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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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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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함께 하며 우리곁을 지켜온 친구와 같은 존재

 
   
  ^^^▲ 정부수립을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 (1948.8)^^^  
 

내가 "신문의 은혜"를 말하면서 너무 통속적이고 진부한 문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 '은혜'라는 말 자체가 아주 추상적이고 진부한 말이다.

'은혜' (benefaction)이란 말은 종교적인 '은총' (grace)이란 말과 '혜택' (benefit)이란 다소 속세적 표현의 중간쯤 되는 말이다.

나는 인터넷 게시판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난처한 고비 때 이런저런 네티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런 도움 (help)과 원조 (aid)까지 나는 '은혜'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갈증난 행인이 얻어 마실 수 있었던 시원한 물 한 그릇 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 그러나, 내가 "신문의 은혜"라고 말할 때의 '은혜'는 좀더 본질적인 의미인 것이다.

시골의 벽촌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본다. 지금은 매일 우편집배원이 배달해 주지만 그 당시는 신문이 격일로 배달되었다. 읽을 것이 별로 없었던 시골 마을에서는 신문이 유일한 읽을 거리였다. 나는 하루 걸러 배달되는 그 신문을 집배원으로부터 빼앗다 시피해서 읽는 게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신문에는 "없는 게 없었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온갖 소식들과 풍물들이 다 있었다. 이 나라 정치가 어찌 돌아가는지 자유당 정권이 어떻게 부정선거를 했는지, 이승만 정부가 얼마나 지독한 독재정권인지, 민주당의 한강 백사장 집회에 10만 서울 시민이 운집했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이제 이 나라에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새 세상이 오려나 보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신익희선생 서거 소식을 듣고 통분하시는 걸 보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신문들이 연재소설 난을 없애 버렸지만 그 당시는 물론 그 뒤로도 참으로 오랫동안 [연재소설]을 읽는 게 신문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연재소설]로는 [동아일보]에서 오랫동안 연재했던 박화성의 <삼국지> 연재와 [조선일보]에서 수 년간 연재했던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등이다.

신문들은 매일의 연재소설과 함께 삽화도 곁들였는데 그 삽화의 장면들이 또한 큰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그 날짜의 연재 분을 읽고 삽화를 보노라면 그 삽화의 그림들이 커다랗게 확대되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소리를 내고 인물은 살아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전화사업 (電化事業)이 거의 완료되어 사람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 당시의 시골에서는 전등불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라 밤만 되면 캄캄한 세상이었다. 초저녁에 마을 여기저기에 켜져 있던 호롱불들도 꺼지고 나면 온 동네가 밤의 적막 속에 잠기곤 했는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라도 요란하게 나면 "혹시 조조 군사가 쳐들어 온 게 아닐까?"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 만치 나는 신문 연재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신문이야말로 참으로 오랫동안 이 시대 사람들이 바깥 세상을 보는 창구였다. "유일한" 창구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제일가는 창구였음에는 틀림없다. 나의 아버지는 신문에서 세시 풍속이며, 심지어 농사철에 그때그때 점검해야 할 일들까지를 읽고 실제로 응용하였으며, 신문에 소개되는 이 나라의 여러 빼어난 관광지를 보며 이 나라의 풍광을 더욱 사랑하게도 되었다.

지금은 때로 사회부기자들에게서 그런 열의를 덜 느끼는 편이지만 멀리도 말고 20 여 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의 작고 큰 사건의 해결에는 신문기자 특히 사회부기자들이 크게 기여했었다. 때로는 사법기관의 무성의로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기사화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수사에 착수하여 드디어 진범을 잡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늘진 곳에 소외된 계층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한다거나 재난의 우려가 있는 분야나 산업체를 고발하거나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관계당국의 복지정책 개발을 돕는 활동도 많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신문의 많고 많은 기여들 중에서도 눈에 별로 띄지는 않으면서 사회 변동에 큰 역할을 한 분야도 많았다. 그것은 해방전후의 문맹퇴치 운동과 <부녀자 계몽 운동>이었다. 지금은 기업의 이윤 활동과 연계되어 약간 그 성격이 변질된 감이 있는 신문사 방송사의 <문화강좌>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대중 계몽적인 성질의 것이 아닐까.

지금은 "21세기는 여성이 주도하는 시대"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시대, <여성부>가 있고 이 나라 남성들이 이 땅의 여성들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들 여성들의 계몽을 주도한 미디어가 바로 신문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농활> (農活)이 그 뒤 성격이 변질되어 갔지만 초기에는 이들의 활동은 각 신문사가 주도한 "농촌계몽운동" (農村啓蒙運動)으로서 대학생들은 신문사의 지원 아래 부녀자들에게 한 글 가르치기, 농촌 부엌 개량, 농로 보수, 농촌 청소년들에 대한 독서지도 등을 했던 것이다.

지금 세상이 달라지고 이 나라 일반 대중과 미디어 이용자들의 생활 수준 지적 수준이 성큼 향상 되었다고 해서 그 옛날의 "은인"인 신문에 대해서 "막말"을 하며 눈을 부라려서는 안 된다. 지난 시대의 어느 한 순간 또는 어느 한 기간의 특정 기사의 논조를 문제삼지 말고 본질을 보고 실체를 보자. 그 "속 마음"을 보자는 말이다.

나라 전체가 힘이 없어서 무너진 마당에 <동아일보> <조선일보>등의 두어 개 신문사가 뭘 어쩔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우선은 겉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 허리를 굽힐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나, 그들이 펼친 숱한 사업들과 기사의 행간에 흐르는 뜨거운 조국애와 광복의지를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이들 양대 신문사가 펼친 문맹퇴치운동, 부녀자 계몽운동, <심훈>의 <상록수> 연재로 대표되는 농촌부흥운동, 경향 각지의 학교 설립을 통한 인재 양성이 모두 국력을 길러 독립하자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겠는가.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동아일보> 등의 주요 언론의 공이 제일 컸다. 아니할 말로 그 당시 이승만 정권이 이들 신문사를 완전 장악하여 통제했다면 <4.19혁명>은 거의 불가능했거나 그 시기가 훨씬 늦추어졌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 뒤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 체제를 거치면서 숱한 기자들이 기사와 관련 기관에 불려 가 문초를 받고 협박과 폭행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었다.

격동기의 거듭된 계엄 통치와 검열에 저항하면서 때로 폐간의 위협 속에서 <동아일보>는 광고 투쟁으로 맞섰고 <조선일보>의 선우휘는 <불꽃>같은 필봉을 높이 들어 민주화의 횃불을 드높이 들었다. 1980년 대의 여러 민주화 투쟁도 이런 신문 미디어와 독자들 간에 오랜 기간 형성되어 온 민주화 훈련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혼율이 이미 미국을 앞질러 버린 나라이기는 하다. 사람들은 쉽게 갈라서고 물건은 아주 빨리 갈아치운다. 진득하게 우리들 주변에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보라! 아직도 누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가를 보라! 그것은 바로 "신문"이란 이름의 친구다.

밤의 잠자리에서 깨어나자마자 우리들은 아파트와 집의 대문 안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안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그리하여 신문은 너무 오래 우리 곁에 있어서 그 존재조차 때로는 잊을 때가 있는 오랜 반려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큼 성장하고 시대의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신문과 함께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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