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내려가면 돼. 이것도 다 요령이라구... 천천히 내려 갈 테니까 걱정하지마."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며 야무지게 계단을 내려가는 양노인이다. 양노인의 손에 들린 야채거리는 보기에도 묵직하다.
"먼 거야 나도 알지... 근데, 멀어도 차비는 안 들잖아. 조금이라도 싸면 가서 사 와야지. 안 그래?"
양노인은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개찰을 한다. 한 발짝이다. 딱, 한 발짝만 길을 터주면 될 것을 양노인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여간 매섭지 않다. 걸리적거리는 늙은 발걸음이 싫은 것이다.
"화?" 양노인은 웃어넘긴다.
"화야 나지...... 근데, 어디 그게 화를 낸 다고 될 일인가... 늙어 보면 알 텐데... 그리고 화 낼 기운도 없어."
가던 길이 멀었던 만큼 되돌아오는 길도 고되다. 그 고됨에 시장도 하련만, 양노인에게 외식이란 없다.
"배고프다고 라면을 사 먹을 거야, 뭘 먹을 거야! 제대로 된 거 하나라도 먹을라고 들면, 오 천원 짜리 하나 헐어야 한다구. 그거 어디 무서워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라며, 딱 잘라 말한다. 덧붙여, 한달 수도세 보다 더 비싼 게 한끼 밥 값 이라고 했다.
"어떻게, 법으로 말야, 음식점에서 우리 같은 노인들한테는 음식을 싸게 팔게 하면 안되나..."
양노인은 생각만 해도 좋은 법이라는 듯 멋쩍게 웃는다.
"안 생길거야. 그지..? 그것도 장산데...." 그래도 못내 아쉬운지 모처럼 말이 길어지는 양노인이다.
"법이 제일 무서운 거니까 법으로만 만들어주면야, 왜 괜히 배를 곯아. 추운데 들어가서 몸도 녹이고 우리야 감사하지."
질러가면 바로 인 것을, 양노인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걷는다. 한쪽에선 한 젊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무단횡단을 한다.
"나도 건너가고 싶지... 근데, 어디, 내가 뛰는 게 뛰는 거야, 젊은 사람들 걷는 것만 못하지. 괜히 그러다가 큰일나!"
그렇게 부지런히 걸어가도 푸른 신호를 야속하게 놓치기 일쑤다. 한참을 서서 기다린다. 해가 지는 지,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 물건 해서, 오늘 내다 팔면야, 나도 좋지. 근데, 새벽에 나갔다, 감기라도 들어봐. 어디 감기뿐 인 줄 알아. 새벽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아, 그럴 때 잘못 넘어져봐, 큰일 난다구."
지난해에도 발목을 곁 질려 한달 내내 고생했다고 한다. 그 뒤로 겨울철에는 하루걸러 한번씩 장을 보고 그 다음날 시장 골목에 자리잡아 행상을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수입이 반으로 주는 거야. 일한 날이 적으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난 아직 건강하잖아. 그게 어딘데..."
신호가 바뀐다. 염치없이 질러가는 자동차 한 대를 보내고 양노인은 힘겹게 야채거리를 들어올린다.
"오래 살거야... 오래 살아서... "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걷기만 한다. 그리 걸어도 양노인의 걸음은 어디서나 사람들 사이로 뒤쳐질 뿐이다. 하지만, 앞서 걷는 사람들은 양노인의 걸음이 앞으로 우리의 걸음인지를 모른다.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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