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실버] '독거노인의 하루'
[달려라 실버] '독거노인의 하루'
  • 황경란
  • 승인 2002.11.1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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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이 떠지는 시간이니 5시가 조금 넘었나 한다. 불을 켜자니 어두운게 낫다 싶어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K노인은(82세.여) 독거노인 1급 생활보호대상자이다. "앉아서 하긴 뭘해 그냥 앉아있는 거지. 해가 뜰려나... 뜨면 또 언제 질려나...하면서." 어느 정도 해가 비치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앉은뱅이처럼 움직여 걸레를 찾는다.

닦고 또 닦고. 구석진 곳에 들러붙은 먼지에 비해 K노인이 앉아있는 방바닥은 윤기가 흐른다. 소일거리도 없는 K노인은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라고 해 봤자, 걸레로 방안을 닦는 것이 고작이다. "뭐 할 게 있어야지... 그냥 닦는 거야. 그래도 이 냄새는 어디 못 가." 조별로 찾아드는 자원봉사자들이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여는거라 한다.

"미안하지... 냄새 때문에 안 오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 밥을 먹자니 이도 벅차다. 매일을 마주하는 밥상이 친구요. 밥그릇이 벗이지만, 하루 이틀 벗삼자니, 외면하고 싶은 날도 있는지라 거르기 일쑤라 한다. 밥통에 들어 있는 밥 위로 푸른곰팡이가 올라있다. K노인의 아침은 이렇게 고독과의 만남이다.


점심


가끔 복지관의 식당을 찾아 급식을 받는다. 주거니 받거니 할 말동무가 있어 가면 좋지만 오가는 동안의 아픈 다리에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거기에 내키지 않는 자식자랑을 하기도 듣기도 해야하니 이젠 이래저래 귀찮다고 한다.

"자식자랑은 다 똑같지. 내 자식인데... 거기 가서 자식자랑 해 봤자 누워서 침 뱉기지. 자식 있는데 왜 여기 와서 밥을 타먹어.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구..." 몸이 느려, 생각이 어눌해 질 수는 있지만, 마음만은 예민해지는 것이 나이 듦이다. "자식을 대신해 돈을 주는데 고맙지... "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지 못한다.

죄인일 수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것이 독거노인 생활보호대상자 이다. "일년에 한번 자식들한테 이것저것 적어내라고 뭘 보낸데. 자식들 통장에 돈이 있으면 생활비가 조금 나온다고 그러는데..." 가끔 그것 때문에 딸자식이 남편과 싸운 다며 자식한테 이래저래 못 할 짓 하는가 싶어 속상 하다고 한다.

낮이 되도록 집에 있으면 종일토록 보는 것이 TV이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내용을 듣기만 한단다. 사람소리 듣고 있으면 그나마 덜 심심하다고. 항상 K노인의 옆에는 걸레가 놓여있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면 사람이 사는가 싶어 반갑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한 쪽에 모아 놓는다고 한다. 고독을 달래는 K노인만의 놀이였다.


저녁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방바닥에 이부자리가 펴진다. K노인의 뒤로 TV만 주절거리며 떠들고 있다. "누가 누군지 몰라. 그냥 보는거야." 그래도 즐겨 보는 프로는 있다. 일일연속극에 눈에 익은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재미있다고 한다. "재미가 뭐 별거야. 그냥 본다니까..." 늙어 입에 새겨지는 말이 그냥이라는 말인 듯 싶다. 그냥, 살아 있으니 산다는 말처럼 들렸다.

질병고, 생활고, 무위고, 고독고를 짊어지고 K노인은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을 넘기도록 TV는 켜져있다. 물론 K노인도 뜬 눈으로 TV를 지켜본다. 침침한 눈으로 TV속의 배우가 아닌 소리만을 듣는 다고 했다. 어느새 K노인에겐 고독이 친구였다. 그래도 고독안에 그리움이 있어 K노인이 내일을 기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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