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어뢰와 북한의 어뢰
미군의 어뢰와 북한의 어뢰
  • 안형식 논설위원
  • 승인 2010.04.02 22: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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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폐지하고 야전군 편제로 구성해야

 
   
  ^^^▲ 대한민국 해군^^^  
 

1. 파로호의 비화

한국지도를 보면 남한과 북한이 경계로 하고 있는 38선이 흉측한 붉은 색으로 그어져 있음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이북5도를 지나 툭 떨어지면서 강화도와 임진강을 지나가던 38선이 강원도 지역에 들어서면 급한 커브를 그리며 철원, 고성지역까지 치고 올라간다. U자와 같이 깊게 파여져 있는 모양이 이채롭다.

역사와 지리책에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휴전선이 그어져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서쪽의 이북 5도와 강원도의 고성지역은 37도선에 근접되어 있다. 백령도는 최북단(동경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지역이다. 강원도의 최북단인 고성 통일전망대(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는 북위 38도 35분에 위치하고 있다.

적화통일의 야심을 가지고 6.25 사변을 일으킨 김일성은 6.25 사변의 패전으로 인해 자신의 별장까지 남한에 넘겨주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김일성 별장은 고성 화진포에 위치하고 있다. 휴전 이후에 남한의 지역으로 편입된 화진포에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의 별장이 세워졌다. 패자 김일성의 별장과 승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서로 마주 보면서 패자와 승자의 별장 공존이라는 이채로운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일성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북한군이 김일성의 별장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과 노력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김일성의 별장을 지켜내기 위한 북한군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고성지역이 한국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면 피아간에 얼마나 참혹한 전투가 전개되었을까? 6.25 사변이 끝난 이후 58년이 지난 지금에도 파로호 상류 지역에 집중호우나 홍수가 발생하면 6.25 당시에 신고 있었을 중공군이나 북한군의 군화를 비롯한 유골이 종종 떠내려 오곤 한다. 이로써 38도선이 철원과 고성 지역까지 치고 올라가 37도선에 근접한 휴전선을 긋게 된 이유가 설명된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목숨같이 아끼는 김일성의 별장을 빼앗기고 고성지역을 포기해야 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는 파로호 전투의 참패라는 요인이 있었다.

파로호에는 일제가 건설한 화천수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다. 발전소는 전략상 최고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주요시설이기 때문에 피아간에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실상 양쪽의 전쟁은 어느 쪽에서 발전소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전은 이지역의 치열한 전투를 끝으로 휴전되었다.

화천댐은 6.25 사변 발발 전까지 북한의 소유였다. 화천댐에서 발전된 전력은 송전선을 따라 3.8선을 넘어 서울에 공급되고 있었다. 이 전력은 전쟁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단전되었다.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던 김일성이 일방적으로 단전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울에 거점을 두고 있던 이승만 정부와 미국 군정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때의 괴로움과 타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이승만 대통령은 2차 서울 수복 시에 미8군 사령관인 벤플리트 장군에게 "반드시 화천댐발전소를 수복해 달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만큼 이승만 대통령에게 한이 맺혀 있던 화천댐발전소였다.

뿐만 아니라 화천댐발전소 탈환을 위한 파로호 전투는 한국전 최후의 격전지로 손꼽힌다. 파로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62,000명이나 되는 팔로군을 잃었다. 주력부대인 팔로군을 잃은 중국공산당은 장개석 부대의 시민군과 맞설 수 있는 전력마저 소실했다. 장개석 부대의 시민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까지 치러낼 여력이 없었다. 당시 팔로군을 잃은 중국공산당은 일거에 몰락 당할 수 있는 극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따라서 중공은 서둘러 휴전협정을 맺음으로 한국전을 끝내야 했다. 만약 휴전이 없었거나 늦어졌다면 한미연합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을 밀어붙였을 것이며 주력정예부대인 팔로군을 소실한 중공군은 압록강까지 밀려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었다면 민족의 숙원인 조국의 통일도 이뤄졌을 일이다.

파로호 전투의 승리는 남한의 지도를 바꿔 버린 위대한 승리였다. 백령도와 고성지역 특히 김일성의 별장이 있는 화진포까지 남한의 영토로 편입시킬 수 있었던 실질적인 원인이 파로호 전투의 승리에 있다. 파로호 전투의 승리에는 놀라운 비화가 담겨져 있다. 이 비화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는 세계전쟁사의 희귀한 사료이다. 세계전쟁사에 있어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사실이다. 이 사실은 화천댐의 수문은 미 해군 폭격기의 어뢰공격으로 폭파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양쪽에 해발 1,000 미터나 되는 거대한 산 사이의 협곡에 위치한 화천댐의 수문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중공군 총사령관인 팽덕회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천혜적인 장점을 활용하여 수공작전을 계획했다. 화천댐의 수문을 막았다가 일시에 수문을 개방하여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작전이었다. 만약 팽덕회가 구상한대로 수공작전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한강다리는 끊겨 있었고 미군이 설치한 부교와 주정으로 전후방에 군수품과 병력을 수송하고 있었다. 부교와 주정이 떠내려가게 되면 전방과 후방의 보급로가 차단되어 상당기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처럼 비상한 시기에 성공한 화천댐 수문폭파 작전의 성공은 팽덕회의 수공작전을 무위로 돌렸다. 동시에 아군의 군수품과 병력 수송 작전에도 차질이 없어 한미연합군과 유엔군은 공격적인 전투 끝에 한국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 서해안 함대^^^  
 

2. 해군의 초계함

해군이 보유한 전투함정은 배기톤수에 따라 등위가 매겨져 있으며 9단위부터 1단위까지 세 자리 숫자로 함수에 표기된다. 과거에는 두 자리 숫자로 표기했다. 9단위는 구축함(DD)으로 3000톤 급이다. 8단위는 고속수송함(APD)으로 2500톤급으로 대형군함으로 승조원 200명 이상이 승선할 수 있다.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이며 5인치 함포를 주포로 한다. 대함 및 대공용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으며 대함용 어뢰와 대잠용 폭뢰를 장착했고 소나(음파탐지기)가 설치되어 있다. 함장은 대령급 이상이다. 9단위와 8단위 함정은 소나(음파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어 바다 밑에 있는 잠수함을 음파로 식별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소나핑을 할 때에는 주변 어선들에게 통보를 하게 되어 있다. 소나는 극초단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소나를 맞은 적 잠수함의 승조원들은 고막이 터질 수도 있다. 만약 기뢰가 매설되어 있는 곳이라면 소나핑에 의해 폭발할 위험성도 있다. 때문에 기뢰매설이 의심되는 지역에서는 소나핑을 하지 않고 소해함을 통해 음향스켄을 한 후 기뢰를 제거하는 것이 순서이다.

7단위로 나가는 초계함은 1200톤급으로 호위구축함이다. 3인치 함포를 장착하고 있으며 구축함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 구축함에 비해 화력이 크게 떨어지고 대잠능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구축함과 협동작전을 펼치거나 연근해 경계를 주임무로 하고 있다. 함장은 중령 이상이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초계함은 30여척 이며 고속정과 한조를 이뤄 연안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초계함은 최고속력 32노트(시속 57㎞)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고 함포와 기관포, 대함 미사일 등을 탑재하고 있다. 승무원은 100여명이 탈 수 있다.

천안함을 비롯하여 1000톤급 이상의 함정에는 견시제도가 있다. 견시란 함교의 좌현과 우현에 각각 위치하여 쌍안경으로 바다 위를 감시하는 보초이다. 특이한 점은 함미쪽 견시는 배치되어 있지 않다. 이는 스크류의 작동에 생긴 물결이 흘러가기 때문에 몇분 만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일고 좌우 견시가 샅샅이 훑어보기 때문에 구태여 함미 견시까지 둘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비상 혹은 전투시에는 마스터 견시가 배치 붙는다. 마스터 견시는 약 25M 높이의 마스터에서 견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고참 갑판하사나 조타하사 이상으로 한정되어 있다.

함교는 전탐실을 거쳐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전탐실은 레이더실이며 이곳에는 음성통신장비인 SSB이 설치되어 있는데 SSB는 매월 암호기판을 바꿔야 통신할 수 있다. 전탐실은 함정의 눈과 귀에 해당함으로 통상 전탐실을 작전상황실로 운영한다.

3. 천안함 참사

맹수가 사냥을 할 때에 제일 먼저 표적이 되는 먹이감은 새끼이다. 사자는 여러 마리가 함께 연합작전을 구사하여 어미와 새끼를 분리시키고 새끼를 먹어 치운다. 천안함 참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구축함과 떨어져 있는 초계함은 대잠능력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바다 속으로부터 침투하는 잠수함이나 잠수정, 반잠수정에는 상당히 취약하다. 취약한 능력 때문에 최전방인 백령도 해상에서 독자적인 작전을 펼치게 되면 북한 해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2함대 소속인 천안함이 모함인 구축함도 없이 왜 백령도에 투입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것은 북한군의 전략에 휘말려 천안함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 정보누출의 가능성

북한의 해군은 노무현 시절에 한국에서 보내준 군통신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천안함이 구축함과 별도로 작전을 수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또 2함대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정간첩의 보고에 의해 천안함이 구축함 없이 독자적으로 백령도에 투입된다는 정보를 취득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저런 이유로 천안함이 백령도에 투입된다는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천안함을 노리는 전략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 침몰한 천안함^^^  
 

2)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폭 되었을 것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정찰위성 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북한 서해안 잠수함 기지에서 지난 26일을 전후해 잠수정(또는 반잠수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선일보가 31일 보도했다. 지난 26일은 천안함이 침몰 되고 난 이후이다.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은 85t급으로 406㎜ 어뢰 2문이 장착돼 있다. 이 잠수정은 수심 30m 안팎 해저에서도 은밀한 수중침투 및 공격이 가능하다. 과거 1998년 속초 앞바다에서 꽁치 잡이배의 어망에 걸려 그 실체가 자세히 드러났다. 당시 잠수정의 승조원들은 전원이 자살한 것으로 드러나 북한 해군의 잠수정 요원들은 인간 어뢰로 양성된 공작원이라는 말까지 나돌았었다. 유고급 잠수정보다 작은 반잠수정은 물 위로 항해할 때도 레이더에 잡히기 힘들며 어뢰 2발을 발사할 수 있다.

두 척의 잠수정이 3일 동안이나 24일부터 사라졌다가 27일에야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두 척의 잠수정이 백령도를 우회하여 천안함의 경계구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천안함을 어뢰로 침몰시키고 난 뒤에 귀대한 것으로 보아진다.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토대와 APD 82함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에서 근무했던 경험 상 본인이 추정하는 과정은 8단계이다.

1. 공해상에서 천안함을 기다리고 있던 잠수정. 2. 북한의 고속정 NLL침범 후 산개 도주. 3. 천안함 항로를 바꿔 수심이 얕은 백령도 내측으로 이동. 4. 때를 기다리던 잠수정은 잠항하여 천안함 항로의 양쪽 측면에 암초로 위장하여 매복. 5. 사정거리에 들어선 천안함의 함수쪽을 겨냥하여 향해 어뢰 발사. 6. 함수에서 비켜나 함의 중앙에 있는 양쪽 복원 날개 중 백령도 방향으로 나있는 복원날개에 명중. 7. 천안함 90도로 기울며 반파 침몰. 8. 북괴 잠수정 확인하고 공해상으로 도주하여 귀대.

3) 김태영 국방장관, 어뢰의 가능성 발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일 천안함 침몰사고 원인과 관련, "어뢰와 기뢰 두 가능성이 다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더 실질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북한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확실히 보이지 않은 북한의 잠수정 2척이 있다" 면서 "(다만) 이번 사고와 연관성이 있을 수 있으나 백령도까지 거리가 멀고 잠수함은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 연관성은 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장관은 사고당시 측정된 지진파에 대해선 "지진파를 측정한 것은 맞지만 폭발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4. 해양 강국은 무너지지 않아

세계사에 등장하는 해양강국들은 세계를 무대로 삼고 번창했다. 해군의 능력이 뛰어났던 독일과 일본은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전 세계의 연합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의 원천은 바로 해군에 있었다.

60년 전, 미 해군 폭격기인 스카이레이더기에 장착된 8기의 어뢰는 굳게 잠긴 화천댐 수문을 폭파시켰다. 팽덕회가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수공작전을 염두에 두고 굳게 잠갔던 화천댐 수문이었다. 수문이 깨지자 화천발전소를 지키고 있던 정유산 군장이 인솔하는 중공군 63군단의 잔여 병력들은 화천댐의 양쪽 1,000 미터 고지의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도주했다. 도주하는 중공군의 뒤로 국군 6사단 병력과 미군과 유엔군의 병력이 일제히 덮쳤다. 그 위를 연합군의 전투기가 따라 붙었다. 이날 1951년 5월 25일, 중공군 제 10, 25, 27연대와 중공군 해병 1연대가 파로호에 수장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무려 중공군 62,000명이 사살 혹은 생포되었다. 반면 아군은 341명의 전사자, 부상 2,011명. 실종 195명의 피해로 그쳤다. 이 전과로 인해 국군 6사단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다. 중공군 정예인 팔로군을 수장한 곳이라 해서 구만리 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고, 구만리 언덕 화천 발전소 뒷산에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전승비를 세웠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필두로 흥남부두의 1.4 후퇴, 이북5도, 고성의 김일성 별장 점령 여기에 화천발전소 점령까지 달성할 수 있었던 근원은 미 해군의 막강한 제해능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해양강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휴전 이후 김일성은 뼈아픈 교훈을 얻고 북한 해군력의 증강에 온 힘을 쏟았다. 미 해군의 전투함을 물려받은 한국 해군이 중량과 첨단화로 앞서 갈 때 북한군은 경량화된 침투용 공작선을 비롯하여 잠수정 개발에 힘을 쏟았다. 한미연합군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북한은 게릴라전과 후방 교란을 목적하고 침투용 공작선을 건조하여 대남침투 능력을 키웠다.

반면 한국 해군은 기동성과 첨단화에 진력했으나 금번 초계함 참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개발하지 못하고 예산 타령만 해왔다. 더구나 친북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교전이 발생할 때마다 아군을 비참하게 만드는 처사로 해군의 사기를 꺾었다. 현재에는 노무현 정권에서 만들어 놓은 “2030”으로 인해 이북5도서를 방어 하고 있는 해병대 초병들의 인원수까지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노무현은 북한의 군항인 해주항을 현대식으로 건설해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반대로 북한은 상대적으로 해군력을 급속히 증강시켜 왔고 오늘의 천안함을 침몰시키는데까지 왔다.

결국 60년이 지난 3월 26일 6.25 60주년을 기해서 북한은 천안함을 상대로 화천발전소를 빼앗긴 설욕을 했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국방부는 천안함에 이어 UDT의 전설인 한주호 준위까지 잃고 우왕좌왕하는 못난 꼴을 보이고 있다.

 

 
   
  ^^^▲ 故 한주호 준위 대한민국 국민과 해군의 영웅^^^  
 

5. 국방부 해체하고 야전군편제로 구성해야

우리나라의 군은 국방부에서 망친다. 행정 우선순위인 국방부로 인해 야전군 체재로 갈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군 참모총장이 있음에도 국방부 장관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일방통행적인 행정우위의 현제도로는 야군전투군 위주로 짜여져 있는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싸워서 이길 수 없다.

먼저는 정신적 무장이요 둘째는 미군이 첨단무기를 주어도 써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기상청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해 방치해 두었던 것과 같은 꼴이다.

국방부는 금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체해야 하며 합동참모본부 의장에게 별 다섯 개를 달아주고 삼군 지휘권을 주는 야전군 편제로 재구성해야 한다.

6. UDT 한주호 준위는 2계급 특진시켜야

해군은 철책이 없는 최전방에서 국가의 보위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출동을 했다면 이는 전투에 투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 적군의 총탄에 맞고 장렬히 전사하는 것만이 명예로운 전사가 아니다. 전투상황에 준하는 A급 비상이 내린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했다면 이는 전사이기 때문이다.

한주호 준위의 영웅적인 임무 수행은 교과서에 실어 자손대대로 널리 알려야 한다. UDT는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이며 최고의 남성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수중파괴대의 훈련을 거친 영웅들이다.

UDT 교관으로 영웅들을 길러낸 한주호 준위야 말로 영웅 중의 영웅이다. 중량으로 따지면 2계급 특진으로도 부족하다. 한주호 준위는 살아 있는 UDT의 전설로 통했던 영웅이다.

한 준위의 전사로 인해 2함대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에게 쏟아지던 비난이 멈춘 것과 대통령에 대한 원망이 주춤해지고 있는 점을 돌아 봐야 한다.

천안함 참사 이후로 해군에 지원하는 지원자의 수는 크게 줄어 들 전망이다.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고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천안함 실종자를 구조하라는 국가의 명에 따라 생명까지 바친 한주호 준위의 명예는 영웅 칭호와 함께 영웅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무공훈장과 함께 2계급 특진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영웅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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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령 2010-04-03 00:15:46
우리는 난세에 영웅을 보았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이시대 진정한 군인이요. 참 영웅을 보았다.
오늘밤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훈련도 전쟁이다. 2010-04-03 17:00:44
기동훈련 도 전쟁이다.
훈련중 병사의 희생은 전쟁으로 기인된 전사로 보아야 한다.
특히 해군은 경계선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떤종류의 공격으로부터도 절대로 안전 을 보장 받을수 없다.
그러므로 함정출동이라면 일단 전쟁에 참전 하는것으로
보는것이 정상이다. 앞으로 전군에대해서 일관적인 시각
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