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에 물든 우리말-(23)
왜색에 물든 우리말-(23)
  • 이준규
  • 승인 2009.10.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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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번(十八番)

우리는 아는 이들 끼리 모여 연회를 베풀거나 또래들과 같이 노래방을 갔을 때 돌림으로 노래를 부를 때가 있는데 나이든 사람들은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아 흘러간 노래 한두 곡 외어두고 단골로 부른다.

나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노래를 배울 수도 없고 배운다 해도 가사기억을 못해 예전에 알던 노래 몇 곡을 정해놓고 평생 우려먹으며 하는 말이 나는 십팔번밖에 없어 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 십팔번이란 얘기가 어제 오늘에 들어온 말이 아니며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이도 드물 것 이다. 이는 일본에서 건너온 말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왔기에 거의가 우리말인줄 알고 사용하고 있다.

십팔번이란 일본말로 가부끼주우하찌방(かぶきじゅうはちばん-歌舞伎十八番)이란 말 중 십팔번(十八番)만을 따온 것이다. 그러면 가부끼는 무엇이고 십팔번은 무엇인가?

가부끼(かぶき-歌舞伎)는 가부끼시바이(かぶきしばい-歌舞伎芝居)의 준말이다.
가부끼시바이는 에도(えど-江戸) 시대에 발달하여 완성된 일본 특유의 민중 연극으로 일본인의 연극적 표현법의 모든 면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부끼 만을 따오고 연극을 표하는 시바이(しばい-芝居)를 생략한 것이다. 가부끼는 가부끼 배우 이찌가와(いちかわ-市川)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열여덟 가지의 인기 있는 교겐(きょうげん-狂言)을 말한다.

교겐은 글자대로라면 미친 사람의 말이 되는데 여기서는 희극조의 대사를 말하며 이를 십팔번이라 한다. 이와 같이 가부끼의 대본(臺本)이 18권인데 이를 반복적으로 변함없이 공연하기 때문에 단골 메뉴가 됐다.

여기에 출연하는 배우의 노래, 장기, 대사, 요술, 입버릇처럼 나오는 푸념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십팔번 노래, 십팔번 요술, 십팔번 푸념, 십팔번 장기 라고하며 모든 전문배우의 출연에는 십팔번이란 별호가 붙어 다닌다.

십팔번을 다른 말로 오하꼬(おはこ-御箱)라고도 부른다. 이는 상자란 뜻으로 상자에 넣어 소중하게 보관한다는 말인데 어원은 이찌가와 가문의 단골 가부기 십팔권의 대본을 18상자에 넣어 보관한다는 뜻이다.

주우하찌방(じゅうはちばん-十八番)을 오하꼬(おはこ-御箱)로도 표기 하는 데는 이해가 안 간다. 여하튼 십팔번은 숫자의 개념을 떠나 상자에 대본을 소중하게 보관하거나 그밖에 독특한 연기력, 독특한 구변, 독특한 잔소리 등을 모두 십팔번이라고 하니 정말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한 가지 노래만 계속 부르면 저 노래는 그 사람의 십팔번 이다 .라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에까지 깊이 숨어들어 정착했다. 다시 말해 십팔번은 그 사람의 제일가는 단골을 뜻하는데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과연 영문도 모르며 따라해야 할지 의문이 간다.

가부끼(歌舞伎)란 가(歌)는 음악을, 부(舞)는 춤을, 기(伎)는 기예를 뜻하며 각기 일본이 자랑하는 독자적 양식의 연극의 특질을 가지고 있는 동네 예능을 완성시킨 서민 예술로 지금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으며 그들만의 민족혼이 담겨있는 예술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나라의 주요도시에 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엔 가부끼사(かぶきさ-歌舞伎座)라는 전문극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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