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관 부인,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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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관 부인,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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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망명하기 전 평양과 런던, 그리고 가족이 망명한 이후 그녀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북한 사회의 엘리트로서 그녀의 삶을 추적
사진은 한국의 국회의원  태영호의 아내 오혜선씨, 그녀는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출간  / 사진 : 미국의 소리방송(VOA) 기사 일부 캡처
사진은 한국의 국회의원 태영호의 아내 오혜선씨, 그녀는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출간 / 사진 : 미국의 소리방송(VOA) 기사 일부 캡처

나는 당신의 아들이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영국 런던의 한 학교 교사가 오혜선에게 말했다. 오혜선은 55세이며, 한국 국회의원(국민의힘 소속)의 아내이다. 그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차석대사로 재직하던 중 2016년 아내 오혜선, 아들들과 함께 탈북해 서울로 왔다.

미국의 소리방송(VOA)12(현지시간) 영문판 기사에서 이 같이 소개했다. 이 부부는 작은 아들 금혁에 대한 런던의 교사의 발언은 오혜선을 눈물짓게 했다고 한다.

오혜선 씨는 우리가 돌아왔을 때, 북한에는 그에게 밝은 미래가 없었다고 당시 아들 주혁 은 3학년이었다. 오혜선은 지난 2008년 북한 정부가 그들을 소환했을 때, 그녀의 남편, 작은 아들, 큰 아들 주혁과 함께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의 여자가 한국에서 출간된 직후인 23일 서울의 코리아 프레스 센터에서 VOA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소개했다. 이 책은 가족이 망명하기 전 평양과 런던, 그리고 가족이 망명한 이후 그녀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북한 사회의 엘리트로서 그녀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면서, 회고록은 오직 한국어로만 구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오혜선씨는 가족이 런던에 있는 동안 언제 북한이 잘못되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탈북 결정은 천천히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가족이 평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좋은 성적을 위해 교사들에게 뇌물을 준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아들 금혁을 입학시켰다고 말했다.

오혜선씨의 회고록 

또 오 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집단 불량배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허벅지에 칼을 맞고 집으로 돌아 온 일도 있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오혜선씨는 저는 제 아이들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 상태로 북한에서 사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다음에 북한을 떠날 기회가 있다면 다시는 북한에 오고 싶지 않다는 결정을 그때 내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3년 북한 외무성이 태영호 공사를 북한대사관 차석대사로 임명하면서 런던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런던에서 저녁 식사 전 일상적인 산책을 하는 동안, 오혜선은 왜 그들이 도망쳐야 하는지를 남편 태영호에게 계속해서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에게 북한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는 것.

몇 년 동안 남편 태영호는 침묵을 지켰지만, 아내인 오혜선에게 정말로 망명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북한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을 거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녀는나는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가질 수 있는 한 내가 북한을 떠날 수 있고, 내 가족과 단절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부와 두 아들은 2016년에 망명했다. 당시 태 공사는 한국 관리들에게 그가 탈북한 이유 중 하나는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혜선은 북한의 엘리트 가정 출신이다. 그녀는 1930년대 북한의 건국 지도자이자 현 지도자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운 오백룡과 친척이다. 그런 가족사는 북한에서의 특권적인 삶을 보장한다.

오씨는 제가 아버지의 집에 살 때, 우리는 매달 식용유, 계란, 설탕과 같은 음식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들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금수저 출신인 그녀와는 달리 남편이 될 태영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그는 오혜선도 입학한 명문 평양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베이징 외국어대학에서 교육을 계속했고 북한 외교단의 반열에 올랐다.

오혜선과 태영호의 결혼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녀는 결혼 후 태씨 가족과 함께 살게 됐을 때, 가족이 받는 배급은 쌀 뿐 이었다고 말했다. “기름도, 사탕도, 과자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지만 나는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오씨는 평범한 북한 사람으로 살기는 힘들었지만, 한국에 갔을 때 '엘리트'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고, 그에 비해 북한의 생활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았을 때, 그녀는 그들이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어 오혜선은 북한 정책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현실에서는 북한 여성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북한 남성들은 화폐나 배급으로 지급되는 저임금을 받고 북한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여성들이 북한의 주요 생계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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