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사무소에 책 빌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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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사무소에 책 빌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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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의 새로운 발견과 기쁨

나는 요즘 동사무소에 자주 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사무소 2층에 책을 빌리러 간다. '지척(咫尺)이 천리라도 되는 것처럼,그동안 동사무소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수년째 이 동네에 살고 있지만, 동사무소 2층에서 책을 무료로 대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동사무소 2층에서 몇가지 문화 강좌가 있어서 주부들이 이용 하기에 좋다는 말은 예전부터 입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귓등으로 듣고 흘려 버렸었다. 요 근래에 집에서 인터넷이 갑자기 안되어서 동사무소 2층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워드패드에 글을 쓰고 디스켓에 글을 저장해서 오마이뉴스에 올리기 위해 동사무소 2층으로 향했다. 바로 지척에 두고도 동사무소 1층은 아주 가끔 등본같은건 떼러 가 보았지만 동사무소에 가본것은 열손가락 안에 드는 일이었다.

2층으로 향한 계단을 올라가서 2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땀에 젖어 눅눅한 몸을 상쾌하게 했다. 입구에서 왼쪽에는 젊은 동사무소 직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사무용 책상 앞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각종 문화 강좌나 동사무소 주최로 열리는 회의 같은 것을 하는 강의실이 있었다.

몇사람의 주부들이 이어 붙여 놓은 탁자를 서로 마주하고 골똘한 표정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청년에게 '저 사람들이 하는게 뭐냐고'물었다. 지금은 서예 공부 시간인데 요즘은 일어와 서예를 오전 오후 두번 나누어서 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이 앉아 있는 등 뒤에는 진열장 가득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한쪽에는 비디오 테잎과 음악CD도 보였다. 비디오 감상과 음악 감상은 이곳 2층 실내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책은 신분증을 맡기고 빌려갈 수 있는데 대출 기한은 일주일이며 한번에 2,3권의 책을 빌려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나는 복도를 걸어 들어가 안쪽에 놓여 있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십사인치 밖에 안되는 컴퓨터이지만, 아쉬운대로 괜찮았다. 컴퓨터는 세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가운데 있는 컴퓨터를 켰다. 디스켓을 넣고 내 컴퓨터를 더블 클릭 후 3.5플로피를 역시 더블 클릭 후에 글을 복사해서 내 컴퓨터를 닫고 인터넷에 들어가 오마이 뉴스를 검색후 기자 회원방에 들어가 글쓰기에 붙여 넣었다.

모든 순서를 신속하게 처리후 컴퓨터를 껐다. 디스켓을 빼내어 걸어 나오다가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책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나는 몇권의 책을 뽑아냈다. 보고싶은 책들을 일단 고른 후에 그 가운데 우선 순위를 정해서 빌려 가리라 생각했지만, 대강 선택한 책이 다섯권이나 되었다.

두권 이상을 다시 놓고 가야하는데 손이 자꾸만 머뭇거렸다. 결국 나는 청년에게 물었다.'집이 동사무소 근처인데 빨리 갖다 드릴테니까 다섯권 다 빌려주면 안될까요? 청년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반납 날짜에 맞춰서 갖고 올께요'하고 나는 덧붙였다. '예,그렇게 하십시요. 일주일 안에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하고 흔쾌히 답해 주었다.

나는 신분증을 맡기고 읽고싶은 책들을 한아름 안고서 동사무소 2층에서 내려왔다. 계속 책을 빌려오고 반납하고, 다시 빌려오는 걸 반복 하다보니 내 신분증은 동사무소 2층에 있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책을 일일이 다 사볼수 없는지라,전에는 가까운 책 대여점을 자주 이용했었다. 가끔은 시립 도서관에도 가곤 했지만 너무 멀어서 자주 이용하기에는 불편했다.

그런데,이렇게 가까운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주민들에게 책을 대여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나는 이젠 동사무소에 책을 빌리러 간다. 즐거운 마음으로 동사무소 2층으로 내 발걸음은 향한다.

오늘도 새로운 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을것이다. 매일같이 새로 태어나는 그 많은 책들을 다 볼 순 없지만, 지척에 두고 있는 동사무소 2층에서 아직도 읽지 않은 많은 책들을 빌려와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따끈 따끈한 신간들도 만나는 즐거움도 더러 있다.에라스무스는 '그대는 책에 보답을 주는 것이 없지만,그러나 미래에는 책이 그대에게 한없는 영광을 주리라'고 말했다.

오늘도 나는 동사무소 2층에 책을 빌리러 갔다. 빌려갔던 책을 돌려 주고 다시 몇 권의 책을 빌려왔다. 책의 중량감을 느끼며 2층 계단을 내려오는 내 마음은 새로운 책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벅찼다. 나는 일단 책을 빌려오면 당장 책표지를 열어서 보지 않는다. 보지 않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짧게는 몇시간, 길게는 하루가 넘도록 그대로 둔다.

아직 펼쳐보지 않은 책 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를 상상하며 궁금증을 부풀린다. 다른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가장 궁금하고 먼저 마음이 동하는 책부터 읽기 시작한다.

일단, 책을 한번 펼치면 끝까지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안되니까 아예 중도에 덮어야 할 상황일때는 열어보지 않는다. 정리해야 하는 일이나 쓰고 싶은 글이 많고 생각이 많을 때는 그것을 다 풀어내야만 한다. 그러고나면 책을 열어서 읽기 시작한다.

오전에 동사무소에서 빌려온 책을 탁자위에 쌓아놓고 아직 그대로 두고 있다. 책은 가만히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오프라윈프리의 특별한 지혜>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은 인생에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어요. 또 세상에는 저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저는 그런 이들을 올려다 볼 수만 있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죠. 책 읽기가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에겐 그것이 열린 문이었습니다." "책은 저만의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현실이 힘들수록 더 절망으로 내려 가지 않기 위해,낙심 이라는 미끄름틀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더 강건하게 서기 위해서 책을 부여잡는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수많은 문들이 내 앞에서 열렸다가 닫히곤 하는 것을 보았다. 책은 내게 또 하나의 열린 문이다.

나는 요즘 즐거운 발걸음으로 동사무소에 책을 빌리러 간다. 여러분의 동사무소에는 가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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