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민군대에는 '人民' 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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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민군대에는 '人民' 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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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도 국가도 김일성의 피조물, 軍은 김일성 家兵이자 김정일 私兵에 불과

北 마적단 식 테러집단

北의 군대는 스스로를 '조선인민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그들에게는 조선도 없고 인민도 없다.

다만 김일성이 있고 김정일이 있고 노동당이 있을 뿐이다.

北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활동을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이 창건한 맑스-레닌주의 당이며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당 규약 및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다.

그들은 헌법조차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法化)한 김일성헌법이다"라고 하여 당과 국가를 김일성의 사유물(私有物)로 규정하였다.

당 규약에 "조선인민군은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다"라고 못 박아 군대조차 노동당의 혁명 도구요 김일성 가병(家兵)이자 김정일 사병(私兵)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인민군대내 각급 당 조직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서슴없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혁명전사가 될 수 있도록 단련"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절대충성과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北의 인민군대는 1979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창설47주년기념보고대회'에서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조직하고 강화 발전시킨 우리 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며 영광스러운 김일성 동지의 군대입니다"라고 하여 김일성 사유물로 전락한지 오랬다.

더욱 가관인 것은 1997년 3월, 북의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에 실린 "인민군의 총창(銃創)위에 사회주의 운명이 있다"라는 논설을 통해서 인민군대는 김정일 장군의 제일근위병, 제일 결사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 했다는 사실이다.

논설은 이어서 인민군대는 혁명의 수뇌부를 사수해야 하며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을 철저히 해서 김정일 장군님을 결사 옹위하는 성새(城塞)가 되고 방패가 돼야한다고 떠벌임으로서 김정일 개인의 '노예군단 총알받이' 노릇을 강요하기도 했다.

한편,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위원회의 대의원 전원회의는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 하면서 《국방위원장은 나라의 정치.군사.경제 역량의 총체를 통솔 지휘하는 국가최고의 首位》라고 하여 북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보다 상위에 있는 '절대자'임을 공개적으로 천명 했다.

1930년대 만주 땅에 횡행하던 마적단도 1970년대 트라이앵글지대 마약밀매단도 조폭도 마피아도 보스와 조직을 위해 '충성'도 바치고 나름대로 무장을 하고 유니폼도 갖추고 위계와 서열을 만들었지만 그들을 군대라 부르지는 않는다.

김정일의 불장난 우려

그런데 1995년 5월 10일자 외신은 전쟁광 김정일이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전쟁 밖에 出路가 없다》며 이 땅에서 '새로운 戰爭'이 일어나면 80%가 희생해도 20%는 행복해 질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그날 연설에서 "강한 무기를 가진 작은 나라는 큰 나라도 능히 격파 할 수 있다"고 하면서《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라고 지시 했는바 그 결과가 1998년 8월 31일 대포동1호(위성?)발사와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대량발사, 2006년 10월 9일 핵 실험으로 이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는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을 통해서 《전쟁실험》까지도 시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1999년 9월 19일자 보도에서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에 맞춰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지휘로 MIG 15와 17 등 낡은 전투기 140여대를 가지고 200여명의 '가미가제' 식 자폭결사대를 조직하여 지상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100m~200m 이하 초 저공 침투비행으로 청와대와 국방부 정부종합청사 등 특급목표를 노리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이 알려진 바도 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김정일 자신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며 1983년 10월 9일 아웅산묘지 폭파와 1987년 11월 19일 KAL858기 공중폭파 국제테러의 수괴라는 점이며, 1968년 1.21 사태와 1월 23일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에서 보듯 김정일에 과잉충성 하는 군사모험주의자들의 무모한 도발은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례로는 북 군부가 1969년 4월 15일 동해상에서 정찰임무중인 미군 EC-121기를 격추시켜 '김일성 생일선물'로 받쳤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올해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이나 3월 8일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선거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기념으로 제 2의 핵실험이나 군사도발을 감행 할 가능성을 배제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북이 만약 군사도발을 감행한다면 미군과 직접 충돌 염려가 없는 서해 NLL은 물론이요 금강산 관광객총격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경의선이나 동해선 통로개척지대에서 보다 큰 규모의 충돌을 일으키거나 해상침투로 강릉이남 동해안 원전시설 등 강력한 타격을 노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김일성이 그랬듯이 김정일도 '대를 이어' 1.21사태처럼 청와대를 직접 겨냥하는 무모한 도발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불장난이 멸망으로 이어질 것

김정일이 만약 한반도에서 불장난을 했을 때 북한주민에게 군림해온 20% 미만 특권계급의 행복을 위해서 헐벗고 굶주리며 압박받고 차별받아 온 80% '인민계급'의 희생을 강요하는 김정일에게 북의 군대가 언제 어디서 총부리를 돌려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믿는 구석은 '국방위원장' 위세를 가지고 선군정치를 내세워 나름대로 공을 들여온 인민군대 밖에 없을 것이며 지난 17일 정장을 한 군인을 TV앞에 세워야 했다는 것은 후세인이 토굴에 숨듯 김정일이 기댈 곳은 군부 밖에 안 남았다는 절박함을 뜻하는 것이다.

北 인민군총참모부 대변인이 군복차림으로 "전면적 대결"엄포를 놓는 장면에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전쟁 발발 당시 절망과 공포에 질려 허둥대던 후세인의 '공화국수비대' 말로가 연상 되었다.

북 김정일과 함께 '惡의 軸'으로 불리던 이라크의 후세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 침공에서 호전 광의 면모를 드러낸 이래 핵확산 의혹 등 국제사회 이단아 노릇을 하다가 이라크전쟁에서 개전 50일도 못 버티고 《공화국수비대가 괴멸》되면서 2003년 4월 9일 바그다트가 함락되고 살인폭압독재자 후세인의 동상이 길바닥으로 끌려내리고 말았다.

그 후 후세인은 이라크 전 발발 8개월 여 만인 2003년 12월 13일 티그리트 외곽 민가 토굴 속에 숨어 있다가 잡혀서 전범과 잔악한 인종청소 등 반 인류범죄로 재판 끝에 2006년 12월 30일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중동의 '惡의 軸' 후세인이 자랑하던 '공화국수비대'가 두 달을 못 버티고 괴멸 됐듯이 동북아의 악의 축 북의 김일성 家兵, 김정일 私兵에 불과 한 인민군대는 유사시 몇 주나 버틸지 며칠 만에 붕괴될지 그것은 김정일도 모르고 인민무력부장 김일철도 모르고 군복을 입고 TV앞에서 쇼를 한 총참모부 대변인도 모를 것이다.

농가 토굴에 숨어서 구차한 목숨을 부지한 후세인의 예에서 보듯이 김정일처럼 교활하고 비겁한 독재자는 자살할 용기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제 스스로 죽을 일은 절대로 못 한다는 사실에서 다소나마 기대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취할 태도와 대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평범한 상식을 믿어도 될 것이다. 더구나 사납게 짖는 개는 공격을 하려는 게 아니라 겁에 질려 광란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며, 후계문제와 체제불안에다가 경제난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부족으로 파산에 직면한 김정일이 사소한 말썽은 부릴지 몰라도 대규모도발이나 본격적인 남침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우리정부는《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해 나가되 상황논리에 빠져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 같은 반역자를 특사로 기용하는 '愚'를 범한다든지 어설프게 달래거나 구차하게 대화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우리군은 적의 여하한 도발도 즉각 격퇴하고 배가의 응징을 가하여 敵軍에게 상투적인 '벼랑 끝 전술'과 무모한 도발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대화가 됐건 교류가 됐건 급하고 아쉬운 것은 김정일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北은 패전이 임박한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동의하고 1976년 8.18 도끼만행 직후 UN측의 가공할 무력시위에 겁을 먹은 김일성이 '유감과 사과'를 하고 88올림픽 방해를 포기한 경우에서 보듯 감당할 수도 없는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한 抑止力》앞에서만 굴복, 타협했다는 교훈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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