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의 창건목적과 건립 절대연대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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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의 창건목적과 건립 절대연대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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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창건에 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 입증

19일 발표된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해방이후 최대의 발견이라는 1971년 무령왕릉발견에 버금갈 역사적 사건이라 할만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을 발견하였다.

지난 14일 1층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은제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00여점을 수습, 19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공개했다.

금제사리호는 사리장엄의 핵심으로 사리공 중앙에 모셔져 있었다.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이며 보주형(寶柱形) 뚜껑을 덮었는데 X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細工技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金板)에 음각(陰刻)하고 주칠(朱漆)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喜捨)하여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년)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사의 창건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文獻史)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금석문(金石文) 자료인 동시에 백제시대 서체(書體) 연구에도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유물이다.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일괄로 출토되었고 가공수법도 정교하고 세련되어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보급 유물로 평가된다.

이번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되었고 백제석탑의 사리봉안 기법과 의례를 새로이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매납(埋納)된 유물의 절대연대 확정을 통해 동시기 유물의 편년(編年)이 가능해졌다.

이번 조사는 무령왕릉 발굴과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판단된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문화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장에서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국보 중의 국보가 발견된 것"이라 했다.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이 발견된 유물 중 금제사리호는 사리장엄의 핵심으로 사리공 중앙에 모셔져 있었다.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이며, 보주형 뚜껑을 덮었는데 내외함의 이중 구조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발견에서 가장 큰 주목받은것은 '금제사리봉안기' 이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주칠한 선명한 글씨 194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글이 적혀있다. 탑을 만든 절대년도가 밝혀진 것이다.

미륵사의 창건목적과 시주,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금석문 자료이며, 동시에 백제시대 서체 연구에도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유물이다.

이기록에는 ‘백제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와 '백제왕후와 좌평사택적덕의 따님' 으로의 해석여지가 남아있어 좀더 세밀한 연구와 고증이 필요하다.

단편적인 해석으로 백제왕후가 사택적덕의 따님이라 규정하고 발표해버리면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의 졸속발굴로 인한 잘못된 전철을 밟을수 있기에 보다 신중한 해석과 접근이 절대필요한 것이다.

"백제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배치되는 사실을 적고 있어 향후 논란이 일 것"이라는 성급한 보도와 해석은 설화와 정사를 구분못하는 단순한 생각일뿐인것이다.

이번 발견은 하늘이 도왔다고 한다.

미륵사지석탑은 석탑이지만, 목탑처럼 만들어진 탑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가장 초기의 석탑이기 때문에 탑처럼 가운데 큰 기둥을 하나 세워 중심을 잡는 심주가 있고, 동서남북 네곳으로 출입구가 나있다.

목탑의 경우 심주는 그냥 하나의 커다란 기둥이기 때문에 비록 석탑으로 만들었지만, 목탑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심주에서 뭐가 나올 것이란 예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목탑의 경우 기단 하부 땅속에 심초석이 있고, 그 곳에 사리장엄장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목탑이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장치가 지상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측된다"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조심스런 의견을 제시했다.

애초에 문화재연구소 측은 심주를 해체할 계획이 없었지만, 심주의 바닥부분이 기울어져 있어 불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체수순을 밟은 것이 엄청난 발견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유물은 회를 발라 밀봉한 상태로 발견돼 1400여년이 지난 유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복원작업이 이뤄지던 미륵사지석탑에는 해체하기 이전의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이제는 국보 중의 국보로 대접받는 금제사리호 사진이 걸리게 됐다.

미륵사지석탑 하나가 백제 전 역사에서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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