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배아저씨, 수영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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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배아저씨, 수영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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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라 나의 노년의 꿈이여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유독 물에서 하는 운동만은 즐겨했다. 잘하진 못했지만 물에서 노는 것들은 나를 알 수 없는 기쁨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별별 물놀이들을 조금씩 겪어보았지만, 유독 수영만은 배우질 못했다.

수영을 못하면서 어떻게 운동을 하냐구? 물론 정식수영은 못하지만, 겨우 물에 뜨는 정도는 되니 물에 대한 겁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물에서 하는 모든 운동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하니, 물을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수영과 물에서 하는 운동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그 재미없어 보이는 수영을 굳이 배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수영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체력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자꾸만 늘어나는 허리도 문제였지만, 낮에 해야 하는 업무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힘에 버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직종은 봄, 가을에 계절적으로 무척 바쁘다. 그래서 봄이 끝나가는 초여름. 조금 한가해지는 틈을 타서 수영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수영장에 호기롭게 찾아가기는 했는데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수영도 운동이 아니던가. 난 운동이라면 질색이었다. 결국 두 번을 수영장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운동. 그것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익숙지 못한 것이었다. 마침내 세 번째 찾아가서 나는 등록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수영을 배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나는 단지 운동이 필요할 뿐이다. 그냥 물놀이를 왔다고 생각하고 그저 놀다가만 가자.’ 사실 물속에서 그냥 슬슬 걸어 다니기만 해도 상당한 운동량이 되는 것이었다. 수영장에선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목욕’ 이라고들 했다. ‘그래 나는 수영이 아니라 목욕을 하러 왔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도 바다에서 자라온 내가 아니었던가. 처음에 발로 물장구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건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들어, 한달 먼저 시작한 반을 쳐다보다가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혔다. ‘내가 수영 배우러 왔나? 그저 놀다가만 가자.’ 그래서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강사님이 내 폼을 보더니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똥배가 나온 내 모습이 제일 흉했지만 발차기의 요령은 내가 그럴듯했다. ‘흐흠-, 그래도 내가 기본은 좀 있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순서는 플라스틱 판을 잡고 물속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완전히 소꿉장난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놀다가 가자.’ 굳이 강사님의 말을 듣지 않아도, 이 단계의 요점은 다리를 죽 펴서 발을 흔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같은 발놀림으로도 몸이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다. 물론 고개를 물속으로 깊이 넣은 상태로..

나는 날마다 칭찬의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다소 연로한 나이 때문에 사람들이 치켜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보는 사람들마다 정말 잘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런 정도의 칭찬에 평상심을 잃으면 안 된다.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목욕이나 하자.’ 나는 수없이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한 달이 더 지나서야 자유형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바닷가에서 혼자서 놀던 시절의 폼은 오히려 장애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기존에 내가 알던 모든 것을 버리고 강사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자세를 개조했다. ‘폼만 익히자. 그저 폼만 익히자. 젊은 사람들이 빨리 가는 것은 신경도 쓰지 말자. 그래도 처음 작심했던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남들이 두 바퀴를 돌때 나는 한바퀴만 돌고 놀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남들이 헉헉거리며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제법 고소했다. 그러다 강사님이 째려보면 못이긴 척하고 한바퀴를 돌곤 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내가 폼은 물론이고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 아닌가.

나는 차차 알아가기 시작했다. 수영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폼’이 중요하다. 물론 상급자가 되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겠지만, 내 정도의 수준에선 무엇보다 정확한 폼을 유지하는 것이 제대로 수영을 배우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나처럼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 폼을 열심히 익히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수영의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연치 않게, 수영이라는 운동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노인수영대회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꿈을 가슴에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노익장을 내세우며 한강을 횡단하는 것은 얼마나 폼 나는 일일까. ‘폼’ 하나로 이 세상을 헤쳐 온 내가 노년에 노인수영대회를 주름잡는 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러나 나의 그런 희망사항은 넉 달 만에 끝나야 했다. 그해 가을 나는 다시 바빠졌고, 지친 몸을 이끌고 더 이상 운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몇 달간 단련한 몸으로, 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유난히 바빴었던 그해 가을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보낼 수가 있었다.

아쉽다. 내 멋진 노년의 꿈을 그렇게 접고야 말다니. 하지만 나는 언젠가 다시 도전해 볼 꿈마저 접어버리진 않았다. 아직도 나에겐 남은 세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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