택하는데 광주가 재수없게도 본보기가 됐다고 본다.

광주사태의 발발 원인도 이렇게 확실치 않은데도 아직 확증되지 않은 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지정하고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여 국가적 차원의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당시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다 억울하게 시민군들에게 희생당하여 가해자란 오명을 쓴채 동작동 국립묘지 28 묘역에 쓸쓸히 잠들어 있는 계엄군 신분의 군인들에 주검을 깡그리 짖밟는 처사라 할 것이다.

진정 5.18 이 민주화 운동으로 불려지고 싶다면 광주시민이 그토록 저주하고 증오하는 전두환 노태우 두 공공의 적으로 부터 20억 +a 까지 받아 챙긴 철면피 김대중의 뻔뻔스런 행위부터 지적하고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공의 적보다 더한 뻔뻔한 김대중의 행위도 지적 못하면서 5.18을 기념일 운운 한다는 것은 정치꾼들이 5.18을 자신들의 정치적 발판 이용 도구로 이용 하려는 것이고, 일반 가담자들은 피해 보상금을 노리는 보파라치 행위 라고 밖에 볼수가 없다.

진짜 기념 되어야 할 6.25 나 10.1 국군의날 같은 국가적 행사는 국가기념일에서 제외 시키는 수모를 안기고 국가 혼란 사태를 야기하고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에 대항하는 반정부 투쟁 같은 5.18 은 국가 기념일로 행사 된다면... 5.18 기념일은 숫자 5.18 기념일로 불릴게 아니라, 오 십팔~ 기념일로 불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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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0-05-19 16:07:36
쥐새끼같은놈

김경훈 2010-05-19 16:38:12
아! 함덕근 기자 최고다
대한민국에 정신 제대로 박힌 기자가 있다니!!

조언 2010-05-19 17:23:19
는 잘못된 것입니다.

광주경찰 40여명이 폭도들에게 인질로 잡히고 경찰관서 등이 불타자 광주경찰에서 군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래서 가까운 전북금마의 7공수가 광주향토사단 31사 정웅 관할로 편입된 것입니다. 그 상관은 이희성 계엄사령관 그 위에 최규하였지 전두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정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전두환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수를 잘키운 딸을 시집보낸 격이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누명씌운 파렴치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5.18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려니 5.18로 걸고 넘어가기가 여의치 않으니 12.12를 끌어들여서 소급입법 해서 5.18 특별법 시뻘개뻘법을 기맹삼이 시행했던 것입니다. 이현령 비현령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쿠데타가 자그마치 6개월이 걸린 세계적인 코미디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전두환이 아니면 적화되었습니다. 오시빨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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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위협을 느껴서 공포를 쏜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사격은 화려한 외출의 조작이요 천인공로할 유언비어입니다. 발포도 시민들이 먼저했고 무장한 후의 일입니다. 최초의 시민 사망자 두 명도 카빈에 의해서였고 시체놀음에 이용된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M16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공수부대때문이라고요. 그야말로 모략이죠. 군인들에게 죽었다면 그것은 실수요 유탄이었을 것이고 5.27 광주탈환작전 때는 예외입니다. ,

조언 2010-05-19 17:40:56
광주 탈환작전때는 인명손실을 줄이고자
소준열 장군이 심혈을 기울여서
17명이라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마감했던 것입니다.
소준열은 윤흥정의 후임이었고 전교사 사령관이었습니다.
정웅과 윤흥정이 헤매니 전격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그위의
진종채 2군사령관이 정말 잘했다고 합니다.

전소현 2010-05-21 12:33:58
5.18은 수 많은 연구들과 조사를 통해서 신군부 인사들의 정권 장악 음모와 5.18 민주화 운동의 성격이 밝혔습니다.
광주 시민들이 공수부대원들의 학생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분노하며 시위에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진거죠.광주 시민들이 5.18기간 동안 항상 평화적으로 시위한 것은 아닙니다. 총으로 무장하기도 하였으니까요. 신군부가 먼저 군을 투입하여 자신들의 정권 장악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서슴치 않고 사용했으므로 광주 시민들의 무장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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