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20년 전의 '터미네이터'도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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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20년 전의 '터미네이터'도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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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니네이터3'와 스크린 쿼터

올 여름 최대의 화제작 '터미네이터3'를 보았다. 기자가 유치원 때 등장한 터미네이터는 초,중,고,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언제나 늠름한(?) 모습으로 관객의 눈을 그 화려한 영상에 빠져들게 했다.

'터미네이터3' 예상 외로 비판도 많은 상태이고 매니아들의 극진한 '아놀드 사랑' 역시 절대 주춤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정하든 안 하든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SF 장르의 새로운 한 틀을 구축한 것은 분명 사실이고 첨단 컴퓨터 그래픽의 놀라움을 매번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간단하면서도 어쩌면 말이 될 것도 같은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관객들을 생각 이상으로 시각적 요소만이 아닌 감정적 요소의 몰입을 이끌어내었고 '아놀드 슈왈츠네거'를 완벽하게 보여준 영화임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생각보다 엉성한 종결작에 대한 비평으로 조금 의심의 여지도 가진것도 사실이지만 본 기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터미네이터가 몰고온 충격

고속도로 추격신과 TX의 신기한 재주는 물로이고 20년전의 레파토리로 등장하는 아놀드이지만 여전히 신기한(그때도 엄청난 기술이고 지금도 무시하지 못할) 기계인간의 각종 모습은 본인의 시야를 그저 압박해 버렸다.

그리고 충격적이지만 이 단순한 치고박고 부수고 돈 많이 드는 영화에 전편과는 확실히 다른 가장 현실적인 인간적 스토리라인을 가미되어 있음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적중했다고 생각한다.

20년 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윤리의 부재로 결과지어지는 각종 혼란스러운 사건들의 가장 위험한 미래, 그러나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는 없는 '심판의 날'의 메시지를 이 영화는 조금은 섬뜩하게, 그러나 잔잔히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메시지와 상영후 각종 비판의 요지는 '돈값'을 했냐 안 했냐로 정리되기가 보편적인데 '돈값'을 넘어 보편적인 착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훌륭한 연기자나 완벽한 시나리오로서만 표현이 가능한 '인류의 메시지'를 '터미네이터3'가 비록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 제공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충격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스크린 쿼터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이것의 축소여부가 한창 뜨거운 감자임에는 분명하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도래를 재촉하는 미국의 엄청난 압력이 그 어느 해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고 이런 문제만큼은 철저한 '자문화 보호주의'의 가치관을 지녔던 여러 사람들마저도 최근의 경제불황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인지는 몰라도 스크린 쿼터를 지킬려는 사람을 '집단 이기주의'로 정의 내리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반박 논리(영화 관계자들이 미국영화가 물밑듯이 들어오면 한국영화는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로 현재 한국영화계의 점유율에 있어서 '한국영화'의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라고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이들의 주장의 원인이 되는 '수치상에 의한 표'는 분명 사실이다. 10년전 '서편제', '장군의 아들'이 전국 흥행 1위를 달리던 그때와는 수치상으로 완전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쉬리'의 500만 돌풍은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로 이어졌고 이제 전국 200-3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성공작'들이 너무나 많은것이 현실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시장의 개방이 무조건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대체적인 주장이다.

약한 자의 투지로 버텨온 한국영화

하지만 이 모든것은 '철저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그들답지 않게 '철저한 경제논리의 결과'를 너무나 인식하지 못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영화의 최근 상승세는 분명 '개봉할 수 있는 조건'이 최소한이지만 무조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억달러(1200억원)가 훌쩍 넘나드는 헐리우드의 막강한 영화들과 함께 일단은 개봉할 수 있는 40억원의 엄청난(?) 투자가 된 한국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최소한의 보장은 영화관계자들의 긍정적 투지로 이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비록 할리우드보다는 열악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적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돈'으로는 흉내낼수 없는 탄탄한 시나리오을 바탕으로 하는 참으로 멋진 '스토리 라인'으로 한번 승부해보자는 '약한자의 투지'로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버티어 왔다.

그리고 '돈'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 '돈'은 없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여 '돈으로만 다 할 수는 없는 어떤것'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 대한 감동'이고 '사투리에 대한 추억'이고 '연기자 개인기에 바탕을 둔 승부수'인 것이다.

그 버팀 중에 대작들이(흥행관객수로 평가한다면 - 조폭이건 코미디이건 상관없이) 다량 속출하였다.

일단 개봉되었기에 사람들이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볼 수 있었기에 세상은 '돈'으로만 해결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아름다운 진리를 바로바로 영화평가적 요소로 활용하였고 그러면서 그것은 흥행촉진제의 역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가 사라지면 이런 영화들이 '개봉'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 '개봉'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터미네이터3' 같은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화면으로 한국시장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 철저한 경제논리 문제

분명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 주소는 '터미네이터3'는커녕 20년 전의 '터미네이터'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돈'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그렇게 자랑하는 과학인재들도 그 괴물 같은 기계인간의 정말 사람 같은, 아니 정말 기계 같은 아놀드 슈왈츠네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렇게 '터미네이터'는 우리에게 언제나 최고의 '신상품'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신상품은 영화배급자에게 '최상의 선택 1순위'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한 '경제논리'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무엇인가? 나머지는 결국 '보상판매'나 '중고시장'의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경제논리이다.

'용가리'가 그나마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단 '개봉'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봉'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투자자의 손길을 돌리게 하고, 개봉전 상영마케팅의 엄청난 고민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아울러 이 모든 '제작전 상황'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환경의 조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논리가 10년만 이어진다고 생각하자.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10년 전에는 굉장히 '주목'받던 것들의 '몰락'이 예외 없이 이 경우에 적용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정말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그 나라의 영화가 그 나라의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어떤 큰 영향의 엄청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 문제. 이것은 또 다른 철저한 경제논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예측되는 것을 굳이 부정한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예를 들면서 해외시장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분명 최고의 기술로 집약된 '신상품'으로 세계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고품으로 승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 영화계의 현실은 아직 20년 전의 '터미네이터'를 만들 능력이 없다. 그리고 '터미네이터 3'은 '메시l지'까지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볼거리 많은데 메시지까지 있는 영화를 선택할까, 아니면 볼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내용이 좋은 영화를 선택할까 하는 문제는 앞으로 문제가 안 된다. 볼거리도 있고 메시지도 있는 영화가 무조건 선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행한 현실이 우리가 '스크린 쿼터'를 다시 보아야 하는 분명한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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