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라는 위인이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가는 언덕을 넘으면서도 늘상 빈한지경을 점철하고 있는 지라 여지껏 변변한 내 집 한칸을 마련조차 못했다. 어제의 이사는 내 생애에 있어 가장 참혹스런 지경으로까지 급전직하한 이사였다.
그건 바로 전세도 아닌 보증금도 없는 단순한 월셋방으로의 이사였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어떤 아파트는 그 가격만 해도 평당 기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하는데 하지만 나라는 놈은 기천만원의 전세도 아닌 고작 월셋방 신세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전의 사업실패 이후로 점점 더 쇠락해진 나의 가정경제는 그예 전셋집의 보증금을 빼서 연체된 카드빚의 상당액이라도 갚아야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을씨년스런 비를 맞으며 이사를 하노라니 나의 빈한한 처지가 새삼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방 세 개의 17평 빌라에서 허름하고 금방이라도 다 쓰러질 듯한 볼기짝만한 방이 두 개인 기와집으로 이삿짐을 나르자니 아내의 얼굴엔 어느새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며 애써 간과하며 이삿짐을 챙기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윽고 땅거미가 졌지만 채 정리하지 못한 탓에 이삿짐으로 인한 심란한 풍경은 여전했다. 하교한 여고생 딸아이의 얼굴에도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가스도 연결이 안 됐으니 오늘 저녁은 나가서 사 먹고 오자구~" 저녁으로 자장과 짬뽕을 먹으며 소주도 한 병을 마셨다.
얼큰해진 술기운으로 귀가하여 이삿짐을 대충 더 정리하다보니 자정이 임박했다. 아내가 걸레로 방을 깨끗이 훔치고 이불을 깔았기에 노곤노곤한 전신을 눕혔다. "어이구, 허리야..." 신음을 했더니 아내가 냉큼 일어나 정성껏 주물러 주었다.
"당신도 피곤할텐데..." 하지만 아내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는 "나야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괜찮지만 당신은 또 일을 나가야 하잖아..."라면서 극구 그렇게 맛사지를 해 주는 것이었다. 순간 지지리도 못난 날 이처럼 무변하게 사랑해 주는 아내가 있음에 나는 감읍하여 괜스레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여보, 미안해!" 그러자 아내는 "뭐가 미안해?" 라고 반문했다. 나는 술기운에 더하여 복받치는 설움에 그만 "당신에게 늘 고생만 시켜서 그러지 뭐..."라며 채 말끝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금 날 도닥였다. "난 괜찮아, 당신하고 아이들만 건강하면 우리도 이담에 잘 살날은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말야."
얼마 전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오게 되면 아마도 교도소의 재소자처럼 그렇게 바짝 밀착하여 잠을 자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애써 생각을 바꿔 본다. 나는 아직도 현모양처가 곁에 있으며 두 아이들 역시도 일탈 없이 잘 자라 주었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사회적 현상은 빈한과 배우자의 불륜등으로 인한 가정해체가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간의 정과 신뢰만 있다면 삿갓 아래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잠시 후 아내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아내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여보~ 나같이 못난 놈을 만난 죄로 인해 당신은 무려 22년 동안을 빈한의 질곡에서만 살아야 했지요. 그러함에도 당신은 넉넉한 강(江)의 넓이를 소유한 여인이었고 또한 항상 이 못난 날 보듬어 주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아이들 역시도 미래의 동량으로 잘 키워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안하오. 여보, 하지만 걱정 마오. 인생사는 본시가 고진감래라 했잖소? 우리 여기서는 이제 기필코(!) 부자가 돼서 이사 가도록 합시다.
나도 이젠 당신에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의 드라마를 펼쳐주고 싶소.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할 겁니다. 그리고 하해처럼 넓은 당신의 가슴을 또한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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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젋지만 주어진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한없는 아량이 꼭 미래의 응당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님의 하시는 일에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길 기도해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