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난히 감상적이서 그런 것일까? 우리가 깨닫고 살든지 혹 의식하지 못하고 살든지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인생이란 시계는 한발씩 동일한 속도로 인생의 가을을 향하여 움직여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얼마 후에 다가올 인생의 가을을 예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내 삶에선 항상 우수가 진하게 묻어난다.
전에는 애써 그런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마치 광대처럼 웃고 다니며, 온 세상에 웃음을 선사하려고 어설픈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 속에 숨어있는 우수를 감춰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어설픈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내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런데도 요즘은 이상하게도 나를 보고 자연스레 웃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나는 웃기는 재주라고는 정말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제 조금씩 삶을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희랍에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희극은 비극을 딛고서야만 비로소 참 빛을 발하는 것이다’라고. 내 가슴에 우수가 더욱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내 행동과 내 말투를 보고 더 잘 웃는다. 내가 소주잔을 걸치며 빙긋 웃으며 내뱉는 말들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나를 잘 알고 내 평소의 모습과 생각을 아는 사람들에 한해서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나도 내 모습을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나는 종일 긴장된 표정으로 지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우수에 잠긴 생각을 하며 우수에 잠긴 글을 만지며 지낸다.
그러다 저녁에 그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스레 내 얼굴에선 사람들을 웃기는 즐거움과 기발한 말투가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참 자연스레 그렇게 변하여 간 것이다. 예전엔 술을 마시면 진지한 말만 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안다. 그건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다. 나는 이제야 우수의 참맛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슬픔은 눈물을 흘리고, 몸을 떠는 과장된 표정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웃음을 참지 못해 눈물을 찔끔 흘리는 그 웃음의 뒤에 남는 한 가지 여운,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참 슬픔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반평생을 노력해온 우수와의 싸움에서, 이제 나는 서서히 달관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내 글에는 슬픔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직도 내 글을 읽고 우수를 찾아낸다. 예민한 촉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힌트를 준 글들은, 아마도 예전에 쓴 글들을 최근에 다시 고쳐 쓴 글들일 것이다. 요즘 내가 쓰는 글에서는, 좀처럼 우수가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요즘 쓰는 글에도 우수는 존재한다. 단지 좀 더 은근하게 녹아 있을 뿐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에는 우수가 녹아있다. 만약 내가 쓴 글에 그것을 전혀 찾아낼 수 없다면, 나는 그 글은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는 글에서, 그리고 삶의 보람을 표현한 글에서 나는 튼튼히 골격과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우수를 읽어낸다. 아니 글을 적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그것들을 기반에 깔고 난 후에, 내가 표현하려는 이미지를 쌓아올리는 것이다.만약에 처음부터 끝까지 밝기만 한 글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그런 글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슬픔에 절어서 눈물을 자아내기만 하는 글이 있다면, 그런 글을 열심히 읽지 않을 것이다.
삶은 어차피 종말을 향하여 달리는 일방통행의 열차와 같다. 종착역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디쯤엔가 반드시 끝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살며시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 끝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바보스러운 삶이 아닐까. 아니 이 세상에 어떤 누가 그 끝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 알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언젠가 다가올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하루하루의 삶에서 우수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고 있다. 내면의 힘겨운 싸움이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가 보다.
이제 나는 웃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간다. 그래서 사람들과 마주치며, 하루의 소소한 일에도 곧잘 웃는다. 슬픔을 보아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단지 분노할 때 분노하고, 힘써 싸워야 할 때 싸우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렇게 삶을 긍정한다. 그리고 내가 타고 있는 종말을 향하는 열차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 가슴에 깊게 물든 우수를 매만지며, 미소 띤 얼굴로 나에게 허락된 매순간을 사랑하면서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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