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떡' 잘 빚으면 이쁜 색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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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떡' 잘 빚으면 이쁜 색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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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쌀과 송편에 얽힌 추억

 
   
  ^^^▲ 송편 빚는 재료^^^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우리들은 누구나 마음이 설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 일주일 전쯤부터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들판에 나가 누렇게 잘 익은 벼를 몇 다발씩 베어와 낱알을 털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턴 낱알을 껍질 째 소죽을 끓이는 큰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그리고 그렇게 잘 삶겨진 낱알들을 가마솥에서 퍼내 짚으로 만든 넓다란 덕석에 펴서 따가운 가을햇살에 말렸다. 그렇게 이틀 정도 잘 말린 뒤 절구통에 찧어내면 그게 그 맛있는 찐쌀로 변했다.

그래. 찐쌀은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그 맛이 끝내주게 좋았다. 이가 좋지 않은 마을 할아버지들은 그 찐쌀을 2-3시간 정도 물에 불려서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찐쌀이 말랑말랑해져서 할아버지들이 먹기에 좋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말랑말랑한 찐쌀보다 딱딱한 찐살을 더 좋아했고 더 맛이 있었다.

그랬다. 추석 전에 찧어내는 그 찐쌀의 원래 용도는 차례상에 오르는 멧밥의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찐쌀로 지은 멧밥, 그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혀끝을 감도는 그 맛, 그래. 찐쌀 멧밥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독특한 맛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추석 며칠 전부터 그렇게 찐살을 씹어 먹으며 손가락을 꼽다 보면 어느새 작은 추석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랬다. 그 작은 추석날 오후가 되면 우리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어머니 심부름을 해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특별한 심부름이 아니라 바로 앞산에 지천으로 널린 솔잎을 따오는 그 심부름이었다.

하긴 솔잎도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거나 마구 따오면 안 되었다. 길고 색깔이 선명한 솔잎만을 골라 소쿠리에 가지런하게 담아야 했다. 그리고 소쿠리 가득 솔잎이 들어 차면 도랑물에 깨끗히 씻는데, 이 때 송진이 묻어 있는 아래쪽을 잘 제거해야만 했다. 그래야 어머니께 심부름을 잘한 장한 아들이라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송편 빚는 순서
ⓒ 이종찬^^^
 
 

그리고 어스럼이 깔리는 작은 추석날 저녁, 그러니까 잘 익은 호박 같은 보름달이 쑤욱 떠올라 마을을 환히 비추는 그 시각이 오면 집집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귀떡을 빚느라 난리법석을 피웠다.(당시 창원에서는 송편을 귀떡이라고 불렀다) 우리집에서도 늘 추석 전날에는 귀떡을 빚었다.

귀떡을 빚는 방법은 마치 지금의 만두를 빚는 것과 흡사했다. 먼저 잘 반죽한 쌀가루를 새알처럼 동그랗게 만 뒤 양손으로 보름달 모양으로 얇게 저며 펴야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잘 삶은 팥알을 넣고 양 쪽 귀끝을 꾹꾹 눌러 붙이면 그만이었다.

귀끝을 예쁘게 손자국이 나도록 눌러 붙이는 반달 모양의 그 떡. 그래서 우리는 송편을 귀떡이라고 불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귀떡을 밥상 위에 일렬로 주욱 줄을 세웠다. 그러면 어머니께서 누가 누가 더 잘 만들었나 한번 보자시며 우리가 만든 귀떡을 주욱 훑어 보셨다.

"귀떡을 잘 빚어야 이쁜 색시 얻는다 아이가. 저것 봐라. 종찬이가 만든 귀떡이 제일 이쁘다 아이가. 아마 커서 장가 갈 때면 종찬이가 제일 이쁜 마누라 얻을 끼다."

그랬다. 추석이 다가오는 지금도 다감하신 어머니의 그 말씀이 생생하게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 당시 내가 손재주가 있어 제법 귀떡을 이쁘게 빚었기는 빚었던 모양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지금도 내 마누라더러 이쁘다고 그러는 것을 보면. 이런 팔불출 같으니라구.

그렇게 만든 귀떡은 솔잎을 깔고 삶아내면 그만이었다. 마악 삶아낸 귀떡은 솔잎 향기와 더불어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그런 귀떡을 만들어 본 지도, 맛보지 못한 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다. 그래. 지금은 기계로 잘 뽑아낸 그런 색색의 매끈한 송편들이 차례상을 풍성하게 지키고 있다.

아, 지금도 그 찐쌀과 찐쌀로 지은 그 멧밥이 먹고 싶다. 그리고 그 귀떡, 송편이 아닌 그 귀떡을 만들어 보고 싶다. 솔잎을 깔고 마악 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귀떡을 한입 덥썩 물고 볼이 미어지도록 씹어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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