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를 찾아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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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를 찾아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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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피라미드 Pyramid

^^^▲ 스핑크스와 피라밋^^^

"세혜라쟈드!, 7 대 불가사의 내력을 소상하게 들려 줘서 여간 기쁘지 않아요. 그럼, 어디 그 현장을 상상 속에서나마 만나보게 해 줄수 없겠소?"
" 샘! 제 보잘 것 없는 말씀, 마다 않고 들어주시니 오히려 제가 감사할 뿐입니다.

'인류 최초의 여행가'를 찾아가는 길에 여담삼아 주신 기회라서, 그리고 '상금'과 '선물'이 걸린 일에 대한 반대급부랄까 보상차원에서 제 얘기를 반겨 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워낙이 즐거운 얘긴데 듣지 않을 수 있겠소? 세혜라쟈드! 지금 '굿장이 여행, 뉴스타운'회원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이왕지사 내친 김에 정설 7 대불가사의를 먼저 듣고 나서 '정답'을 찍어보자는 듯 싶네요."

" 샘, 그러시면 역사적인 현장에 대해 정리한 '세혜라쟈드'의 견문기, '메스트 투어의 7 대불가사이 시나리오 원전原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 ! 땡큐~! 세혜라쟈드!"

먼저 피라미드로 모시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의 건조방법에 대해서 또는 내부구조에 관해서 무엇하나 기록을 남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라미드는 신神인 왕을 매장하는 묘인 동시에 왕의 미이라와 함께 그 시대 왕이 사용하던 진기 품인 금은보화를 묻어 두는 장소였기 대문입니다.

그곳은 가장 신성한 곳이어서 모든 것을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연했습니다. 건조의 방법이나 내부구조에 대해서 최초로 기록한 것은 이미 그 이름을 소개한 그리스의 사가史家요 '역사의 아버지'라 일컫는 '헤로도토스'에 의해서 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450년경 이집트를 방문, 실재로 관찰하고 제사장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두루 종합, 이를 꿰어 맞추어 '피라미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는 '가자'의 피라미드 군을 기술한 것 뿐으로서, 불과 20KM 남쪽의 '사카라SAKARA' 지방의 피라미드 군에 대해서나 그 남쪽의 '다하슐', '메이돔'의 피라미드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대소大小를 포함하여 81기基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기묘하게 보이는 장면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자'의 피라미드 바로 근처에 잇는 대 '스핑크스'에 대하여 '헤로도토스'는 일언반구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세혜라쟈드' 저의 가정假定과 상상으로는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할 때마다 투어리더를 동반하였지만, 바로 그 투어리더는 유감스럽게도 '기자'의 피라미드 군만을 우리의 이 위대한 역사가에게 안내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첫째, 수도首都 맴피스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피라미드가 갖는 장관은 대지臺地인 '기자'에게서만 더욱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실은 이 이유가 첫 번째 일런지도 모릅니다만, 피라미드 건조의 왕王에 대한 한층 재미있는 스토리가 '기자'의 피라미드 군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대 스핑크스의 묵살에 대해서는 이 기념물이 오랫동안 모래에 묻혀 있었다고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리비아 사막의 모래바람 공격은 그처럼 세차고 격렬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노출상태에 이른 것은 1930년대의 발굴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거대한 피라미드, 이른바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천6백년 경의 건조물로서 제 4 왕조의 '쿠푸'왕의 피라미드입니다.

건조 시 높이 146m(현재137m), 밑바닥 넓이 230m(현재는 227m), 경사 51도 52분이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관찰했을 무렵에는 사이즈가 오늘 날 보다 어느 정도 원형에 가까웠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피라미드의 사이즈가 적어진 것은 다른 건조물의 건축 석재와 마찬가니로 모진 풍상에 깎였기 때문입니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건조의 연수와 노동력을 보면, '구푸'왕은 전국민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피라미드를 건조 했습니다. 동원된 노동력은 언제나 10 만인으로서, 이것이 3 개월 교대제로 움직였습니다. 그리하여 건조용 도로를 닦는 데만 10년이 걸렸으며, 피라미드 자체는 20년이 걸려 완성됐습니다. 구조상 외부는 잘 다듬어진 대석大石을 가지런히 맞추어 쌓아 올려 덮고 있습니다.

왕의 매장실은 피라미드가 서 있는 구릉의 한 복판에 만들어진 지하실로, 그 방은 나일강에서 땅을 파, 물을 끌어들였으며 마치 물로 둘러싸인 섬처럼 고립시켜 놓았습니다. 물론 '헤로도토스'가 그 방을 실재로 본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들려 준 전승을 기록한데 불과합니다만.

다음으로 건조방법은 목재 기중起重장치가 사용됐습니다. 이 장치에 따라 피라미드의 하단에 있는 돌을 상단에 밀어 올렸습니다.

그때 기중장치는 각단에 제각기 장치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한 대의 이동용 장치를 각단의 작업시 마다 들어올리면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외부의 복개 마무리는 정상으로부터 아래쪽으로의 순서로 이뤄졌습니다.

표면에는 노동자에게 무우, 양파, 마늘을 지급하기 위해서 소비한 황금 액수가 이집트 문자로 표시돼 있습니다.

오늘 날의 이집트학자들은 이 기술記述의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3 개월간의 노동은 나일강 범람기의 3 개월, 이른바 농민들의 실업기의 노동에 해당, 이것은 실업구제의 역사役事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평균 2 톤 반의 석재의 적석積石은 그런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운반용의 사면砂面도로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혹은 피라미드의 표면에 문자가 그것도 비종교적인 경리상의 문자가 새겨질 리는 없다는 것이며, 별개의 비판碑板의 문자를 우리들 역사가는 피라미드문자라고 착오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거대함과 단정한 미美는 지금도 변함없이 아니 '헤로도토스'시대의 사람보다 강력하게 우리들을 자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천문학적인 방위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대 피라미드 기변基邊의 특성을, '헤로도토스'가 알지 못했던 그 특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자'의 구릉에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외에 몆 개의 피라미드가 더 있습니다. '쿠푸'왕의 동생 '가푸라'왕의 피라미드는 건조시의 높이 143.5m, 기변 215.25m, 경사 52도 20분, 대 피라미드보다 약간 낮지만, 이것은 정상 부의 외장外裝을 지금까지도 남기고 있는 유일한 피라미듭니다.

대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헤로도토스'는 이 피라미드도 잔혹한 왕에 의하여 쌓아 올린 것으로 2 대에 걸친 잔혹 왕의 치세 1백 6년 사이에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겪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근년에 이르러 또 다른 해석이 나타났지만 '헤로도토스'시대의 이집트인들은 잔혹 왕이라는 이미지가 없고서는 이 거대한 건조물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잔혹 왕의 스토리 또한 두 개의 큰 피라미드를 유명하게 만든 당시의 사유였습니다. '기자' 의 제 3의 피라미드는 '구푸'왕의 아들 '맨 카우라'의 조영물입니다.

건조 시에 그 높이는 66m(현재 62m), 기변 108m,51도 였습니다. 두 개의 큰 피라미드에 견준다면 현저하게 작아 보이는 크깁니다만, 만일 두 개의 큰 피라미드가 없이 이것만이 '기자'의 구릉에 서 있었다면 역시 거대한 건조물로서 사람들을 압도하였을 것입니다.

이 피라미드의 질량감은 그 조영造營당시의 왕을 '인자仁慈의 왕'이라 불리우게한 자료가 되었으며 '헤로도토스'도 이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왕묘王墓로서의 피라미드만으로 완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헤로도토스'가 알았었더라면 그의 놀라움은 더 한층 컸을 것입니다. 각각의 피라미드는 상신上神과 하신下神을 모셨으며, 이 신전 조영도 또한 양감量感에 있어서 그리고 기술 달성도에 있어서 각별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피라미드가 위성 피라미드를 동반했다는 것도 피라미드 건조와 관련해서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세 개의, '가후라'왕의 피라미드는 하나의, '맨 가후라'왕의 피라미드는 세 개의 위성 피라미드를 동반하였던 것으로 기초부분만 남아 있는 '가후라'왕의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위성 피라미드는, 모두 지금도 그대로 서 있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사라지게 하지만 피라미드는 시간에 도전한다'는 고대로부터의 전언傳言이 있습니다만, '피론'이 7 대 불가사의의 필두에 기록한 이집트의 한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기자'의 피라미드는 대부분 '피론'의 시대 그대로 지금도 계속 위용을 발하고 있습니다.

7 대 불가사의 중에서 이렇듯 전체가 남아있는 것은 오직 유일무이 피라미드뿐입니다. '세혜라쟈드'가 이렇게 많은 설명을 올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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