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의 푸시맨이 되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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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의 푸시맨이 되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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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슬픔을 싣고 전철은 달립니다

아침 바쁜 출근시간에 전철이 승강장에 들어와 선다. 사람들이 밀려 내린다. 그 흐름이 채 끊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그 전철 객차를 향해 우르르 밀려 올라간다.

타인의 입장으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렇다. 타인이라는 것은.

언젠가 나도 저렇게 밀려다니는 사람들 중 한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조금은 편하게 지하철을 탈 수가 있다. 전철 배차간격이 일정치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편의 전철이 특별히 더 복닥거린다는 판단이 서면, 나는 그 차편을 그냥 보내 버린다.

대부분의 경우 특별히 붐비는 지하철 바로 뒤에 따라오는, 다음 편 차량은 한결 덜 부걱거리기 때문이다. 전철 배차간격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조금의 발품을 더 팔아 출입구에서 먼 쪽으로 걸어가면 덜 떠밀리면서 전철을 탈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아침에 조금 더 일찍 나오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나는 영등포구에 살기 때문에 신길동 전철역을 잘 이용한다. 환승역이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1호선과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는 2호선이 만나는 곳이다. 또 인구밀집 지역이다. 자연히 제일 복잡한 환승역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 처음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이 역에서 무지하게 고생을 했었다. 영등포 구경을 하기로 했는데 불과 한 정거장인 영등포역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간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한번씩은 겪어 보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곳에 서 있으면 사람들에 떠밀려 다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정말 말 그대로 인간의 파도다. 사람들 속에서 떠밀리며 내 길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비애를 느낀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은 지하철 속에서 어느 듯 사라져 버린다. 오로지 군중만이 존재한다. ‘하루의 밥을 벌기 위해 이토록 악착같이 행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란 말이구나...’ 가끔 1호선을 타고 인천이나 안산 쪽으로 멀리 나가본다. 먼저 느껴지는 것이 끝없는 집의 연속이다. 다닥다닥 붙은 그 집들, 집들.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그들이 밀려나오고 밀려들어가는 곳이 바로 전철이다. 그토록 붐비고 그토록 북적이지만, 그 먼 곳에서 사람들을 전철만큼 편리하게 운송하는 수단을 달리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용기를 낸다. 길게 줄서 있는 사람의 뒤에 내 몸을 맡긴다. 사람들이 밀려 넘어질 듯이 전철에서 내리는 흐름이 채 끊이기도 전에, 이젠 사람들이 내린 조금의 공간을 향한 무지막지한 돌격이 이어진다.

도저히 승차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무댓뽀 돌진이다. 어떻게든 타야만 시간이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결의와 신념이 사람들의 눈에서 번뜩인다. 나는 줄 맨 끝에서 사람들을 슬슬 민다. 내 불룩 나온 똥배가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아저씨 살살 좀 밀어요.” 누군가 외친다.

‘무슨 소리? 내가 육중한 체중으로 밀어주지 않으면 당신은 어떻게 타시려고?’ 게다가 난 뼈만 남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밀릴 땐 밀려도 어디가 배기거나 아프진 않는 법이다? 나는 부드러운 육질의 잘 훈련된 푸시 맨이란 말이다. 이것이 아침에 내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조금의 ‘보시’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조금씩 다른 달란트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바쁜 출근길 사람들을 돕는다. ‘조금의 욕을 먹어 가며서.’

그렇게 나는 세상에 적응한다. 출근하는 방법의 요령을 익히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사람을 돕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들도 모두가 나처럼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푸시’를 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단순히 우리가 깃들어 사는 곳이 거대도시라는 것만으로 인간을 ‘짐짝’이라는 이름으로 ‘물화’ 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다. 도시란 이름의 장소에 살아가면서 점차 적응되어가는 나 자신이 때로는 싫어진다.

‘이렇게 점점 나 자신을 도시생활에 적응시켜가는 것을 과연 성공적으로 적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슬며시 생겨난다. 적응이 덜된 사람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짐짝처럼 전철에 밀어 넣어가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제대로 살아가는 삶일까? 나 스스로가 하나의 물건이 되어가는 것은 없는가.

얼마 전 대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채, 사람들과 그들의 슬픔과 비애를 가득 채우고 전철은 오늘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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