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는 내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내의 강

어제 다시금 이사를 했다. 주먹구구로 따져봐도 이번 이사까지를 포함하면 아마도 벌써 열 서너 번 째의 이사이지 싶다. 장마철이면 방안으로까지 비가 쳐들어 올 지경의 허름한 집일 망정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문패를 걸어 놓고 살 수 있는 초가집이라도 있다면 해마다 기한이 되어서 이사를 하는 따위는 없어도 되리라.

하지만 나라는 위인이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가는 언덕을 넘으면서도 늘상 빈한지경을 점철하고 있는 지라 여지껏 변변한 내 집 한칸을 마련조차 못했다. 어제의 이사는 내 생애에 있어 가장 참혹스런 지경으로까지 급전직하한 이사였다.

그건 바로 전세도 아닌 보증금도 없는 단순한 월셋방으로의 이사였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어떤 아파트는 그 가격만 해도 평당 기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하는데 하지만 나라는 놈은 기천만원의 전세도 아닌 고작 월셋방 신세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전의 사업실패 이후로 점점 더 쇠락해진 나의 가정경제는 그예 전셋집의 보증금을 빼서 연체된 카드빚의 상당액이라도 갚아야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을씨년스런 비를 맞으며 이사를 하노라니 나의 빈한한 처지가 새삼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방 세 개의 17평 빌라에서 허름하고 금방이라도 다 쓰러질 듯한 볼기짝만한 방이 두 개인 기와집으로 이삿짐을 나르자니 아내의 얼굴엔 어느새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며 애써 간과하며 이삿짐을 챙기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윽고 땅거미가 졌지만 채 정리하지 못한 탓에 이삿짐으로 인한 심란한 풍경은 여전했다. 하교한 여고생 딸아이의 얼굴에도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가스도 연결이 안 됐으니 오늘 저녁은 나가서 사 먹고 오자구~" 저녁으로 자장과 짬뽕을 먹으며 소주도 한 병을 마셨다.

얼큰해진 술기운으로 귀가하여 이삿짐을 대충 더 정리하다보니 자정이 임박했다. 아내가 걸레로 방을 깨끗이 훔치고 이불을 깔았기에 노곤노곤한 전신을 눕혔다. "어이구, 허리야..." 신음을 했더니 아내가 냉큼 일어나 정성껏 주물러 주었다.

"당신도 피곤할텐데..." 하지만 아내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는 "나야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괜찮지만 당신은 또 일을 나가야 하잖아..."라면서 극구 그렇게 맛사지를 해 주는 것이었다. 순간 지지리도 못난 날 이처럼 무변하게 사랑해 주는 아내가 있음에 나는 감읍하여 괜스레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여보, 미안해!" 그러자 아내는 "뭐가 미안해?" 라고 반문했다. 나는 술기운에 더하여 복받치는 설움에 그만 "당신에게 늘 고생만 시켜서 그러지 뭐..."라며 채 말끝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금 날 도닥였다. "난 괜찮아, 당신하고 아이들만 건강하면 우리도 이담에 잘 살날은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말야."

얼마 전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오게 되면 아마도 교도소의 재소자처럼 그렇게 바짝 밀착하여 잠을 자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애써 생각을 바꿔 본다. 나는 아직도 현모양처가 곁에 있으며 두 아이들 역시도 일탈 없이 잘 자라 주었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사회적 현상은 빈한과 배우자의 불륜등으로 인한 가정해체가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간의 정과 신뢰만 있다면 삿갓 아래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잠시 후 아내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아내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여보~ 나같이 못난 놈을 만난 죄로 인해 당신은 무려 22년 동안을 빈한의 질곡에서만 살아야 했지요. 그러함에도 당신은 넉넉한 강(江)의 넓이를 소유한 여인이었고 또한 항상 이 못난 날 보듬어 주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아이들 역시도 미래의 동량으로 잘 키워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안하오. 여보, 하지만 걱정 마오. 인생사는 본시가 고진감래라 했잖소? 우리 여기서는 이제 기필코(!) 부자가 돼서 이사 가도록 합시다.

나도 이젠 당신에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의 드라마를 펼쳐주고 싶소.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할 겁니다. 그리고 하해처럼 넓은 당신의 가슴을 또한 사랑합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극빈자 2003-08-30 10:17:42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젋지만 주어진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한없는 아량이 꼭 미래의 응당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님의 하시는 일에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길 기도해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백천봉 2003-08-30 18:42:06
한 편의 극적인 기사(수필)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지만 정성어린 아내의 위로는 반드시 뒷날을 보장해 주리라 믿습니다. 가난으로 인한 동반자살을 비록 우울한 기사가 많았지만 이렇듯 아직은 세상이 밝아 보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며 위기를 극복해 가는 부부의 슬기로운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한번 쯤 아내를 되돌아 보게 하는 글. "내 아내는 이대로 좋은가."란 반문 이전에 나는 실로 내 아내를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하는지를 진실로 생각해 봅시다. 부부의 사랑은 곧 가정과 사회를 행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 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 큰 힘 되어 하루 빨리 일으서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모처럼 밝고 희망적인 기사(수필)를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 섭니다.
감사합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