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이’가 아니고 왜 ‘윷놀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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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이’가 아니고 왜 ‘윷놀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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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와 농경사회, 그리고 놀음

윷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놀음이다.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이 윷짝을 갖고 놀면 호되게 나무라셨다. 아버지가 윷놀이를 즐기며 놀음에 빠진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인생 말아먹을 못된 괴물로 생각한 것이다.

윷놀이는 화투보다 더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니 일찌감치 윷놀이에 단죄(斷罪)와 철퇴(鐵槌)를 가하고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당연히 친구들과 재미로 하는 놀이도 숨어서 해야했다.

그걸 어기고 손에 윷짝을 들고 집으로 와서 발각되면 밥까지 못 먹게 했다. 온화하신 눈빛이 달라지며 심하게 나무라신다. 그 외의 일로 그렇게 까지 하신 적은 없다.

그렇다고 그 재미난 것을 하지 않고 살았겠는가? 어찌되었든 친구들, 선후배와 어울리면 윷놀이의 유혹에 곧잘 빠지고 말았다.

“‘모’야!”
“‘윷’이야!”
“‘걸’~”
“에잇 ‘개’구먼”
“‘뙤(도)’다. ‘또’네!”

이 다섯 마디 소리에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스며 있다. “잡아. 잡으란 마시~” “엄버(엎어)” “꽁쳐서 가!”라는 말에 삶의 단면이 녹아 있다. 선택의 순간에는 일희일비(一喜一悲)와 탄탄대로(坦坦大路), 나락(那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윷놀이 꾼이나 경마장 아저씨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는가. 그 얼마나 열중하던가. 그래서 곧잘 싸움판으로 변하기도 하는 게 윷놀이다.

아직도 내가 살았던 시골에선 명절 때는 윷놀이가 성행한다. 상가(喪家)가 차려지면 냄새 맡고 달려드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 돈 놓고 돈 놀음하는 왁자지껄한 놀이가 행해지는데도 웬만해서는 주인이 말리지를 않는다.

 

 
   
  ^^^▲ 이제는 약간 건전해져 판돈이 아주 커지는 일은 드뭅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한 때문인가요? 아니면 더 재미난 놀이가 많아서 일까요?
ⓒ 김규환^^^
 
 

도, 개, 걸, 윷, 모. 이 다섯 글자에는 인생역전(人生逆轉), 새옹지마(塞翁之馬), 첩경(捷徑)이 있다. 도, 개, 걸, 윷, 모 다 좋지만 모가 최고다. 그렇다고 도나 개라고 해서 영 몹쓸 존재가 아니다. 도를 해도 때론 앞에 가는 말을 잡아서 재기를 꿈꿀 수 있다. 정말 도 한 방에 상대방을 끌어내리고 한 번 더 함으로써 수천 리 길을 쉬지 않고 뛰어 집으로 먼저 올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가?

차례대로 돼지, 개, 양, 소, 말로 풀이되는 이 놀이는 동물의 크기에 따른 분류이다. 또한 빠르게 달리는 순서이기도 하다. 상식적으로 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돼지가 개보다 훨씬 크지 않은가?

재래의 종자로 보면 돼지가 더 작다. 개 다음으로 큰 게 양이고 양보다 큰 게 소다. 소가 말보다 작기도 하고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말에 속도를 견줄 수 없으니 말인 모가 최고다. 순서도 그래서 그리 정했다.

누가 윷놀이와 윷짝의 뒤집어 지는 개수에 따라 규칙을 그리 정했는지 모르지만 윷은 좀체 나오지 않는다. 도와 개가 가장 빈번하다. 그 다음이 걸이다. 때론 도 다음으로 모가 잘 나오기도 한다.

웬만해선 나오지 않는 윷이 나오면 모가 나온 것 보다 더 기쁘다. 급기야 신기해하기까지 한다. 윷짝을 던지는 사람은 들뜬다. 잘 나오지 않던 윷이 나오니 뭐 오늘은 내 맘대로 다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급기야 용기백배(勇氣百倍), 사기충만(士氣充滿)! 마구 던져 보는 것이다.

윷놀이는 설보다 추석 때 마을마다 행해졌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며 뙤약볕이 한껏 내리쬐는 날. 술잔 기울이며 최소 대여섯 명이 어울려 질펀하게 노는 놀이다. 아직 밖에서 놀기 가장 좋은 철이 추석이다. 이 때는 밤에도 달빛에 의지해 전깃불 없어도 밖에서 놀이가 가능했다.

윷놀이는 경마와 함께 ‘로또복권’이 광풍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합법화된 놀음인 경마(競馬)와 경륜(競輪)에 버금가라면 서러워 할 지경이다. 70년 대 농촌에 그 많은 사람이 터지듯 밀려 살았을 때 뭐든지 재미없는 것이 없었겠는가마는 윷놀이는 더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전통 놀이답게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가축이었던 돼지, 개, 양, 소, 말을 놀이에 차용해서 즐겼던 선조들의 사고의 폭이 어찌 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왜? 도대체 ‘윷놀이’는 ‘모놀이’가 아니고 ‘윷놀이’가 되었을까? 어디를 봐도 그에 대한 답은 없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 이에 대한 질문은 하나 있으나 마땅한 답은 없다.

내 생각은 이렇다. 네 개가 다 바짝 엎드린 모가 최고고 네 개가 모두 엎어진 윷이 다음인데도 윷놀이가 된 것은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소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로 정착한데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결국 중원을 맘껏 달리던 선조들의 기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교 교리에 따라 ‘살생을 함에 가려서 하자’는 룰도 작용하여 말과 소, 무엇이든 잡아먹는 걸 터부시 하다가 소는 경작을 위해 쓰일 것이므로 농본주의를 주창했던 조선시대에 내려와 사람보다 더 중요시 됐던 것이다.

이는 일면 당시 경제 사회적 조건에서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소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반도에 갇히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말은 저 넓은 신천지를 개척하는 데나 필요했던 것이지 정착을 위한 수단은 아니었던 것이니 역사를 되돌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소가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조선시대 선농제를 지낼 때나 제물인 희생(犧牲)으로 쓰인 것 빼고 어떤 기록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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