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친구가 남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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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친구가 남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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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감동은 내 가슴에 남아있다


손을 든다. 조용히 손을 들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공에서 나의 손은 갖가지 악기를 지휘한다. 흐르는 시냇물처럼 조용하던 소리가 갑자기 천둥처럼 진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별빛처럼 고요히 속삭인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내 손으로 연주해 내는 음악들 사이에서, 내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하나씩 골라낸다. 나는 그렇게 기록을 남기지 않는 작곡을 한다.

글을 쓴다. 살아가면서 도저히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느낌들이 마음을 스쳐간다. 나는 아무것이나 손에 잡히는 것으로 글을 흘려 쓴다. 책 귀퉁이에, 노트 뒷장에, 카페의 냅킨에, 혹은 손바닥에... 버스를 타고가다 그 느낌이 강렬하게 떠오르면 갑자기 버스를 내려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않아서, 삶의 한 귀퉁이에서 내 가슴을 울린 그 감동에 대해 적어본다.

그림을 그린다. 글로는 도저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내 마음에 가득 찬 뜨거움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나는 그림을 그린다. 역시 아무런 종이에나 그려놓는다. 때로는 흙바닥에 때로는 허공에 그리고 때로는 내 마음속에 그려놓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내 가슴은 항상 열정에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내 마음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갈망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충동은 때를 가리지 않고 불시에 나를 찾아온다.

강의실을 찾아 바쁜 길을 걷다가 하늘의 색깔을 보곤, 바로 옆 벤치에 주저 않아버리기도 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공기의 흐름이 나를 낚아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에 열중하다 그것이 나에게 찾아오면, 나는 잠깐 동안의 망설임 끝에 그 불시에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으러 나가곤 했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열정’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나를 찾아오면, 나는 언제나 그를 반겨 맞았다. 그와 벗 삼아 지내는 시간동안 나는 자유를 누린다. 그 자유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로운 무엇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찾아오면 언제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친구와 함께 머무는 방황을 선택한다.

나는 인생은 방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여기 머물러 있으나 이곳은 나의 안식처는 아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직장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의 일에 충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방랑자의 성실함이다. 머물다 가는 자리에 흠을 남기지 않고, 하루의 밥을 대접해 주는 이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보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의 저축이 있으면, 불시에 찾아올 여행에 대비한 여비로 유용하게 쓸 수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찾아오는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불안했다. 친구가 나를 이 세상이라는 이름의 땅에, 어제와 별다르지 않는 오늘이 이어지는 이 건조한 곳에 내버려두고 떠나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루하루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무디어지는 심장소리에 익숙해지라고 소리 없이 속삭이는 것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겁이 났었다.

그랬다. 요즘 한동안 친구가 나를 찾지 않았다. 친구가 없는 동안, 내 가슴은 감동에 무디어졌고, 내 눈은 눈물을 잃어버렸다. 내 손은 글을 쓰기에 무디어졌다. 내 발은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에 익숙함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내 몸은 무거워지고 눌러 않은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날 줄은 모른다.

마음에만 바람이 인다. 한겨울 밤새 동네를 휘감으며 울어대던 그 구슬픈 바람의 노래처럼 마음에는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슬픔이 가득하다. 문득 생각이 난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친구가 없이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기다림의 대상을 잃어버린 삶을 어떻게 견뎌가야 할 것인가.

어느 날 나는 부엌의 수도꼭지에서 물소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부웅- 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를 들었다. 선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그 모든 지겨운 일상이 갑자기 싱그러움으로 변하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슬픔의 밤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긴 세월동안 찾아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다 지쳐 나는 전날 밤 깊은 한숨과, 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에 친구에 대한 한없이 긴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일단 봇물이 터지자 맺혀있던 말들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나는 몰랐지만, 그날 밤 나는 그렇게 친구와 이별을 했는가 보다.

다음날 아침 세상은 한결 맑아보였다. 분명히 같은 하늘, 같은 땅 내가 살아오던 바로 그 세상인데 세상은 마치 아이의 보송보송한 피부처럼 솜털처럼 부드럽게 내 가슴에 안겨왔다. 친구는 나를 떠나며 나에게 세상이라는 새로운 선물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친구가 떠난 오늘도 나의 삶은 아침 공기처럼 싱그럽다. 저녁의 마지막 햇살처럼 아름답다. 밤하늘의 별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처럼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오늘도 나의 삶은 지속된다. 나는 그 옛날 친구와 함께 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본다. 그리고 나의 삶을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

발밑에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낙엽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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