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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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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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뉴스의 아버지'로 불려, 향년 92세 생을 마감

 
   
  ^^^▲ 바리톤 목소리로 미국인들로부터
ⓒ Reuters^^^
 
 

미국의 저명한 텔레비전 뉴스 앵커이자 ‘TV뉴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Leland Cronkite Jr.)는 ‘뇌혈관 질환’으로 17일(미국현지시각) 향년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1916년11월 4일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월터 크롱카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TV뉴의 신기원을 이룩한 인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 끝에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 42분 운명했다고 미 시비에스(CBS)방송 린다 메이슨 부사장이 밝혔다.

그는 미국이 인류 최초로 달 착륙한지 40주년 기념일 3일 전에 눈을 감았다.

‘식스티 미니트(60minutes)'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을 맡은 몰리 세이퍼는 크롱카이트를 ’TV뉴스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세이퍼는 “미국인 시청자들이 그에게 던지는 믿음은 그가 공정하고 정직하며 객관성을 엄격하게 지켜왔다”고 평가하고 “그는 국내 정치문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문제, 옛 소련 이후의 여파 등에 이르기 까지 가죽 구두가 닳아지도록 발로 뛰며(shoe-leather reporter) 모든 것을 취재 보도하는 인물이며, 내가 만나 본 인물 중 저널리즘의 거인이자 가장 재미있고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술회했다.

크롱카이트는 지난 1962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시비에스(CBS)의 “시비에스 이브닝 뉴스(CBS Evening News)의 얼굴이었다. 그가 내보낸 뉴스에는 존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민족 및 반전, 워터게이트 및 이란 인질위기 등 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크롱카이트는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총격으로 쓰러졌을 당시 ‘에스 더 얼드 턴즈(As the world turns)'라는 드라마 방송을 끊어 제치며 댈러스(Dallas)로부터 전해온 뉴스 속보(bulletins)를 내보낸 일은 대표적인 그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인에게 ‘앵커맨(anchorman)’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크롱카이트가 처음이다. 그는 너무 유명한 나머지 앵커맨 이라는 일반 명사를 고유명사이자 대명사격으로 스웨덴, 네덜란드에서는 아예 “크롱카이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진퇴양난의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선언한 그의 1968년의 논설로 드디어 미국의 베트남 전쟁의 여론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일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또 1977년 이스라엘과의 이집트 평화협정을 타결하기 위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초정하는 일에도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크롱카이트는 또 1960년대 우주경쟁이 한창일 때 인공위성이 궤도에 오르는데 실패한 것에서부터 달 착륙에 이르기 까지 마라톤 중계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매력적 인상을 남겼고 “닐 암스트롱이 1969년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 디뎠을 때 ”와우 ! 저 그림(화면)들을 보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1916년 미국 미주리에서 태어난 크롱카이트는 고등학생시절부터 학보사 편집자로 활약했으며, 텍사스 대학을 중퇴한 후 여러 언론사를 거쳐 UPI 통신의 전신인 UP 통신 기자로 2차 세계대전 전쟁터를 누빈 인물이었다. 그는 1950년 기자로 CBS에 입사해 1962년 C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 'CBS 이브닝 뉴스'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1981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으며 피바디상 등 주요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숀 맥머너스 CBS 사장은 성명을 통해 "월터 크롱카이트 없는 CBS 뉴스와 저널리즘, 그리고 미국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신뢰받는 앵커, 최고의 앵커에 그치지 않고 그는 위기와 비극, 승리, 위대한 순간에 미국을 이끌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의 죽음에 성명을 발표하고 “그의 풍부한 바리톤 목소리는 매일 밤 수백만 미국 가정의 거실에 전달됐으며, 모든 다른 뉴스 앵커들이 판단하는 기준을 세운 인물”이라고 기리고 “그는 우리가 자신을 믿게 했으며, 우리를 절대 절망하지 않게 했다”고 추모하고 “미국은 하나의 상징(아이콘), 하나의 존경하는 친구를 잃었다”면서 “그는 진정으로 그리워 질 것”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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