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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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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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건강권'이 차지하는 위치

^^^▲ <가판대>의 신문
ⓒ newsstand.co.kr^^^
“한 가지 주제의 기사가 신문지면에 여러 번 실리면 독자들의 열독률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주제를 원인분석에서 대책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흥미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게 우리나라 신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기사는 많은데 단순한 소식을 전하는 기능외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한 신문기자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치’입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신문에는 정치에 관한 기사는 매일 비슷한 기사가 끝없이 실려도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가 않아요. 그러니 자연히 큰 비중을 줄 필요가 없는 가십거리 같은 거라도 발굴해서 자꾸 싣게 될 수밖에 없지요.”

몇 년 전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비극적인 의료파업이 있기 전, 뻔히 예상되는 파국을 막아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만나게 된 그 사회부 기자는 ‘의약분업과 그로 인한 의료대란으로 전국적인 의사파업까지 이르게 된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예방적 차원의 문제제기와 토론이 필요하지 않은가’ 라고 의견을 제기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해준 충고의 말이었다.

그 자신, 사회부 신문기자로서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문기자로서의 그의 열정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가 없는 신문의 속성이 꽤나 그의 속을 상하게 하고 있었나 보았다. 그래서인지 그와의 만남은 아쉽게도 그날 한번으로 그쳤지만, 그는 당시 의료파업 문제가 진행되는 고비 고비에서마다 나에게 메일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문제제기 방법에 대해 충고를 해주기를 잊지 않았었다.

결국 의료대란은 오랜기간 동안의 전국적 의료파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그리고 파업이 끝난 후, 불행하게도 그 신문기자의 말대로 순식간에 의료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리사회의 주요논제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그가 말한 것과 똑같이 단 하나만의 예외인 ‘정치문제’만이 끝없이 신문의 지면을 달구었을 뿐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의료문제는 우리사회의 관심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 기자의 말을 기억하여 신문을 볼 때마다 신문지면을 차지하는 기사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대상이 되는 기사들이 어떤 것들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버릇이 생겼다.

그랬다. 그 기자의 말대로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에 관한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정치권의 이야기들이 세간이 관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의 지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가십거리에 머무르는 사건사고에 관한 기사와, 재태크에 관한 기사와 연예, 스포츠에 관한 기사들이 뿐이었다.

정치란 사회집단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한 산물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는 정치자체를 위한 것이 되어버렸고, 신문 또한 마찬가지이다. 표면상으로는 그러한 정치권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그 역시 정치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사회적 이슈들을 발굴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능은커녕, 흥밋거리 기사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이 머물고 있다.

신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신문에서 진정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정치가 아니라 복지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대안의 제시, 그리고 그것을 향한 국민들의 의사의 결집이 되어야 한다. 복지문제가 중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복지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복지와 사회적 분배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면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그것이 경제발전이라면 복지를 딛고 이루어지는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다 많은 핸드폰을 사용하고, 보다 많은 승용차를 소비하면 우리의 삶이 윤택해질까?

만일, 만약에 우리들이 사회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인 이슈들에 대해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대해 가지는 관심의 일부만큼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왔다면,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의견을 조율해 왔더라면, 혹은 지금이라도 우리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사람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관한 문제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좀더 올바른 사회적 합의와 대책을 세울 수도 있지는 않을까?

지금 개혁신당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개혁한다는 말인지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 몇 명이 당적을 바꾸면, 새로운 신당에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모여들면, 개혁파라 불리는 사람이나, 혹은 보수파라 불리는 사람이 정권의 헤게모니를 잡으면 세상이 단번에 달라진다는 것일까?

복지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그 복지를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막연한 개혁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치적 이슈에 대한 관점도, 개혁의 방향성도 뚜렷하지 않은 개혁신당이란 것이 생긴다면 갑자기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나는 대안 언론들의 등장을 보면서, 이라크전과 북핵문제에 관한 기사들의 전개를 보면서, 참여연대와 대안연대의 논쟁을 보면서 비로소 조금의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있었던 것이다. 기존신문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논의를 담아내고, 토론을 통해 시야를 넓혀가고, 그래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가는 매체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그 신문기자에게 말했었다. “의료를 포함해서 복지문제가 날마다 신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날이 오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결코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진정 신문의 첫머리를 장식해야 할 기사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지금 화물노조의 파업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화물노조의 파업은 예고된 것이고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라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한 말이라 생각된다. 모든 사회문제는 갑자기 불거지지는 않는다. 미리미리 갈등의 소지를 순차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때, 우리 앞에 파국적인 모습으로 겨우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정치적 이합집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신문을 보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고, 우리가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신문을 보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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