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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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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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시를 가다[10]

^^^▲ 미 국회의사당 전경
ⓒ 네이버닷컴^^^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

워싱턴은 조용하고 품위가 있다. 나무와 잔디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다. 육지로도 좋고 하늘로도 좋다. 워싱턴으로 들어가면 보스턴이나 뉴욕 혹은 시카고와 같은 도시와 어딘지 다른 감을 느끼게 된다.

마천루가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인다. 하늘에서 내셔널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의 조망은 그런 것을 한눈에 느끼게 해준다. 질서정연한 아름다운 도시, 녹지의 한복판에 한층 높이게 눈에 띄는 연필과 같은 하얀 워싱턴기념탑이 수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워싱턴이 미국의 수도인 것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인데, 도대체 일국의 수도는 최고의 인구를 수용하는 최대도시여야 한다는 이유는 하나도 없겠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워싱턴. 워싱턴은 계획된 인조도시다. 땅의 은총으로 사람들이 몰려 살게되어 점차로 발전한 그런 도시가 아니다.

미국의 모든 곳이 그러한 것처럼 처음에는 아르콘킨 인디언이 포토맥 강 연변의 땅에 살고 있었다. 최초에 온 백인은 16세기 후반의 스페인 탐험가였다. 그러나 식민지는 만들지 않았다. 백인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으로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19세기로 들어 설 때까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사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워싱턴의 참 주인

이 땅이 미국의 수도로 선정된 경위는 그대로 이 나라의 성장과정을 말해 주는 한 페이지가 된다. 독립을 내세워 영국과 싸우기 위해서 '대륙회의'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13개의 식민지의 대표가 모인 것이다.

헌법을 만든 1789년까지의 15년 동안 대륙회의를 개최한 장소는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랭커스터, 요크, 뉴요크의 순으로 매번 바뀌었다. 이유의 하나는 영국군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단 독립해서 나라를 세운 이상 중앙정부의 소재지를 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번은 뉴저지 주의 트랜턴으로 결정될 뻔했으나 무역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와 플렌테이션(농장) 농업중심인 남부와의 대립경쟁으로 남부는 북부의 트랜턴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수도를 포장마차에 싣고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독립전쟁에서 혁명군 병사들한테 급여를 지불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었으므로 수도건설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처지였다. 1787년에 헌법이 생겨 주로부터 토지를 양도받아 연방정부의 소재지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남북대립이 재연하여 최초의 후보지였던 필라델피아가 부결되었다.

퀘이커교도는 금주(禁酒)주의자여서 남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남부와 북부의 대략 중간지점인 현재의 땅으로 결정된 것은 1790년의 일이었다.

이것도 기실은 남북이 타협한 것만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초대대통령인 워싱턴이 스스로 나서서 택한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포토맥 강 옆이므로 바다로부터의 교통이 좋을 뿐만 아니라 그 바다를 통한 공격에 대해서도 이를 막을만한 충분한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또한 운하로 포토맥 강과 오하이오 강을 연결한다면 대서양에서 수도를 지나 오하이오까지 수로를 만들 수 있어 앞으로의 서부개척에 크게 유리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전하리라고 여겼던 수도의 백악관과 의사당은 1812년의 영미전쟁 때 영국군에 의해서 불살라졌다. 연방정부를 위해 만들어진 워싱턴은 정치도시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은 의원, 변호사, 로비스트, 외교관, 관리들로서 정치와 정부에 어떤 형태로건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워싱턴을 무대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정치소설이다. 기념비만해도 우선은 정치가들의 것뿐이다.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링컨 기념 당, 포토맥 지류에 떠 있는 루즈벨트 섬, 국립 역사자료 관 앞에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비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나 콘서트홀, 극장이 있는 국립무대예술센터의 케네디 센터, 미국사람이 누구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보고 있는가는 기념비의 선택에서 엿볼 수 있다.

확실히 워싱턴의 중심부는 건물이나 거리가 다같이 약간 점잔을 뺀 것처럼 우아하고 그러면서도 정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그 중심부를 떨어져서 포토맥 강변의 조지타운으로 가면 사람냄새가 물씬 난다.

식민지시대로부터 철도가 발달하기까지 버지니아 담배의 출하, 수출항이었던 이 마을에는 아직도 벽돌을 깐 도로나 어깨를 맛댄듯한 옛날 집과 창고가 늘어서 있다. 거기서부터는 지난날 중요한 교통로였던 체사피크오하이오(C&O)운하가 출발하고 있다.

현재는 상업용으로는 쓰이고 있지 않으나 리크레-션용으로 당나귀가 끄는 작은 배가 오가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엿보게 해 준다. 그런데 워싱턴은 북서, 북동, 남서, 남동의 4구로 나누어져 있다 중심부는 북서구이며 정치가나 외교관이 집중하여 살고 있으며 정치냄새가 짙은 곳도 바로 이 지구다.

사실은 워싱턴 인구의 70%이상이 흑인이다. 그들은 다른 3구에 모여 산다. 연방정부 소재지인 만큼 법적 차별이 적기 때문에 남부에서 대량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정치가나 외교관들은 정권교체와 더불어 이동한다. 옛날 이곳이 인디언들의 주거지였다고 한다면 현재의 워싱턴의 참 주인은 흑인 바로 그들인 지도 모른다.

세계사의 새로운 주인

자본주의의 자기수정이라 할 수 있는 뉴딜(New Deal) 정책이후 워싱턴의 리더십은 소극적 행동주의로 변모했다. 2차 대전 중 워싱턴은 고립주의의 전통을 완전히 포기하고 세계사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주역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세계사의 불가피한 요청이요 명령이었다. 전쟁은 끝나고 파시즘 덩어리인 적은 항복했다.

인류는 평화의 새 아침을 원했지만 세계사는 다시 분열과 냉전의 장章을 거쳐 데탕트의 신기원을 당대에 투영하고 있다. 월남전을 영도하여 미국 민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 준 이래, 걸프전, 이락전을 주도한 워싱턴은 바야흐로 득의만면한 승리의 세기를 열었다. '힘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사의 냉혹한 현실을 워싱턴은 직시하고 있다.

인디팬던스(Independence)와 인터디팬던스(Interdependence)란 말이 있다. 독립과 상호의존이다. 나라와 나라와의 인터디팬던스 없이 한 나라만의 인디팬던스는 있을 수 없다. 독립은 고립이 아니다. 상호의존은 또한 자기말살이 아니다.

이 두 개의 단어를 워싱턴은 같이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워싱턴은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하며 세계사의 주인으로 군림해 갈 차비를 갖춰가고 있다.
언제 어느 나라의 누가 더 재빨리 그것을 읽어내느냐의 경연장으로서.

워싱턴 경관

워싱턴에는 대통령관저인 화이트하우스(White House)가 있다. 국회의사당 대심원 등, 미국의 주요관청과 각국의 대사관, 공사관들이 모여 있는 미국의 심장, 세계의 심장이기도 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있는 워싱턴 기념관 앞에는 화이트하우스가 희고 청초한 모습을 자랑하며 세계뉴스의 포커스를 맞추게 한다.

초대대통령 워싱턴이 착공하였으나 완성을 못 본 채 사망, 2대 대통령 때부터 이곳에 옮긴 역대 대통령이 집무하여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정책을 입안, 타결, 실현시킨 위대한 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포토맥 강물도 이곳에서는 흐느끼며 흐른다. 국립묘지인 이곳엔 제 1, 2차 세계대전 때에 산화한 병사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남북전쟁 때의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이 장군의 저택인 리이맨션과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또 워싱턴의 도시 설계자 피에르 랑팡(P.C.L'Enfant), 북군의 세리던(Sheridan)장군의 묘도 있다.

아내와 아들과 조국과 그 자유의 역사를 지키다 쓰러진 용사의 무덤, 모자를 벗고 묵도를 하듯이 버어지니아 주에서 부는 바람도, 메릴랜드주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이곳에서는 잠시 머물다 간다.

미국의 새로운 변방을 개척하겠다던 젊고 용기 있던 사나이 J.F.케네디도 이곳에 누워있다. 그의 묘지 앞에서 타오르는 '영원의 불꽃'에는 영원의 방문객들이 꽃을 바친다. 구차스럽게 사느니 보다는 죽어서 깨끗한 이름을 남기라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들려준다.

기념 방문지

발길을 옮겨 돌아보고 싶은 방문지 두 곳이 있다. 모뉴먼트(Monument)와 스미소니언(Smithsonian)박물관이 그곳. 나무에 덮힌 조용하고 깨끗한 녹색의 도시 워싱턴, 푸른 잔디가 무성하게 깔린 모올가街의 조그만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탑이 미국 초대대통령을 기념하는 워싱턴 모뉴먼트.

미국 각주는 물론 세계 여러 곳에서 모은 돌 중의 돌로 이룩된 높이 182미터의 기념탑.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있으며, 전망대를 통해 워싱턴시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전망대에서 포토맥 강 앞쪽에 녹색으로 둘러싸여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이다.

이 기념관 내부의 큰 호올에는 프렌치의 유명한 흰 대리석 조각 "의자에 앉은 링컨 상'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근엄하게 앉아 있다.

건물 주위를 장식하는 36개의 원주는 링컨이 암살 당할 때의 합중국 36주를 나타내고 있다. 길게 뻗친 푸울Pool과 포토맥 강 사이에 끼어있는 이 기념관은 워싱턴의 아름다운 응접실이다.

다른 한 곳은 스미소니언 박물관. '인류에게 지식을 보급시키기 위해 워싱턴에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유언과 함께 당시의 금액으로 55만 달러라는 유산을 남겨놓고 영국인 화학자 제임스 스미스손씨는 죽었다(1829).

그런데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미국에 가본 일이 없었다고 하니 경탄할만한 일이다. 그의 뜻을 받아들여 1846년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창설되었다. 당초에는 노르만의 성(城)과 같은 건물에 모든 전시품이 소장되었으나. 그후 국회의사당 서쪽의 녹지대를 따라 테마별 박물관과 연구시설이 만들어졌다.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항공우주박물관과 역사기술박물관이다. 항공우주 박물관은 처음에 하늘을 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기티 호크호. '날개여,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로 알려져 있는 린드버크 대령의 스피리트 오브 센트루이스호, 제2차 대전에서 활약한 영전(零戰), 머큐리, 프렌드십7호, 아폴로 등의 우주로켓, 이런 것들을 한 곳에 수집하여 천장으로부터 매달아 놓았다. 루이 암스트롱이 가져 온 달의 암석도 있다.

미국의 문화와 기술의 발전에 관한 것을 모은 곳이 역사 기술박물관이다. 1층은 중공업관계이지만 2층에는 미국의 역사와 생활에 관계되는 것을 모아 두었는데, 이것들이 매우 재미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의 옷이 각각 본인처럼 만든 마네킹에 입혀져 전시돼 있다.

그런가하면 19세기의 시골 우편 국도 있는데 친절하게도 우편물에 소인까지 찍어주는 성의를 보여 준다. 게다가 모르스의 최초의 전보, 워신턴의 틀이齒, 제퍼슨의 독립선언서 원고를 썼던 책상, 최초로 만들어진 성조기 등 하나같이 역사의 한 장면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다음은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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