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얏” “얏” 소녀는 정신없이 펀치를 날린다. 소녀의 펀치는 날카롭다. 소녀의 손이 닿을 때마다 강렬한 파열음이 난다. 소녀의 주먹이라고 우습게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고 조그만 주먹이 제법 맵다. 소녀의 펀치를 이리저리 힘겹게 피하던 자칭 조폭 김 형은 마침내 항복을 한고야 만다.
“항복! 항복! 이젠 그만, 제발”
조폭은 비명을 지른다. 그렇게 용감한 소녀는 마침내 무섭고 사나운 조폭을 물리치고 말았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용감한 소년 유진양이 드디어 무시무시한 조폭을 물리쳤습니다. 오늘은 ‘기뻔’날.. 아참 발음이 틀렸습니다. ‘기쁜’날입니다.” 라고 조폭은 쓰러지면서도 종알종알 떠들어 댄다.
그런 말만 잘하는 시끄러운 조폭을 향하여 소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갈을 가해 조폭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아빠 미워!” 라고 쏘아 붙이는 것이다. 이 모든 험악한 일이 일어난 것은 순전히 조폭 때문이다. 절대 내 때문이 아니다.
“깨꼬닥!”
마침내 조폭의 이름에서 이 말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 조폭이 완전히 두 손 두발을 다 들고 혀까지 빼어 물고 마지막 순간에 하는 말이다. 오늘 조폭은 완전히 딸에게 당해버린 것이다.
오늘 조폭은 딸 유진이와 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철떡 같은 약속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나한테 들렸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자꾸 침을 꼴깍거리는 것이다.
“왜! 또 발동 걸렸남?”
“아이고 형님. 그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야! 완전히 이제 도사 다되셨네. 아예 종로에 자리 펴고 않으시지요.”
“이 사람아 인사동이나 대학로에 가야지 종로엔 왜가?”
“에이 형님이 아직 뭘 모르시는 구나. 파고다 공원이 자리 펴기에는 물이 젤로 좋아요.”
이러다가 어쩐지 서로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은 우리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 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물론 ‘한 컵’도 곁들였다. 그런데 어쩐지 조폭의 입담이 평소 같지가 않다. 자리에 않기만 하면 흐르는 물처럼 흘러나오던 그 구소한 말소리가 오늘은 어쩐지 자꾸만 기어들어가는 것 같다.
“왜? 무슨 일 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만 좋아 보이는 것 같더니.”
“사실은요. 형님. 오늘 집에 일찍 가서 밥 먹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누구랑?”
“유진이요.”
‘잉. 유진이!’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하는 김 형의 팔을 이끌고 김 형의 집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김 형이 그렇게 대담한 실수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계속 그런 생각이 끊이지가 않았다. ‘간이 부어도 한참 부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가 김 형을 엄호하며 들어간 집에서 위에서 말한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예견되는 일이였다.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이 그렇듯이 ‘조폭 김 형’은 딸을 무척 사랑한다.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상대편 조폭들이 숲을 이룬 속으로라도 단신으로 달려갈 스타일이다.
조폭의 딸도 조폭을 무척 사랑한다. 저녁에 아빠가 없으면 밥이 입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유진이의 예리한 안테나에 아빠가 늦을 것 같은 낌새가 걸렸다 싶으면, 엄마를 시켜서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 오늘 일찍 들어올 꺼-에-오? 같이 저녁 먹고 시-프-요”
핸드폰 밖으로까지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네 살 박이 유진이의 항상 마지막 발음이 아직 어설프다. 하지만 그 어설픈 발음이 지니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조폭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딸의 전화를 받고나면, 꼬리를 감추고 도망을 치기에 바쁘다. 그런데 가끔 오늘같이 딸의 지엄한 명령을 어긴 날은 이렇게 당하고야 마는 것이다.
나와 김 형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눈에 불꽃이 튀기던 그 순간, 이심전심으로 ‘한 컵’이 생각나는 순가에 김 형이 나에게 유진이와 오늘 전화로 맺은 그 엄숙한 약속에 대해 이야기만 했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간이 부어도 한참 부었군. 유진이와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도 식당갈 생각을 하다니,,,’ 하긴 김 형은 요즘 술을 좀 많이 마셨다. 간이 좀 붓긴 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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