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동아의 일제찬양, 총독부 기관지보다 한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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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동아의 일제찬양, 총독부 기관지보다 한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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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8.15기획: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에서

 
   
  ^^^▲ KBS 인터넷 화면^^^  
 

필자도 한때는 조선일보와과 동아일보를 민족신문이라고 잘못 안 적이 있었다. 비싼 노트를 사 사설을 스크랩할 정도로 세뇌된 것이었다.

자전부전일까? 지금은 저의 아버님께서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으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시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만을 철저히 신봉하신다. 조갑제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의 첫 번째에다 올려놓으실 정도다. 월간조선의 편집인 조씨의 주장과 같아 우리가 북한을 타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렇듯 확신에 찬 주장을 하시는 것은 이 두 신문이 일제 하에서 애국민족지였다는 믿음에서다. 지금도 바른 소리를 하는 신문이며 북에 대해서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전부 옳다고 신뢰한다. 무엇이 이토록 철저한 신념을 갖도록 하였을까?

토요일 밤 8시, KBS 1TV는 <8.15기획: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라는 특별 기획을 통해 조선, 동아가 일제 하에 어떤 왜곡을 일삼아 왔으며 친일 행태는 어떠했는지를 그 당시의 생생한 자료와 증언 및 신문자료를 통해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하나하나 파헤쳤다.

조선, 조선인 최초 전사자 왜곡 보도

1939년 7월, 조선 지원병 최초로 전사자(옥천 출신 이인석)가 발생하자 동아일보는 "일본을 위한 의로운 죽음"으로 미화하면서 미망인이 "전사는 남자의 당연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인터뷰를 했다고 전해진 미망인은 "정신이 없어 울어보지도 못했는데 죽은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해 왜곡보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 누가 죽은 남편을 앞에 두고 당연히 잘 죽었다고 하겠는가? 그야말로 소설을 쓴 것이다.

애국의사를 '범인'으로 낙인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애국지사나 의사에 관한 보도태도다. 1932년 1월 10일자 조선일보는『천황 폐하 환행도중 노부에 돌연 폭탄을 투척 / 범인은 조선 경성생 이봉창』이라는 기사에서 독립지사의 의거를 대불경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봉창 의사를 '범인'으로 낙인찍었다. 이후 윤봉길 의사도 마찬가지로 '범인'이라고 지칭했다.

동아, 일장기 말소사건 관계 기자 파면

특히, 동아일보가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며 자랑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상은 어땠을까?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1936년)는 조선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 일대 사건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동아일보는 일장기 부분을 지워 조선인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고 민족지임의 확실한 증거임을 내세우지만 놀랍게도 동아일보 경영진은 일장기 말소사건에 관계된 두 기자에게 해 준 것은 훈장이나 포상이 아닌 파면이었다.

한술 더 떠 8월 25일 보도에서는 일장기 말소사건에 대해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했으며, 송진우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거사를 폄훼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보도는 파렴치하기까지 함을 알 수 있었다.

조선, 동아의 친일행각은 총독부 기관지보다 더 심해

조선일보는 6.15일 사설에서는 "지원병 개소식에 제 하야 조선통치사상이요 찬의를 표"하며 "황국신민 감격 감사"한다고 찬양하였다. 또 "신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전쟁 참여를 독려한다.

1937년 7.19일 자 보도에서는 '일본을 아군 황군', '일장기를 우리 일장기'로 칭하며 '조선도 전쟁의 한 부분이다'라고 주장하여 전쟁의 정당성을 알린다. 동아일보도 1937년 7.7일에 "중일전쟁을 역사적 감격이다." 6.11에는 "지원병에게 영예다, 불굴의 혼이다"라고 칭송한다.

 

 
   
  ^^^▲ 동아일보의 왜곡보도 지면
ⓒ KBS화면^^^
 
 

이렇듯 중일전쟁 이후의 두 신문의 보도 행태는 일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보다 더 일제를 찬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를 겪었던 한 할아버지는 신문보도가 어땠냐는 질문에 "조선일보는 왜놈신문보다 더했다"며 이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 당시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사는 "새로운 충신이 나타나 우리 영역을 침해한다"고 했다고 한다. 1940넌 들어서는 친일 및 일왕칭송을 더욱 노골화했다. 새해 1.1일이 되면 일장기와 일본 왕 부부의 사진을 1면 전면에다 싣고 일왕을 찬양하고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두둔했다.

이를 아이러니 하다고 해야 할까? 조선총독부가 보기에 조선, 동아는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지자 1940년에는 일제가 두 신문사에게 돈을 주면서 합의 폐간을 한다.

이들 신문은 친일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갖가지 자료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항일적 논조 때문에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했다고 했지만, 이것의 실상도 거짓임이 밝혀진 것이다.

일제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익 위해 친일 서슴지 않아

소화13년(1938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던 서춘이 한 회의에서 "우리(조선일보)도 친일 논조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경성지방 검사국의 한 문건에 그대로 담겨있어 일제 총독부가 강압적으로 폐간시킨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광고주가 일본인고로 좀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자진해서 친일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현지 국회 도서관 헌정자료실에는 일본 정부가 40년 조선과 동아의 폐간의 대가로 각각 100만원과 82만원(당시 전투기 한 대 가격이 10만원)의 매수 금액을 지불한 것으로 나와 있어 일제에 의한 강제폐간이 아닌 "합의 폐간"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조선과 동아 측이 입만 열면 강제 폐간되었다고 변명했던 것이 거짓으로 확인된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 치하의 친독 언론인 4명을 총살시키고 1명은 징역형에 처했다고 한다. 특히 <오주르쥐>의 정치부장 종르주 슈아레즈는 "프랑스를 지켜주는 나라는 독일뿐"이라며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한 기사를 쓴 대가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총살형에 처해 졌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해야 한다" 는 드골의 말과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무엇을 말해주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KBS의 특별 기획을 마무리지었다.

조선과 동아,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해야

청산하지 못한 역사 탓에 친일 세력은 더 많은 왜곡을 일삼고 있듯 조선, 동아는 과거 그들의 친일행적을 반성하지 않는다. 드러난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친일보다 항일을 더 많이 했다는 억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조선과 동아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제와 일왕을 칭송하였다. 일제치하에서 앞장서 징용을 선동한 결과 당시의 젊은 이들을 일제의 전쟁으로 내몬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감출 것이 아니라 왜곡의 늪에서 깨어나 역사와 민족 앞에 엎드려 사죄하기 바란다. 역사는 사실이며 진실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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