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내는 아침편지
시인이 보내는 아침편지
  • 이종찬 기자
  • 승인 2003.09.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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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현림 사진에세이집 <신현림의 굿모닝 레터> 펴내

 
   
  ^^^▲ <신현림의 굿모닝레터>의 표지
ⓒ 북폴리오^^^
 
 

"어떻게 지냈어? "라고 물으면 "네 생각만 했어"라고 변죽을 울리는 센스. 좀 신경쓰면 누구나 잘 합니다…"내가 도울 게 없나.", "음 정말 너는 멋져." , "미안해" 푸근한 말 한마디로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무겁던 가슴이 한지처럼 가벼워집니다. 그런 이쁜 말이 근사한 자신을 만드는 거지요."
('말 한마디' 중 몇 토막)

그렇다. 시인 신현림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굿모닝 레터'의 마지막 편지처럼, 우리는 그동안 '나'가 아닌 '너'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또한 먹고 살기에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스스로의 성취욕에 깡그리 매달려, 내 주변 사람들을 옷에 묻은 티끌처럼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너희들이야 어찌 되었건 말건 오로지 '나'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 그래. 그러한 사고 때문에 누군가 진실로 내게 말을 건네도 일단 그 저의부터 살피기에 바빠 그저 대충대충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나'보다는 '너'를 더 생각하는 이쁜 말, 그러한 말의 아름다움에 굶주린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다.

그래. 하루일과가 끝났을 때,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한번쯤 생각해 보라. 나는 오늘 일터에 나가서 동료들과 과연 몇 마디의 말을 했는가.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앵무새처럼 "네.", "아니오." 란 단 몇 마디의 말만 하지는 않았는가. 또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무슨 말을 건넸는가. 그들 또한 자신의 일에 파묻힌 채, 이토록 이쁜 말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루 종일 새소리처럼 푸른 하늘을 그리워했어
나무를 어루만지고 쓰레기를 걱정했어
노란 달이 떠오르는 걸 환영하며
오래 남는 쾌감을 생각했어

천천히 오르가즘을 느끼게
'원더풀 투나잇'을 따라 부르며
낙서하듯 춤을 추고 네게 엽서를 썼어

시간이 안 아까운 영화와 책을 보렴
시간이 안 아까운 일을 찾아 정열을 쏟으렴
시간이 안 아까운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의 쇠못에 네 전부를 걸으렴

나중이란 없으니까!

('세기말 블루스 3' 모두)

90년대 중반, 그러니까 1996년 펴낸 두번 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에서 자신의 상처를 과감하게 노출시키는 시편들과 자신의 뒷모습 누드를 흑백사진으로 실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시인 신현림(42)씨가 사진에세이집 <신현림의 굿모닝 레터>(북폴리오)를 펴냈다.

이 책은 두 달 동안 중앙일보에 '신현림의 굳모닝 레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수박 맛 키스', '슬슬 음악에 취해', '남자는 하늘의 별만큼 많다', '부엌기도', '그 누구의 가슴에든 시인이 산다', '새만금 갯벌은', '섹스어필' 등을 포함한 71편의 짧은 글들과 시인 스스로 찍은 사진 68장이 오랜 사색처럼 가지런하게 실려있다.

"아침 빨래가 마를 때까지, 태양 냄새가 풍길 때까지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그만 빨랫줄에서 아끼던 푸른색 셔츠 한 장이 바람에 날아갑니다. 아아, 저 셔츠 속에서 울리던 제 청춘의 심장 소리도 날아가고 어깨선에서 미끄러지던 옛사랑의 손도 날아가네요." ('오후 나절의 옷장 정리' 중 몇 토막)

"아끼던 푸른색 셔츠 한 장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젊은 몸, 제 세미 누드의 이미지"마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시인. 또한 그게 너무나 안타까워 "마악 달려가" 셔츠를 잡는 시인. 그리하여 "셔츠에 담긴 추억을. 셔츠로 따뜻했던 시간을" 잡아내는 시인이 바로 신현림이다.

 

 
   
  ^^^▲ 신현림 시인^^^  
 

이 책은 시인 신현림이 일상생활 속에서 건져올린 사색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 이미지들은 때로는 과거를 들추어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엿보기도 한다. 그 '들춤'과 '엿보기' 속에서 시인과 시인 자신을 둘러싼 우리네 삶이 느껴지고, 가슴 떨리는 사랑이 언뜻언뜻 비치기도 한다.

사색. 그래. 예로부터 성현들은 사색을 즐겼다. 또한 그 사색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의 이 세상을 읽어내기도 하고, 삶이란 수레바퀴를 끌고 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반듯한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특히 함석헌 선생은 사색, 즉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개혁하고 그 개혁을 통해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아름다움도 워낙 강한 바이러스라서 사스보다 강해 보입니다. 면역체가 없어도 좋아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아름다운 사연 속에 파묻혀 죽고 싶습니다. 죽고 매일 다시 펄펄 살아나고 싶습니다. 내 자신의 무게를 싣고 가는 풍경…. 그 아름다운 순간에 목을 축이며 삶을 견디는 게 우리 사람이라는 거."
('우리 동네 분홍 꽃나무' 중)

그렇다. 시인 신현림도 사색을 통해 저를 들여다보고 이 세상을 엿본다. "너무 힘들 땐 저를 부르는 소리와 꽃잎 날리는 풍경에 위안을 받고 우울 속에서 깨어납니다"처럼 시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색을 통해 삼라만상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문득 "목을 축이며 삶을 견디는 게 우리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신현림의 굳모닝 편지>는 우리들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스쳐 지나가기 쉬운, 아주 사소한 것조차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미덕이다.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 버려진 듯 길가에 피어난 풀 한포기, 골목길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 눈밭에 가지런하게 놓인 자전거 등.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김춘수의 '꽃'처럼 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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