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감상하려면 멀리서 보아야 한다. 먼 곳에서 보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다.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삶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저 삶을 즐기고만 싶다면 그리고 삶에서 여유와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면 떨어진 곳에서 감상하고, 분석하고, 비평하고, 즐기면 된다.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나는 교정 제일 뒤에 있는 예술관 옆의 약수터에 누워 있곤 했다. 사람이 찾지 않는 후미진 이곳은 고요함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곳이다. 예술관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서툰 음악연주만이 스치고 지나갔었다. 나는 도서관에 있기가 지겨울 때마다 매일같이 그곳을 찾았다. 약수물을 마시고 잔디밭에 드러눕곤 했다. 그리고 누운 자리에서 주변을 찬찬히 훝어 보곤 했었다.
머리를 그렇게 땅에 대고 가만히 보면 많은 것들이 보였다. 잡풀에 가까운 잔디들이 겨울날씨에 노랗게 말라있었다. 바닥에 누워서 그 노란 잔디를 보면 마치 추수할 때의 논을 보는 것처럼 노란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마른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들이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낮은 곳, 땅바닥에 누워서도 볼 수가 있는 것이었다.
풀 섶 사이로 기어 다니는 조그만 개미들도 아름다웠다. 가만히 누워있는 내 주위를 가벼운 걸음으로 뛰어다니는 까치도 아름다웠다. 고것이 손을 뻗치면 닿을 듯이 내 곁 가까이에 다가왔었다. 내가 누운 바로 자리 바로 옆에 가느다란 겨울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두어 개 남은 목숨이 질긴 잎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렸다. 금세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곳을 떠날 것만 같아서 나를 오래 동안 잔디위에 머물게 했다.
나에겐 이런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가까이에서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느껴졌고, 호흡되는 그 모든 것들이 신선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하루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들이키는 겨울약수의 시원한 느낌이 내 뱃속에서 차갑게 남아있는 것처럼 모든 것들은 그렇게 확실했다.
멀리서 보는 삶은 아름답다. 그리고 편안하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손으로 잡을 수 없고, 피부로 느낄 수 없다. 진정한 감동을 느끼려면 다가가야 한다. 내 몸에 흙을 묻히고, 잡풀들을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 일단 손을 더럽히고 나면 한결 다가가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너무 깨끗하면 안 된다.
다가가고, 느끼고, 호흡한다. 그리고 나는 내 피부로, 코끝으로, 몸에 울려오는 감동으로 세상을 느낀다. 감동에 굶주린 눈으로 보아야 하다. 그러면 온갖 잡것들이 다 의미롭다. 그렇다. 다가가서, 몸을 숙여서, 작은 것들을 보면 된다. 그러면 멀리서 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드러나서 신비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늘상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정한 그 휴식의 시간이 오면, 멀리 그곳을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막을 뛰어 올라가곤 했었다. 헉헉거리는 호흡을 약수 물로 가라앉히고 다시 나의 휴식을 즐기곤 했다. 그리고 다시 눈과 머리로 맑음으로 가득히 채웠었다.
나는 그 감동으로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왔다. 지금은 그렇게 풀 섶에 드러눕는 일은 잦지 않지만, 그 시절 내 눈과 가슴에 담았던 그 따뜻함과 그 감동의 힘으로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배워간 거시적인 흐름과 함께, 세월 속에 명명해가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과 고통과 애환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멀리서보면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그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들은 온갖 작은 잡것들의 모인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는 그 속에는 작은 것들의 아픔과 슬픔이 깃들어 있고, 보다 작으면서 보다 절실한 감동이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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