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버들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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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강화를 半보수라고 지칭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

바둑은 흑백의 양극에서 서로 치고받는 게임이다. 때로는 “오직 이 한 수뿐” 이라고 할 만한 경우가 발생한다. 국소적 사활이나 끝내기의 수순에서는 더욱 그렇게 단정할 수 있다. 또 초중반의 상황에서도 대세를 가르는 곳이나 반상에 널려있는 전체대마의 안정을 도모하는 지점 등에서도 “절대”라고 해도 좋을 그런 지점이 나타난다.

“바둑의 신(神)이라도 그렇게 두었을 것이다”, 이런 투의 장담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은 상대의 착점 마다 n가지 대응수가 꿈틀대면서 천변만변 하는 것이 바둑의 묘미이다. 만약 시종일관 “오직 한수”라고 근본주의 신앙가처럼 바둑을 두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 지존이거나 하수일 것이다.

우리 현 정치판을 볼라치면 마치 “지존”들이 벌리는 별들의 전쟁 같다. 그 치고받는 말투는 정말 눈부시고 어지럽다. 며칠 전 대통령이 “중도 강화”라고 추상적인 명칭을 붙인 수를 두었다. 그랬더니, 침도 마르기 전에 세칭 좌파우파 너나 가리지 않고 와르르 떠들썩하다. 앞으로 전개될 수순도 보지 않고, 어떻게 첫수만 보고도 그런 판단을 마구 해대는지 그저 놀랍다고 할까.(와, 정말 똑똑하지?)

사실 중도(中道)라는 명사형 용어 자체도 그 내용이 천변만변 할 수 있다.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는 수학에서도 그 뜻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무정의 용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집합(set) 같은 말이다. 또 강화(强化)라는 동사형 용어 역시 그렇다. 그 세기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미리 어림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도 강화”는 그냥 붙여본 하나의 상표명이나 다름없을 정치적 슬로건일지도 모른다.

약 60여 년 전 미국에서 첫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이래로 20세기의 인류문명은 정보사회로 탈바꿈됐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의 디스플레이” 소재로 알려진 투명박막 트랜지스터를 국내에서 첫 번째로 개발했다. 그렇다면, 이 쾌거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계기로 평가될는지 모른다.

우선 이런 반가운 소식은 느낌이 시원(cool)하고 뚜렷(clear)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반도체가 바로 “중도의 물질”로 구성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일상어로 “반”이라 하면 제일감이 반(反, anti-)이고, 다음으로 반(半, semi-)이 따라오지만 반도체의 반은 후자이다. 즉 반도체란 명칭은 양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증폭작용을 주임으로 하는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기 전까지 반도체는 아무 쓸데없는 전기재료였을 뿐이다. 전류를 확실하게 전파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안전하게 막아주지도 못했다. 전기부품을 이렇게 흑백논리로 재단할 경우, 반도체 즉 양극을 떠난 중도의 부품은 애물단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체의 고유저항 값이 양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더라도 반도체로 쓸 수 있는 물질과 그렇지 않는 물질(한 예로 전기저항)이 따로 존재함을 여기서 지적하고 싶다. 이 둘의 차이는 전류를 흘리는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다. 다음은 좀 전문적인 내용이나 중도라는 말의 복잡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므로 잠시 참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반도체에서 전류의 세기는 같은 조건의 도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으나, 자유전자와 양공(positive hole)의 두 종류로 구성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들은 쌍생성과 쌍소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유무상통(有無相通)한다. 이를 경제논리로 비유하자면, 자유전자는 자본주의적 현찰통화로, 양공은 사회주의적 현물카드로 각각 대치할 수 있다.

반도체는 공학적인 방법으로 어느 한쪽을 강화할 수 있다. 이때 자유전자가 주류이면 n-형 반도체, 양공이 주류이면 p-형 반도체라고 각각 부른다. 그리고 쌍극성 트랜지스터(BJT)는 npn형과 pnp형의 두 가지가 서로 협력하여 증폭을 강화할 수 있다. 한편 전기장 트랜지스터(FET)는 n-채널형과 p-채널형의 두 가지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대규모 집적회로(VLSI) 칩을 각종 디지털 기기에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하자. 스펙트럼처럼 양도체와 부도체 양극 사이에 모든 물질을 한 줄로 늘어 세워놓는다면 반도체와 저항체 모두는 그 중간 부분에 위치한다. 그렇지만 반도체와 저항체는 서로 근본이 다르다. 전기신호에 대하여 반도체는 곡선특성(비선형)으로, 또 저항체는 직선특성(선형)으로 각각 반응한다. 반도체는 제3의 극을 이루는 독특한 전기재료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중도는 좌파와 우파 사이에 낀 적당한 중간이 아니라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 반도체처럼 전혀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중도라는 쉬어빠진 말 대신에 반우파(半右派) 또는 반보수(半保守)라고 하면 어떨까. 영어로 쿨콘(cool conservative)이라 해도 좋겠다.

중도는 정치적 천덕꾸러기이지만 종교적 구원으로 이끈다. 불가(佛家)는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수행 길을 중도라 한다. 이것이 무상무아(無常無我)의 상태인 공(空)의 적멸(寂滅)로 내성화한다. 나아가 비유비무(非有非無) 사이에 안팎의 구별이 없는 마음만 남을 뿐이다. 불가의 중도 철학은 마치 반도체의 전류 체계와 흡사하다.

덧붙여 유가(儒家)의 중용(中庸)도 한번 검토해 보자. 불가의 중도(中道)가 이중부정(二重否定)과 절연망각(絶緣忘却)의 구조를 갖는데 비해, 중용은 이중긍정(二重肯定)의 철학을 표명한다. 저항체가 저항으로서 작동하는 것은 그 회로에 알맞은 전류를 흘리기 위함이다. 유가의 중용 철학은 마치 저항체의 전류 제어와 비슷하다.

햇빛은 적외선과 자외선 사이로 가시광선이 있고, 그 가시광선의 중앙에 초록색 파장 띠가 존재한다. 나무는 대체로 받아드린 태양에너지의 가운데 토막 초록빛을 다시 자연에 내어놓으며, 초록보다 파장이 긴 쪽(적색부분)은 자체유지에, 짧은 쪽(청색부분)은 이웃과 경쟁하는데 사용한다. 따라서 나뭇가지와 이파리는 위로 옆으로 뻗치는 게 보통이다.

축령산(880m)은 남양주와 가평을 좌우로 가른다. 그 동쪽자락에 20여 개의 서로 다른 테마를 가진 정원으로 가꿔진 “아침고요수목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의 “능수(凌垂) 정원”에는 수양단풍나무를 비롯하여 능수벚나무, 능수회화나무, 능수느릅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런데 모두 한 결 같이 자기 가지를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능수버들은 가지나 이파리가 빽빽하다. 이런 나무가 생존하는 방식은 서로 조금씩 곁을 내주기 위해 능수하는 길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겸허한 분위기를 살려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듭 말해, 우리 정치판에서 큰 소리를 내는 분들은 좀 겸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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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2009-06-25 17:50:17
아이고... 그 무슨 말씀.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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