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옛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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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옛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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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의 표지
ⓒ 을유문화사^^^
" 너는 본래 재주가 네 동생보다 한참 낫고, 또 어려서 공부한 것도 동생에 비해서 대강은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용맹스럽게 뜻을 세워 떨쳐 일어나 학문에 매진한다면, 서른을 넘기기 전에 반드시 큰 선비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중략>

그러니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요,시대를 아파하고 시속을 분개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면 시라고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뜻이 서 있지 못하고 학문이 순수하지 못하고, 인생의 대도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임금을 도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너는 그 점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정약용 선생의 글 <아들 학연에게>에서 뽑아 올린 토막 귀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잘 되었으면 좋겠냐고 꼬집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요.

말 잘듣고, 공부잘하고, 좋은 대학과 직장을 다니다가 멋진 배우자 만나 잘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욕심을 나쁘다 흉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두 두 딸이 있는데 걱정이라면 공부잘해야 할텐데 그 걱정이 제일 큼니다. 정약용 선생처럼 '나라를 걱정하고 시대를 아파하며 살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기엔 너무나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짐니다.

<아름다운 우리 고전수필>은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에 쓰여진 한문 고전 수필 64편을 현대어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저자들도 강희맹, 이규보, 이수광, 박지원, 정약용, 이제현, 혀균, 주세붕, 김종직, 이황, 김시습 등 우리가 알만한 분들입니다.

이 글들은 설화, 일기, 제사문, 상소 등 다양한 주제들로 편집되어 있는데 책의 순서를 보면 생활의 예지, 한가로움과 풍류, 사랑과 고뇌 그리고 소망, 사랑하는 사람들 정다운 이웃 등 7장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볼 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보다는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빨리 보낼까?'하는 마음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서점가엔 어렵고 무거운 책보다는 가볍고 쉬운 내용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입니다.

매년 나이를 하나씩 더 먹어가는 것처럼 삶의 무게도 늘려나가야 합니다.인생의 선배들이 살다간 길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 인생을 살찌울만한 내용들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가 백년을 함께하기를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 그런데 당신은 영영 내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단 말입니까?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날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한 마디 말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습니다.<중략>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은 이 세상에 와서 한 번도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늘 고생만 하다가 떠난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아, 간 사람이야 그렇다지만 살아 있는 이 사람은 누구를 의지해야할지, 술을 부어 이별을 고할려 하니 다시 목이 메입니다."(김종직, 아내의 영전에)

"형님, 형님은 지금 저를 버리고 아주 가시렵니까? 저는 아직도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슬픔 때문에 미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중략>

사랑하는 여인들은 슬피울고 하인들도 모여서 울부짓으며, 여러 조카들은 피눈물을 쏟고 친한 친구들이 와서 곡을 하는데, 형님은 듣지도 못하고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아무리 번거롭고 시끄러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싫어하심이 어찌 이처럼 심하십니까?"(김일손, 형님 영전에 바칩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 사랑하는 사람들을 떼어놓는 죽음의 현실에 콧끝이 아려옵니다.

그리고 박지원의 <내가 살아가는 모습> 중 "그때만 해도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았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펴고자 하는 뜻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금년 내 나이 40도 채 못되어 벌써 머리털이 하얗게 센 것을 보고서 그가 느낀 바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병들고 피곤해 졌으며, 기백은 쇠하여 꺽였고 세상에 대한 의욕도 조용히 사라져버렸으니, 다시는 옛날 그때로 돌아갈 수가 없다"를 읽다보면 빚 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는 노인이 된 기분이 듭니다.

산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내 한 몸 이외의 모든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좀더 생각해보면 내 한 몸이라는 것조차 실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괴롭게 재물을 모으다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 헛됨을 깨닫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이수광, 죽음에 대해서)에 이르러서는 '왠지 산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긴 해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아니면 스스로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 날은 결코 헛되이 산것이 아니다"(신흠, 숨어사는 선비의 즐거움)는 말에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엔 아직도 착한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을거란 믿음이 있다면 좋은 하루를 볼수 있을겁니다. 없으면 나부터라도 착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이외에도 이 책엔 재주가 없어도 성실한 사람이 결국 성공하게 된다는 강희맹의 <세 형제의 등산>, 백성들이 굶던 말건 자신의 배나 채우는 고위공직자들을 비난하는 정약용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 등 읽을만한 내용들이 풍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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