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두려워하던 젊은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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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두려워하던 젊은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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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내 젊음은 저 하늘처럼 푸르다

가끔 길고도 길었던 학교 생활이 생각 날 때가 있다.

제법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흐뭇한 미소, 그리고 조금의 아픔의 추억과 함께 또렷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시간들은 하루하루 어떻게 세월이 지나가는지 살아가는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오늘의 삶에 비교해 볼 때,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의 여러 가지 추억 중 잊을 수 없는 것 하나가 시험이다.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학창시절에도 몇가지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아픔중의 하나가 시험이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 또한 사춘기를 지나면서 삶을 의식하고 살게 된 시기 이후의 삶의 1/3가량을 학교를 다니면서 보냈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그 시기는 정확하게 내가 시험에 시달리면서 보낸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막 고민하기 시작하던 그 감성이 여리던 시기에 어찌 시험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가 있었겠는가. 아직은 삶의 모든 것이 어렴풋하기만 하던 그 시절, 나에게 인생은 곧 시험과 같은 무게로, 의무와, 책임의 완수, 그리고 뒤이어 오는 해방감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월요일마다 주초고사가 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일요일이면 학교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착한 친구들을 어떻게든 구슬러서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었다. 그건 시험에 대해 초연해서가 아니었다. 눈앞에 다가오는 시험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이었다.

주말이 가까워져서 하루하루 시험이 눈앞에 다가오면 나는 점점 심한 부담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부담감이 싫어서 주초고사가 끝나는 월요일 저녁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그리고 시험 날짜가 다가올 때쯤이면 어느 정도의 공부가 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곤 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평소 시험이 끝난 바로 그날부터 공부를 하는 것을 모르던 친구들은 같이 놀고도 점수가 자신들 보다 높게 나오는 나를 ‘머리 좋은 아이’쯤으로 생각했겠지만, 나에겐 그것이 시험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무거웠던 학교가방에는 항상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들어있었다. 수업시간에 몰래 꺼내서 조금씩 읽던 그 책의 의미는 그때도 이해할 수 없었고, 기억이 아슴아슴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 역시 일종의 일탈이었다.

젊음의 날들을 이렇게 무료하게 교과서만 파고 지낼 수는 없었다. 나는 세상의 감추어진 비밀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강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이해하기도 힘들고, 소화해 내기도 어려웠던 것들을 조금씩 맛을 보고자 했다. 그것 또한 자유로움에 대한 바램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리고 나면 모든 부담은 사라지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질 것으로, 나는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대학, 책으로 천정까지 채워진 도서관, 무한정으로 넘쳐나는 것만 같은 시간, 타 학과의 게시판에서 수업시간표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관심이 있는 내용을 훔쳐들을 수 있었던 그 많던 강의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시험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더 분량이 많고, 더 부담이 많았던 시험.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졸업정원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매년 일정한 비율로 탈락을 시켜나가던 그 시험은 여전히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유난히 내 전공은 유난히 공부양이 부담스러웠던 터였다. 거의 매일같이 열흘에서 보름까지 이어지는 시험기간. 이제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시험을 앞두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으로 긴장을 풀 수도 없었다.

시험의 날들이 다가올 때, 아침 일찍,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강의실에 제일먼저 도착하여 칠판에 내가 마음에 드는 시 한 구절을 백묵으로 크게 써 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 유치한 낙서 하나 둘씩을 남기곤 했다.

아직도 내 젊음은 하늘처럼 푸르다. 조금 후 다시 그 하늘을 볼 것이다. 잠깐 동안의 시험이란 구름이 지나간 후에

그때 내가 시험의 긴장을 풀어버리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은 도서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노트 한권을 들고 학교 안 조용한 벤치에 않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아침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루의 공부를 시작했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지루함이 찾아왔다. 지루함 뿐만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험기간이면 늘 따라다니던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은, 시험의 무게만큼이나 더 심해졌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과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서 찾아낸 방법이 도서관 밖, 녹음이 우거진 교정을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것이었다.

학교 여기저기에 무수히 놓여있는 벤치에 책을 들고 않아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험기간이면 종일 이 벤치, 저 벤치를 순례하며 공부를 했다. 아침 해 뜨는 것을 보기 좋은 미술관 앞,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던 미리내 골짜기 옆,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로 오후의 나른함을 달래던 음악관 뒤의 벤치, 그리고 피곤할 때 잔디밭에 누울 수 있었던 누워서 좋았던 학생회관 앞.

따뜻한 봄날이 훌쩍 사라져 버리듯, 그렇게 시간은 어느듯 지나가 버렸다. 이제 삶은 또 다른 모습의 무거움으로 찾아오고, 세월은 항상 나를 편하게 내버려 두지만은 않는다. 그럴 때 가끔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예전, 새벽에 학교 칠판에 적어두곤 했던 그 말귀-.

- 아직도 내 젊음은 하늘처럼 푸르다. 이제 다시 그 하늘을 볼 것이다. 잠깐 시험의 구름이 지나간 후에 -

그래. ‘희망’. 바로 그것이 있었기에 당시에도 만만치만은 않았던 그 세월을 푸름으로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희망

그래. 그 희망만 놓지 않으면 오늘의 이 날들도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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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 2003-07-30 14:58:25
글의 내용도 좋지만 전 님이 올리시는 글의 양에 항상 놀란답니다. 하루에도 몇개씩 글을 올리시는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솔직히 그 소스는 다른데서 차용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물론 아닐거라 생각합니다만 저의 질투심이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군요.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제 자신한테 쇠뇌시키면서도 이렇게 글 재주가 좋으신 분들 을 보면 괜시리 한숨이 배어나온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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