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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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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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가 그치자 벌써 가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직은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후덥지근한 습기가 조금 가시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벌써 다음 계절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추석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저녁 무렵이면 짧은 소매 옷을 입은 팔에 약간의 시원한 바람이 닫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이제 곧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조그만 징조에서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다리고 있던 것일수록 더욱 예민하게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컴퓨터를 켜면 메일 함부터 열어보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듯이, 예전엔 출근하면 우편물부터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팸 메일과 필요 없는 광고성 우편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뚜렷한 대상도 없이 무엇이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년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더 많았고, 그래서 유난히 후덥지근했던 이번 해에는 그만큼 가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긴 여름이 지나고 마침내 가을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말할 것이다. “와-. 가을이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

나 또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어린시절부터 항상 무언가를 기다려 왔었다. 한층 높아진 듯한 가을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나를 부르는 듯한 손짓이 자꾸만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기다림이 길수록, 예감이 발달하게 된다. 때로는 오늘은 어떤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그런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신통한 일이다. 그런 것이 예감인가 보다. 예감이란 사용할수록 발달되는 법이다. 밤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는, 조그만 발자국 소리에도 벌떡 일어난다. 그렇듯이 예감이란 그렇게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예민해지는 법이다.

나는 항상 무엇을 기다린다. 그리고 무엇에 대한 예감에 잠겨있다. 나는 내가 막연히 기다리는 그것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내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대부분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새 차를 사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낡아간다. 열심히 일하면 대개의 경우 조금의 저축을 이룰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보는 법이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그렇게 예측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참새가 우연히 찔끔거린 똥이 정확히 누구의 머리 위에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거액의 복권의 당첨자가 누가 될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법이다. 길을 걷다 심심풀이로 우연히 차버린 깡통이, 우연히 골목을 돌아서 나타난 동네건달의 이마에 가서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 중에는 꼭 재수 없고, 나쁜 일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우연히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름이 아무리 길더라도 그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는 자연적 진실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것. 간절히 기다리긴 하나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 어떤 것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왠지 그런 알 수 없는 예감을 가져왔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고 과연 실현될 것인지도 불확실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갑자기 내 눈앞에 선명히 그 자태를 드러낼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제 내가 예감해 오던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내 오랜 예감의 정체는, 바로 기쁨과 평화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살이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이 웃어넘기는 것.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그런 것을 불가능하다고 가르쳐 주는 것. 그래서 모든 논리적인 생각들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을 내는 바로 그런 일들이 실현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집요하게 내 주위를 맴돌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던 그 예감의 정체였던 것이다.

어린시절의 내가 어떻게 막연하나마 그런 것들을 생각해내고 기다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현실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는 많이 배워버린 지금까지도, 어떻게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그런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마음에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삶의 모든 순간에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이 바로 그 정체모를 예감이다.

곧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나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가을을 즐길 것이다. 가을이 베풀어 주는 혜택을 기꺼이 만끽하며, 가을날씨의 신선함과 가을이 주는 다른 모든 풍성함을 누릴 것이다. 잔치 집에서는 같이 즐거워 해 주는 것이 예의이듯이, 신이 나에게 내려주신 이 복된 계절에 나도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리고 긴 여름 후에 언젠가 가을이 반드시 나타나듯이, 긴 기다림 끝에 나의 그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예감이 이루어질 날들이 꼭 오기를 바란다. 불가능하고, 전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럴수록 기다려지는 그날이. 많은 사람이 가을을 즐기듯 기뻐하고, 많은 사람이 슬픔을 거두는 그날이 오기를. 빨리 이곳으로 달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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