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살면서 처음 찾은 보문사
대전에 살면서 처음 찾은 보문사
  • 송인웅
  • 승인 2009.02.23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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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하고 ‘곤드레 비빔밥’

^^^▲ 2009기축년 새해맞이 행사때 보좌측에서 두번째가 필자
ⓒ 뉴스타운 송인웅^^^
대전에서 수대에 걸쳐 살면서 더군다나 중구에 3대째 살면서 대전의 보물 보문산에 있는 보문사지(普文寺址)를 처음으로 찾아 본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이랬으면서 무슨 대전과 중구 그리고 보문산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를 자책해야했다.

토요일이라 충분히 늦잠을 자고 아침7시30분에 나서 대사동5거리 보문산입구에서 송학사옆 약수터를 거쳐 이북5도민 망향탑을 지나 청년광장 아래로 한밭도서관 아래 천근오거리에 있는 천근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려는 계획으로 움직였다. 선화동에서 대사동 보문산을 거쳐 문화동까지 걷는 운동 겸 단골미용실에서 머리도 깍는 나름대로의 전략(?)이다.

^^^▲ 이정표
ⓒ 뉴스타운 송인웅^^^
그런데 문화광장입구에서 한뫼사랑산악회(cafe.daum.net/hanmoelove)총무를 만났다. 같은 교회 집사와 함께 보문산 번개산행에 나섰다는 것. 결국 예정에 없던 보문산 번개산행에 동참했다. 문화광장에서 바로 위로 오르는 산등성이를 넘고 나니 과례정이 나왔다. 과례정에서 다시 사정공원쪽으로 가다가 좌측산속 까치고개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다시 보문사지쪽으로 갔다. 대전에 살면서 처음으로 찾은 보문사지다.
^^^▲ 대전광역시기념물 제4호 표석
ⓒ 뉴스타운 송인웅^^^
보문사지(普文寺址)는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無愁洞)산1번지와 산174번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다.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지금 중구국회의원인 권선택 의원이 대전시 행정부시장으로 있을 때라고 하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다. 하여튼 근방에 권 의원가문의 일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호 보문사
ⓒ 뉴스타운 송인웅^^^
동서 약 70m, 남북 약 50m정도로, 면적은 4,100㎡다. 절의 확실한 개창 시기와 폐사시기를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 있는 유적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문산 정상에서 배나무골로 넘어가는 남쪽 경사면 7부 능선에 있다.

남향한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하여 3단의 축대를 쌓았는데, 제일 아랫단에 1개 소, 중간에 2개소의 건물터가 남아 있다. 제일 윗단에 주춧돌은 보이지 않으나 축대 바로 밑에 한쌍의 괘불지주(掛佛支柱)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괘불지주(새로 만들어 세운 것으로 보여 진다)는 높이 90㎝, 1변 길이 16㎝×35㎝로 20㎝의 간격으로 서 있다. 아랫단에는 길이 10m, 높이 1m에 달하는 축대가 있는데, 이곳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춧돌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두 번째 단에는 2개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심하게 파괴되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10호로
ⓒ 뉴스타운 송인웅^^^
절터에는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석조(普文寺址石槽) 외에 맷돌, 세탁대, 물레방아확 등의 유물이 있다. 이밖에 기와와·도자기 조각과 같은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데, 주로 조선시대의 유물이다. 이로 미루어 사찰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후기의 기록인 ‘도산서원지(道山書院誌)’에 보문사, 동학사(東鶴寺), 고산사(高山寺), 율사((栗寺) 등에서 승병을 동원하여 서원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보문사가 이 지역의 중요 사찰로서 승병을 보낼 만큼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루터기로 보면 몇 백 년은 됨직한 이제는 감이 열리지도 않는 고목이 보문사지를 둘러싸고 있다.

^^^▲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10호로
ⓒ 뉴스타운 송인웅^^^
문화재자료 10호인 보문사지석조(普文寺址石槽)는 사찰 내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던 곳이다. 석조는 전체가 4각을 이루고 밑바닥과 각 면은 평평하게 다듬어졌다. 바닥아래와 윗부분에는 고인 물을 다른 곳으로 빼기 위한 구멍이 있는데, 특히 윗부분의 구멍이 주전자 꼭지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 내렸을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려시대에 만든 작품으로 추측된다.
^^^▲ 석조아래에 있는 우물 ‘보문정
ⓒ 뉴스타운 송인웅^^^
석조아래에는 ‘보문정’이란 우물이 있다. 식수로 먹을 수 있도록 돼 있어 목을 축였다. 이제야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알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혹 보문산입구인 대사동을 한절골로 부른 것이 ‘한’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절’이 사(寺)를 의미하는 게 “혹 보문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감탄 속에 보문사 터를 구경하고 다시 시루봉을 거쳐 보문산성까지 보문산성에서 시루봉가는 쪽 중간지점에서 우측으로 내려와 야외음악당을 거쳐 추억의 케이블카 앞에 있는 ‘곤드레 비빔식당’에서 막걸리와 오징어전 그리고 ‘곤드레 비빔밥’으로 만찬을 했다. 전날 쇠주로 숙취했던 속이 산행하면서 먹은 약수로 인해 속을 비운 상태에서 ‘곤드레 비빔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 곤드레 비빔밥
ⓒ 뉴스타운 송인웅^^^
곤드레는 강원도 정선에서 나는 산나물로 부드럽고 향과 맛이 좋아 요즘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곤드레 비빔밥’은 양념간장을 두어 숟갈 넣고 젓가락으로 비벼야 잘 섞이며, 김과 함께 싸서 양념장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나 뭐래나 ‘돌쇠’총무의 말이다. 어쨌든 5시간여 보문산 번개산행으로 보문사지 구경 잘하고 ‘곤드레 비빔밥’ 처음 먹어 본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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