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사는 것이 참 좋다. 읽기를 위해서도, 도서관이나 빌려서 읽은 책을 소장하고 싶어서 사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용돈이 그리 궁한 편은 아니었지만, 책값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그래서 문예부나 교지편집부 같은 곳에서 원고정리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꽤했었다. 순전히 책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한권, 두권 사서 모은 책들이 어느 듯 내방의 벽을 빙 두르게 쌓이게 되곤 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한눈 가득히 책들이 들어온다. 한권 한권마다 사연이 있고 정이 깃든 그 책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느낌으로 잠에 빠져들곤 했었다.
책은 소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대화하고, 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에 대한 욕심만은 쉬 버릴 수가 없었다. 좋은 책을 곁에 두고 있으면, 마치 좋은 친구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서고의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아주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책들이 내 서고에 꼽히게 되는 데는 제각기 사연들이 있다. 나는 유명한 책이라고 마구 사지는 않는다. 모두가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소중한 책들이다. 서점에 서 긴 시간을 머물면서 꼼꼼히 골라가서 책을 산다. 그렇기에 내가 산 중에 허튼 책은 거의 없다. 다 하나같이 해당분야에서 중요한 책들이다.
그렇지만 내가 산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책을 사놓기만 하고 읽는데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끄는 관심분야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분야에 이끌리게 되면 그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관심을 갖던 분야의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책들의 유혹에 끌려가는 것이다.
나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데, 독서에서도 마찬가진가 보다. 지적 방랑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나다 보면, 서고에 책이 넘치게 된다. 책상 위, 방바닥, 식탁... 집 전체에 책이 가득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정리해야만 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책을 추려낼 것인가. 읽은 책이든 읽지 않은 책이든 모두가 소중하다. 하나 하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소신껏 골라서 모은 것이다. 책을 정리할 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벌써 몇 번째인가 그런 작업을 해야만 했다.
나도 어떤 사람들처럼 엄청나게 큰 서고를 만들고 내가 살아오면서 교감을 했던 책들을 모두 모아두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보통 생활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나에겐 그것은 분수에 지나친 욕심일 뿐이다. 결국 나는 책을 추려내기 위해 서고 앞에 서게 된다.
대학 때부터 스무 해를 넘게 가져오던 학교교지를 하나 빼낸다. 첫 입학 년도 것이다. 다른 교지는 다 버렸는데, 이것만은 입학 시의 감격으로 소중하게 읽던 기억 때문에 지금 까지 소중히 간직해 온 것이다. 그리고 전공분야의 책도 추려낸다. 지식은 많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때 뭍은 추억을 오늘 덜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맺은 인연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을 덜어내는 일은 내 삶의 여정의 한 부분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그곳에 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이 다가오는 세상을 달려가기 우해 비켜주어야 한다.
아픈 마음으로 하나씩 추려낸 책을 본다. 오늘은 독한 마음으로 제법 많이 추려 낸다고 했는데도, 서고에 빈자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몇 달이면 저 자리는 또 다른 새로운 소중한 책들로 금세 들어차 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려낸 책들을 끈으로 묶으며 속삭인다.
“너희들은 언젠가 서점의 서가에서 내손으로 직접 뽑아내곤, 기쁨에 들떠서 집으로 데려온 내 친구이다. 이제 우리가 놓인 자리가 멀어져도 너는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 나와 함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 곁을 떠나더라도 우린 언제나 함께일 것이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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