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열풍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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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열풍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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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이민

"앞으로 100년 후 인류는 경제문제로부터 완전 해방될 것이다."

유례없던 불황의 찬바람이 전세계를 침울하게 만들고 있던 1930년대,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예의 천재성을 발휘해 100년 뒤의 미래상을 들려주었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경제규모가 커지고 생산성이 높아져 인류는 빈곤과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사람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아주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03년. 공식적인 최초의 한국이민자들이 낯설디 낯선 미국 하와이 땅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한 항구에 내려서고 있었다. 후줄그레한 한복 차림에 남부여대(男負女戴)했고 아기들은 울고 하와이의 태양은 뜨거웠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의 저소득층이었으며 단순한 이유로 이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서, 오직 생계를 위해 가난한 조국을 등지고 눈물을 머금은 채 하와이라는 곳의 사탕수수 농장행(農場行)을 강행 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더이상 절대적인 가난과 궁핍이 존재하지 않으며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OECD회원국이 되었다. 케인즈가 예견한 2030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100년 전에 비해 한국은 말그대로 '눈 비비고 다시 봐야 할 만큼' 놀라운 성장세를 유지해왔다. 더이상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조국을 등지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하였다.

2003년 여름. 100년전 하와이의 뙤약볕만큼이나 뜨거운 한여름의 한국. 이민상품권이 홈쇼핑 사상 최고의 판매율을 기록하며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인구에 회자된다. 먹고 살 걱정만 해결되면 산설고 물설은 타향살이 할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선조의 후예들이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다.

물론 이민이 나쁜 것은 아니다. 국내와 해외의 원할한 교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이민상품권 판매율 이면에는 조금 다른 이유들이 숨어있는 것같다. 대부분이 20-30대인 이민상품권 구매자들은 또 대부분이 중산층이고 그래서 전형적인 한국인이고 그러므로 다음세대 한국의 주역들이다.

이들 전부가 국내, 해외의 교류를 위해 이민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진데 왜 가방을 꾸리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이 열광적인 이민 바람이 한국사회에 대한 피로와 환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북핵위기, 경제혼란, 학교폭력, 사교육비 때문에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이 산설고 물선 곳으로 둥지를 옮긴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100년 후의 장미빛 미래를 예견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아주 터무니 없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고해서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100녀전과는 비교도 할 수없을 만큼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제문제로부터는 훨씬 자유로워졌지만 복병처럼 숨어있는 사회문제때문에 가방을 꾸린다. 그들의 결단이 새로운 땅에서 꽃을 피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100년전의 이민자들은 조국에 대한 연민과 서러움을, 100년 후의 이민자들은 조국에 대한 환멸과 실망을 지닌 채 먼길을 떠나는 게 아닐까 걱정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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