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전에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밤. 늦은 시간에 책상위에 덩그러니 올려놓은 사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나는 문득 다시 그런 느낌을 마주친다.
책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
그렇다. 책에는 바로 그 숱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어린시절 귀를 쫑긋 새우고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쳐다보던 바로 그 신비롭기만 하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담겨서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책이다. 저녁마다 할머니가 입을 열고 나에게 들려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곤 하던 바로 그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가,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 책이다.
사전도 책이다. 그러나 사전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사전은 재미가 없다. 할머니 손을 잡고 채근하며 기다리던 그 신비롭고, 구수하기만 하던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은, 그래서 책답지 않은 책이 바로 사전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전은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는 열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담긴 재미없는 그 메마른 글들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으며 나는 꿈을 꾼다.
그 재미없는 글들로 날개를 만들어 나는 이야기 속에서 듣기만 하던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에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해 보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담긴 지루한 단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언어라는 튼튼한 날개를 만들어서.
떠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읽으며 동경하고 꿈꾸어왔던 새로운 세계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발로 걸으며 체험하고 싶다. 그래서 또 다른 누구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로 하여금 어린시절의 나와 같은 꿈을 꾸도록 만들고 싶다.
오래 전 할머니의 이야기 주머니가 어린시절의 나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었던 것처럼. 그리고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하고, 그리고 나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구에게 전해주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사전은 바로 그 새로운 세상으로 내 발길을 내딛게 인도하는 마법의 열쇠이다.
사전을 편다. 여기저기에 암호처럼 흩어져 있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줍는다. 이제 나에게 그것은 의미 없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나는 그 신비로운 단어들을 주우며 신비로운 세계로 향하는 비밀이 숨겨진 지도의 희미한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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