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삿갓이 바라본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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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삿갓이 바라본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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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공선옥 기행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펴내

 
   
  ^^^▲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표지
ⓒ 월간 말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풍의 여행을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통장 잔고 두둑한 당신들이 고급 승용차 타고 떠나는 여행, 이유야 어찌됐든 돈이 없는 나는 70년대풍의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떠났다."

지난 2월 중순, 네 번째 장편소설 <붉은 포대기>(오마이뉴스 2월 13일자 참조)를 펴낸 작가 공선옥(40)이 불혹의 나이에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길을 떠났다. "나는 애초에 '말'지에 쓸 글을 명분 삼아 '노는 여행'을 좀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무턱대고 "사람들의 삶을 좀 구경하고 싶"어서 떠난 그런 여행이다.

불혹의 나이. 사전에서 '불혹'이란 단어를 찾으면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에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설명까지 덧붙혀져 있다. 이처럼 불혹이란 단어는 공자가 인생을 회고하면서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는 나이 40세에 이르러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그런 뜻이다. 그렇다면 작가 공선옥은 불혹의 나이에 왜 시외버스를 탔을까. 그 나름대로 새로운 길찾기라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다. 작가는 무엇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 내뱉었듯이 "노는 여행"을 떠났다.

다른 사람들은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도 나처럼 그렇게 주어진 현실에 저항 또는 순응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좀 더 색다른 그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구경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구경? 그래. 작가는 애당초 그들의 삶 속에 직접 뛰어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작가 공선옥이 펴낸 기행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는 계곡을 졸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아주 차분하다. 또한 그 맑은 물 위에 원을 그리며 떠다니는 물방개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왜? 작가가 불혹의 나이에 구경한 사람들의 삶이 소롯히 담겨 있으므로.

이 책은 모두 1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약장수 지복덕 할매의 겨우살이', '고향은 지금, 디스 한 갑으로 일주일을 산다', '이 땅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은', '봄날, 세상 귀퉁이를 가다', '피어라 들꽃, 불어라 봄바람', '가난한 사람들의 첫 기착지, 가리봉', '떠나간 혹은 떠나온,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 등이 그것들이다.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작가 공삿갓이 전국 각처를 떠돌며 바라본 여러 형태의 사람살이다. 공삿갓은 첫 여행길에서 신비의 영약인 '비방 약'을 파는 약장수 지복덕 할매를 만난다. 동짓달 짧은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 그날.

지복덕 할매는 마치 박목월의 '나그네'처럼 봇짐을 등에 메고 구름에 달 가듯이 강원도 일대를 누비며 살아가는 약장수다. 지복덕 할매는 자신의 이름을 "지 복에 살고 지 덕에 죽으라는 이름이지 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디 뭣할라고 넘의 이름을 묻소? 나 잡아갈라고?" 라는 우스개 비슷한 말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그 우스개 비슷한 말 속에는 뼈가 들어 있다. '비방 약'을 팔고 있는 지복덕 할매의 기억하기 싫은 과거. 그러니까 한때 지복덕 할매가 '비방 약'을 팔다가 한두 번쯤 경찰서에 잡혀간 일이 있었다는 그런 뜻이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지복덕 할매와 같이 길을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집을 나서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지고 나온 물건을 엔간히 팔아야 집으로 갈 수 있었던" 지복덕 할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새끼들을 다 어떡하고 집을 나왔었더냐?" 고. 그러자 답변을 하는 지복덕 할매의 말은 슬프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가서 봉께 여섯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비었드만. 죽었어, 막랭이."

또한 작가는 화전민 마을이 있는 봉화에 갔다가 버스에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화전민의 후예들을 잊어도 그 화전민들의 후예들은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아무리 '빤한' 슬픔, 상투적 가난이라 해도 그 슬픔, 그 가난은 결국 내 슬픔이요, 내 가난이라는 것을"이라고.

이처럼 작가는 전국을 떠돌며 별의별 희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다. 전남 순창 모산마을의 정영섭 노인에서부터 강원도 화천. 김화의 군인들, 서울 구로동과 가리봉동의 주민과 노동자들, 경북 안동 하회마을, 그리고 서울 인사동까지 돌아다니며 이 세상살이를 충실하게 구경한다.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도심 주변에서, 혹은 산골 오지마을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부진 목소리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에는 거친 세상살이를 통해 희노애락을 초월한, 아니 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극복한 사람들의 야무진 인생이 새록새록 숨쉬고 있다.

 

 
   
  ^^^▲ 작가 공선옥
ⓒ 한국소설가협회 ^^^
 
 

작가 공선옥은 누구인가
- 여성의 운명의 굴절 섬세하게 다루는 작가

"그리하여 꾸역꾸역 영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나는 봉화를 떠난다. 봉화 읍내가 멀어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봉화를 떠나도 봉화는 거기 그대로 있다는 것을."

우리 시대 여성의 운명의 굴절을 섬세하게 다뤄왔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가 공선옥은 1964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1991년 <창작과 비평>에 단편 '씨앗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 세상>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붉은 포대기>가 있다. 공저로 <꽃잎처럼> <밤꽃>이 있다.

1993년 <여성신문문학상>, 1995년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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