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꼴값'은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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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꼴값'은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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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값에 대해 책임질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 느닷없이 '당신의 꼴값이 얼마요?' 라고 묻는다면 꼴값이라는 말이 가지는 부정적 의미로 인해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나의 꼴값은 얼마인지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필자가 속해 있는 교회의 주임신부님께서 직접 겪은 일화이다.

신부님께서 외출을 하셨다가 전철을 타고 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장 차림에 로만 카라를 하고 있던 터라 누가 보아도 교회의 사제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롱시트의 한자리를 차지한 신부님은 도착지까지 별다르게 할일도 없고 해서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옆자리에는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그 애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때 전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사람이 신부님이 탄 전철 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그 사람은 노래를 틀어놓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절뚝절뚝 사람들 옆을 지나갈때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의 고개는 푹푹 쓰러진다. 점점 신부님 앞으로 그 장애인은 다가오고 있었고 로만카라가 의식된 신부님은 주머니에서 지폐한장을 꺼내 들었다. 신부님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와 그녀의 어머니 또한 손에 지폐 한장씩을 들고 그 장애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님과 여자아이,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까지 세사람이 봉헌을 하듯 차례대로 조그만 바구니에 돈을 집어 넣었다. 신부님은 흐뭇하면서도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자세를 가다듬고 시트 깊숙히 몸을 밀어넣었다.

그리곤 얼마 후 반대편 쪽에서 아까와는 다른 장애인이 노래를 틀어놓고 돈바구니를 내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신부님은 난감해졌다. 꼭 사람들 앞에서 시험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기 시작한다.

'어떻게하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옆의 그 여자아이와 그녀의 어머니는 또 한차례 봉헌할(?) 준비를 하고 있다. 행위의 연쇄반응이랄까, 아무튼 신부님 또한 주머니에서 지폐 한장을 준비해놓는다. 이번엔 아이의 어머니부터 차례대로 또 한차례 봉헌을 마친다.

그 전철칸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장애인을 외면하고 있는 동안 신부님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두번씩 그들을 도와야했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분의 걸인이 적선을 원하는 것이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심리테스트를 하지 않는 이상, 한 전철 안에서 세번씩이나 가난한 장애인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신부님은 또 한차례 당황해야 했다. 차라리 로만카라를 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곤 이번엔 그냥 눈감아 버리자라고 생각하는데 옆에 그 두 사람은 또 다시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외면하려고 했던 신부님은 부끄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해서 일단 돈을 준비해 세번째 적선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곤 참 기이한 경험이다 싶어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주저하지 않고 세번씩이나 돈을 꺼낼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묻자,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 내 앞에 있었고, 나의 행동을 보고 배울 딸아이가 내 옆에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신부님은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진짜 가난한 자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그것이 중요했으며, 또한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딸아이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님은 과연 자신의 값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해왔던 신부님의 그 자리가 어머니의 그것보다 못하지 않은가. 신부님은 '내가 참 얼굴값을 못했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되었다한다.

이제 우리도 각자 자신의 '꼴값'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본분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가끔씩 자신을 들여다보면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나'가 너무나 달라 깜짝 놀라진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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