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슈퍼맨이 아닌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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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슈퍼맨이 아닌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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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부의 일기 <불의를 지나친 신문배달부>

새벽 2시에 일어나 하늘과 땅을 봅니다. 하늘을 보니 비는 오지 않고 땅을 보니 지난 밤 전혀 비 온 흔적이 없습니다. 비에 젖을 그 어떤 위험요소도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세상 곳곳이 나의 아름다운 일터입니다.

땀에 흠뻑 젖어 '사람향기' 나는 좁은 주택가에서의 나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마지막 구역인 ‘젊음의 광장’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신문뭉치들을 정리합니다.

시계를 보니, 하늘을 보니 어느덧 먼동이 트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 한 번의 '땀의 냄새'를 즐기기 위해 달립니다.

장마가 지나가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따라 사람들이 유난히도 많습니다. 그동안 비 때문에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만나지 못한 울분을 마치 오늘 다 푸는 것처럼 사람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물론 기어코 새벽까지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곳곳에 일순간에 정신력이 무너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오물들을 뱉어내는 사람, 아무데서나 주무시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괴성을 지르는 것인지 전혀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

하지만 나름대로 다 사연이 있겠죠? 오늘 스트레스 푸는 것만큼 또 자신의 일상에서 소중한 존재로서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믿고(사실 이렇게 믿는 것이 제일 편하지요. 아마?) 저는 그 사람들이 점령한 나의 투입구에 신문을 재주껏 배치시켜 놓습니다.

그저 오늘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나름대로 보람차게 끝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갑자기 한 쪽에서 어떤 여자 분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지 마! 제발!”

저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한쪽 구석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술을 마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냥 꼬부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상대친구가 그 친구를 아예 눕혀놓고 때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사연이라기에는 너무 말도 안 되는, 누군가가 말려야 하는 상황이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그저 머리를 부딪치고 있는 사람은 아예 실신단계입니다.

그 상황이 제 앞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서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용인돼서는 안 된다는 삶의 법칙을 알기에 더더욱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발이 안 떨어졌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그러면서 저는 신문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불의(不意)’ 앞에서 자아의 흔들림을 느끼면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다행히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여자친구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말린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던 한 택시아저씨의 상징 있는 클락션 소리가 다행히도 어느 친구의 폭력을 그나마 그 상황에서 중지할 수 있었습니다.

“휴우우.” 저는 한숨을 쓸어내렸습니다. 이나마에서 폭력이 멎어진 것을 보면서, 또 내가 나서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해결했다는 안도의 한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달리면서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않겠어! 불의를 보고 이렇게 멍청하게 고민하다니... 다시 내 눈 앞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주저하지 않고 내 감각이 움직이는 그대로 행동하리라!'

이런 결심을 한 내게 마치 그것을 확인하려는 하늘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의 일을 마칠 무렵이었습니다. 또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쪽에서, 구석도 아닌 도로변에서, 5시가 넘은 시간에 한 청년이 다른 청년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장차림의 이 친구는 “까불지 말라 말이야!”를 계속 내뱉으면서 20대 초반의 어린 그 젊은이를 때리고 발로 차고 옆에 있는 플라스틱 박스로 내리치고 난리가 아닙니다.

뒤에는 정장친구의 또 다른 친구 두 명이 담배를 피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 확실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사연’을 떠나서 이 상황은 제가 제압해야 할 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웃고 있는 담배쟁이들을 보니 저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멀리서 그 ‘폭력의 현장’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옆 건물의 보안요원은 상황을 그냥 감지만 하는 듯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하면서 달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신문을 들고 그 사건현장에 제일 가깝게 다가가서 신문만 집어넣고 왔습니다. 이게 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겁쟁이, 비굴한 사람. 다음 코스로 전 그저 오토바이를 타고 갑니다. 그리고 비겁하게 또 거기에서 생각합니다. ‘오늘만 참는다. 저런 나쁜 놈들!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에 걸리기만 하면...’

그런데 그 무리들이, 그 악당들이 제 앞으로 지나갑니다.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 그 악당 두목을 가운데 두고 아주 당당히 뒤풀이 할 술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저는 그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제가 왜 슈퍼맨이 아닌지 참으로 후회되는 새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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