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시금 맞는 광복절이었다. 나라가 편안한 때를 가리켜 우리는 '태평성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작금의 사회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듯한 복잡다단한 즈음이지 싶다.
일제의 압제에서 풀려난 지도 어언 60년이 가까워 오거늘, 그래서 진정한 민주국가의 토대를 진작에 정립해야 했음은 어쩌면 당연지사라 하겠다. 진정한 민주국가의 토대는 함포고복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러나 ... 현실은 어떠한가?
여야는 정쟁으로 여전히 이전투구중이며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극빈층의 자살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금 뭔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되고 있는 것 같다. 작금 세간의 인심이 흉흉하다. 치자(治者)는 항상 후일의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치자는 누구라도 선정(善政)으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이리라.
조선왕조 때는 '실록'이란 것이 있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무지한 필자가 유추하건대 그처럼 실록을 쓰게 한 이면에는 치자가 그것을 거울삼아 반드시(!) 선정을 하라는 신하들의 암묵적이고 반면교사적인 강권이 작용한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록은 해당 임금이 죽어야만 썼으며 또한 살아있는 임금은 읽지를 못 하게 했다. 조선왕조 때 임금이 27명이나 있었지만 이걸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임금이 이걸 읽으면 당연히 고치자고 하기 때문에서였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의 왕 중에서 세종을 지금도 단연 불멸의 성군으로 추앙한다. 세종은 열여덟에 세자가 되어 스물 둘에 왕위에 올랐다.
백성들이 가뭄에 끼니를 이어 가지 못하자 심상한 세종은 궁궐 안의 200채나 되는 기와집들을 놔두고 경회루 옆에 초가삼간을 짓도록 명하였으며 그 초가삼간에서 6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가히 요순을 상회하는 성군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할 때 그의 나이는 48세였다는데 하지만 그는 안질 때문에 1미터 앞의 신하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온 몸에 등창이 발생하여 돌아눕지도 못했고 각기병 때문에 한 발을 옮겨 놓기도 힘이 들었다고 함에도 그러나 그는 하루도 경연(經筵)에 빠지지 않았다고 하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명군이라 다시금 칭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신하들이 왕의 건강을 걱정하여 흑염소를 고아 바치려 하자 질문하기를 "그 검은 염소라는 게 어느 나라 짐승인가?"라고 물었단다. 신하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짐승"이라고 하자 세종은 "어찌 임금의 병을 고치고자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짐승의 씨를 말릴 수 있는가. 나는 들지 않겠노라"라 하셨다는 것이다. 진실로 위대한 성군의 현답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최근의 국정을 보노라면 솔직히 토로하건대 장관은 어디 갔는지 종적이 묘연하고 대통령 혼자서 만기친람을 다 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삶을 속히 함포고복은 못 돼도 최소한 먹을 것이 없어 자살하게끔 방치하는 일만큼이라도 면하게 해 주는 치자가 돼 주길 갈구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디 세종과 같이 영원불멸의 성군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목하 기대한다. 또한 제발 말 좀 함부로 안 했으면 좋겠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분이 어쩌면 그리도 입이 걸단 말인가! 그처럼 마구 내뱉는 말은 결국 부메랑이며 누워 침 뱉는 격이다. 부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혜안을 지니시길 고대한다.
다시금 강조하건데 어제는 광복절이었다.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았던 압제로부터 벗어나 앞으론 배 두들기며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일만 남았다고 희희낙락했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풀려난 지도 어언 60년이 가까워 오거늘, 그래서 진정한 민주국가의 토대를 진작에 정립해야 했음은 어쩌면 당연지사라 하겠다. 진정한 민주국가의 토대는 함포고복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러나 ... 현실은 어떠한가?
여야는 정쟁으로 여전히 이전투구중이며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극빈층의 자살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금 뭔가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되고 있는 것 같다. 작금 세간의 인심이 흉흉하다. 치자(治者)는 항상 후일의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치자는 누구라도 선정(善政)으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이리라.
조선왕조 때는 '실록'이란 것이 있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무지한 필자가 유추하건대 그처럼 실록을 쓰게 한 이면에는 치자가 그것을 거울삼아 반드시(!) 선정을 하라는 신하들의 암묵적이고 반면교사적인 강권이 작용한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록은 해당 임금이 죽어야만 썼으며 또한 살아있는 임금은 읽지를 못 하게 했다. 조선왕조 때 임금이 27명이나 있었지만 이걸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임금이 이걸 읽으면 당연히 고치자고 하기 때문에서였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의 왕 중에서 세종을 지금도 단연 불멸의 성군으로 추앙한다. 세종은 열여덟에 세자가 되어 스물 둘에 왕위에 올랐다.
백성들이 가뭄에 끼니를 이어 가지 못하자 심상한 세종은 궁궐 안의 200채나 되는 기와집들을 놔두고 경회루 옆에 초가삼간을 짓도록 명하였으며 그 초가삼간에서 6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가히 요순을 상회하는 성군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할 때 그의 나이는 48세였다는데 하지만 그는 안질 때문에 1미터 앞의 신하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온 몸에 등창이 발생하여 돌아눕지도 못했고 각기병 때문에 한 발을 옮겨 놓기도 힘이 들었다고 함에도 그러나 그는 하루도 경연(經筵)에 빠지지 않았다고 하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명군이라 다시금 칭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신하들이 왕의 건강을 걱정하여 흑염소를 고아 바치려 하자 질문하기를 "그 검은 염소라는 게 어느 나라 짐승인가?"라고 물었단다. 신하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짐승"이라고 하자 세종은 "어찌 임금의 병을 고치고자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짐승의 씨를 말릴 수 있는가. 나는 들지 않겠노라"라 하셨다는 것이다. 진실로 위대한 성군의 현답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최근의 국정을 보노라면 솔직히 토로하건대 장관은 어디 갔는지 종적이 묘연하고 대통령 혼자서 만기친람을 다 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삶을 속히 함포고복은 못 돼도 최소한 먹을 것이 없어 자살하게끔 방치하는 일만큼이라도 면하게 해 주는 치자가 돼 주길 갈구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디 세종과 같이 영원불멸의 성군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목하 기대한다. 또한 제발 말 좀 함부로 안 했으면 좋겠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분이 어쩌면 그리도 입이 걸단 말인가! 그처럼 마구 내뱉는 말은 결국 부메랑이며 누워 침 뱉는 격이다. 부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혜안을 지니시길 고대한다.
다시금 강조하건데 어제는 광복절이었다.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았던 압제로부터 벗어나 앞으론 배 두들기며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일만 남았다고 희희낙락했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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