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나를 끄는 힘이 있다.
물의 여러 가지 속성 중에서 나는 ‘흐름’이란 속성을 특히 좋아했다.
강가에 않아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나는 조용한 강둑에 물이 발을 적실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않아 있기를 좋아했다. 강물에 가까이 다가가면 코끝에서 물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강물도 좋지만 가까이에서 느끼는 강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강물가까이에 앉아서 느릿한 강물이 고요하게 숨죽이고 흐르며, 조용히 흘려내는 스물거리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다.
강물가까이 앉아 있으면 영롱하게 반짝이는 물길이 더 자세히 보였다. 조용하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그 고요한 물길을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했다. 물은 소리 없이 내 발길에 찾아와, 발을 적시곤 느릿한 몸짓으로 천천히 저만치 사라져간다. 물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물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를 좋아했을까.
내 앞을 지나가는 물길에 추억과 상념들을 담아서 흘려보내면, 어느새 또 다른 물길이 내 앞에 찾아와 흐르고 있었다. 물은 그렇게 끊임없이 흐르고 나는 멍하니 않아서, 내 앞을 스치곤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내 앞에는 항상 또 다른 물길이 있었다. 강물은 흐름이었다. 흘러가는 것이 강의 속성이었다. 흘러가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강물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인연들처럼, 강물은 내 앞을 스쳐서 지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삶 또한 한 번 흐르고 나면 되돌릴 수 없었다. 삶이란 영원히 한번, 단 한번 밖에 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삶의 모든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오랜만에 나선 먼 여행길에서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는 인생의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모습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
삶은 흐르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일 것이다. 또 삶은 강물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두 손으로 부여잡으면, 어느새 내 손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나는 강을 좋아하는가 보다. 흐르는 강물의 모습에서 나는 내 삶을 느낀다. 쉼 없이 다가왔다가 잠간을 머물고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져가는 인생의 모습처럼 강물은 그렇게 삶처럼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기에.
그래서 나는 강을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찾아서 멍하니 않아 있으면, 인생이 내게 가까이 와서 무어라 속삭이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강을 찾기를 즐긴다. 그리고 무심코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저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거늘, 내 삶도 저 강물처럼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까?
강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한 미소로 빙그레 웃을 뿐이다. 쉬지도 않고 결코 빠르게 달리지도 않고, 그저 꾸준히 말없이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나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 가슴을 열고 가슴에 젖어오는 강물을 느낄 뿐이다. 강물은 내 좋은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나는 내 삶의 모습을 강에서 본다. 나는 그래서 자꾸만 강을 찾는가 보다.
내 가슴속에도 강물이 있다. 소리 없이 흐르는 그 강물은 한때 이유도 없이 내 가슴에 흐르던 눈물을 담고 있었다.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삶이 슬프거나 혹은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에 감격해서 흘렸던 눈물들이, 마치 빗방울처럼 모여서 이제는 강물이 되어 내 가슴에 흐른다.
내 삶의 모든 장면들을 내 가슴에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가슴에 흐르는 강물에는 많은 기억들이 녹아 있다.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내가 느꼈던 모든 감동들과 나를 스쳐간 많은 인연들이 나에게 안겨준 애틋함들, 모든 사라져 가는 것의 아름다움들이 나에게 남긴 것들이 조용한 강물이 되어 흐른다.
소리 없이 내 가슴을 흐르는 그 강물은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간다.
그와 함께 내 삶도 또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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