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戰時) 푸티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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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戰時) 푸티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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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주의 : 민족주의, 전통과 규율 강화, 보수주의, 국가자본주의, 언론통제
- 전쟁의 정상화는 멀기만 하고...
- 줄타기의 푸틴주의 : 막다른 골목의 특징을 모두 가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 : 글로벌 뉴스 캡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 : 글로벌 뉴스 캡처

매우 잘못된 영웅주의를 꿈꾸며 장기 통치의 독재자일수록 자신의 사상과 주의(ism)’를 구축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20222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른바 푸티니즘(Putinism, 푸틴주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푸티니즘은 한 마디로 옛 소련의 영토 회복을 위한 러시아의 팽창에 나서면서 부각된 민족주의(nationalism) 성향을 뜻하는 말로, 러시아 민족의 위대의 민족주의정교회를 중심으로 규율과 전통 강조 교육, 문화, 성 문제 등 사회 전반적 보수주의강조 국가자본주의 정부의 언론 통제 등으로 구성된 것이 푸티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글은 대외문제 전문 매체인 미국의 포린 어페어즈13일에 게재된 글로서, 기고자는 마이클 키미지(Michael Kimmage)와 마리아 립먼(Maria Lipman)이다. 키미지는 미국 가톨릭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독일 마셜 펀드의 방문 펠로우이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미국 국무부의 정책 계획 직원으로 근무했으며, 립먼은 조지 워싱턴 대학의 유럽, 러시아, 유라시아 연구소의 수석 방문 연구원. 이 연구소의 새로 시작된 웹사이트 러시아의 공동 편집자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오래 갈 수 있는 군대와 보급품의 동원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목표와 명확하게 정의된 목표가 승리의 길임이 분명하다.

194112월 하와이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 사회를 동원할 수 있었다. 미국 땅에 대한 충격적인 공격 이후, 미국인들은 일본을 물리치고, 진주만 공격에 대한 복수를 하고,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제기된 위협을 제거하는 목표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그러한 목표들은 미국의 전쟁 노력을 지속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지만, 미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는 추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을 물리침으로써 미국은 아시아의 민주화(더불어 미국화-Americanization)를 장려할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고전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먼저 공격한 다음 러시아 사회를 동원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순서가 뒤집혔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는 일을 전쟁이 아니라 특별한 군사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설득력 있는 목표를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푸틴의 명시된 목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록 러시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날조됐다는 대량학살(genocide)을 중단하고, 파시스트(fascist, 극우파)가 아닌 국가를 ()나치화(de-Nazify)”하고,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러시아 궁영 여론조사기관인 VTsIOM은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전쟁 전 우크라이나를 우호적인 나라로 여겼다. 러시아인들의 11%만이 우크라이나를 적()으로 보았다.

푸틴의 전쟁을 완전한 실패로 보는 것은 유혹적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헤르손까지 러시아는 상당한 전장 손실을 견뎌냈다. 그 같은 일은 전쟁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규모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지를 오히려 공고히 했고, 키이우로부터 가공할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이 향상됨에 따라, 러시아의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전망이 사라지고 있다. 이 조건들이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국가들에 의해 부과된 다양한 제재에 직면해 있다.

푸틴에 대항하는 많은 세력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추측해왔다. 그러나 크렘린의 정권은 거의 붕괴 직전에 있지 않다. 푸틴은 러시아 사회를 탄압하고, 엘리트들을 그에게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그의 국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했다.

더 이상 외교 정책 천재로서의 명성에 기댈 수 없게 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4년처럼 크림반도(Crimea)를 우크라이나에서 빼앗거나, 2015년에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를 중동에서 진지한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게 된 대신 정부의 입장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하면서 국가와 공공 영역을 군사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쟁에 대한 의견, 그리고 전쟁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진정한 반전(反戰)인 대중들 사이에서 호전적인 반()서구주의를 촉발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그것을 이른바 전시 푸틴주의(wartime Putinism)”라고 부른다. 전쟁 전의 푸틴주의보다 더 억압적이고 덜 유연한 것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 정신(spirit of war)을 강요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대가는 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정권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 부정적인 목표의 범용성에 지나지 않는다. 고집부리며 억지를 부리는 비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푸틴주의가 돼 버렸다.

근본적으로 공허한 프로젝트인 전시 푸틴주의는 러시아의 미래와 파우스트적인 거래에 불과하다. 크렘린궁은 더 이상 성공의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현실과 상충되는 성공의 이야기를 강요하고 있다. 전쟁은 수익을 감소시키는 푸틴주의 버전(version of Putinism)을 만들었다.

* 전쟁 정상화

푸틴은 전쟁을 벌이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푸틴의 러시아 대통령 재임은 체첸(Chechnya)에서의 유전적 갈등과 몰도바(Moldova)에서의 얽히고설킨 일들로 시작됐다. 그가 총리로 재직하던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Georgia, 옛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그는 2012년 다시 대통령이 된 지 2년 만에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잠입했다. 2015년까지 러시아의 군사 및 정보기관은 중동의 시리아에 개입하고, 외국 선거에 개입하고, 아프리카에서 무력을 강화하는 파견 전략으로 돌아섰다.

푸틴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총사령관으로 촬영되고 사진 찍히는 것을 즐겼고,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대한 대중들의 축하를 소비에트 이후의 러시아 정체성(post-Soviet Russian identity)의 열쇠로 만들었다. 이는 2022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진 정치적, 문화적 궤적이었다.

그러나 그 침략은 전환점이었고, 심지어는 파열이었고, 푸틴 정부는 전쟁과 분리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작전은 푸틴의 이전 전쟁과 다른 규모이다. 정치적 탄압 수준과 마찬가지로 위험이 더 큰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의 정치적 자유를 0 (zero)으로 줄이기 위해 전쟁을 이용해왔다.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언론의 자유도, 집회의 권리도, 정부에 대한 반대를 조직할 권리도 없다. 전쟁 전에 일어난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의 투옥은 전쟁이 없었다면 더 두드러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푸틴과 야당 세력 간의 줄다리기는 푸틴이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위해 크렘린으로 돌아온 2012년과 나발니가 푸틴주의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에 고조됐다. 그러나 전쟁으로 그런 줄다리기는 사라져 버렸다.

한편, 전시 푸틴주의는 러시아 경제에 놀라울 정도로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방세계가 당초 예상했던 결과와는 상당히 빗나갔다. 전쟁이 시작되기 약 한 달 전에 푸틴에게 전쟁의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경고했던 바로 그 기술 관료들은 20222월부터 러시아 경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 군대와 일부 러시아 기업(: 야금, 자동차 부품, 기계 및 장비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옵션을 폐쇄하고 있는 반면, 다른 러시아 기업(: 식품 또는 알루미늄을 거래하는 기업)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제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의미 있는 것으로 판명될 수 있지만, 일반 러시아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어쨌든 잃을 것이 거의 없었다. 러시아 정부는 연금 수급자, 가난한 러시아인, 그리고 전쟁 노력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왔다. 그 결과로 실업률은 낮다.

러시아 중산층과 소상공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그들은 적응하고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모든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당분간 푸틴은 러시아 국민들의 묵인에 의존할 수 있다. 푸틴이 어느 정도까지 효과적인 전시 지도자로 간주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극소수의 러시아인들, 심지어 20222월에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을 사람들도 우크라이나에서 그들의 나라가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참담한 전쟁에서도 패배가 두려워질 수 있고, 푸틴은 그러한 두려움에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비록 이 시점에서 승리라는 행운의 여신이 푸틴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많은 러시아인들은 패배를 피하기 위해 푸틴이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러시아 전쟁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들은 나이가 많고,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그 나라의 외딴 지역에 사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방의 악성 행위에 대한 푸틴의 주장이 가장 강하게 반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202211월 레바다 여론조사(Levada poll)에 따르면, 55세 이상 러시아인의 81%가 서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동맹을 맺은 적이자 러시아의 일부로, 2014년부터 불법 정부 아래 살면서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광신자들과 이 광신자들을 후원하고 격려하는 서방의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인위적인 우크라이나 정체성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믿는다.

메시지 서비스 텔레그램의 블로거들과 논평가들로 구성된 특별 회의는 국영 미디어 매체들이 고무시킬 수 없는 일종의 전쟁에 대한 지지, 즉 소셜미디어(SNS)의 모든 감정적인 힘과 함께 더 자발적이고 진정성 있는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 전술에 대한 목소리 높은 비판자들이 등장한 것은 러시아 미디어 생태계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충분히 공격적으로 치러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달 동안, 크렘린궁은 이러한 목소리를 용인했지만, 역시 크렘린궁은 그들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결국, 이들은 전쟁을 지지하고 정권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전쟁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러시아 정부는 비판자들을 국외로 몰아내고, 체류자들을 위협하며, 위협받지 않는 사람들을 기소한다. 아직도 러시아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직업적인 보복, 대중의 오명, 체포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 부차(city of Bucha)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학살을 논의한 혐의로 야권의 유력 정치인 일리야 야신(Ilya Yashin)이 체포돼 징역 86개월을 선고받았다. 거의 400명의 다른 사람들이 반전 운동의 결과로 그들을 형사 소송에 회부했고, 5,500명 이상이 벌금, 구금 또는 특정 활동 금지를 받았다.

효과적인 야당이나 운동이 없는 상황에서 노골적인 반전 성명은 러시아의 정치적 영역과 러시아 여론에 대한 크렘린의 흔들림 없는 장악력을 강조하는 고립된 제스처로 기록된다. 크렘린궁은 정치 현장을 눈에 띄게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하지 않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지난 9월 시작된 군사 동원에 집중해왔다. 적어도 결과적으로 공공 영역의 군사화가 있었다. 소수의 러시아인들만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모두가 전쟁에 대한 묵인, 즉 열정적인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 묵인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대중 매체, 문화계, 교육계 모두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푸틴이 생각하는 한 지속될 전쟁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역할을 했다. 때때로 그 목표는 전쟁의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좀 더 미묘한 목표는 전쟁을 일상적이고, 러시아 생활의 유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 줄타기

전시 푸틴주의는 문제를 미루는 실험이다. 전장에서의 우크라이나의 추가적인 발전이나 심지어 군사적 현상 유지는 푸틴이 20229월에 선언한 예비군 동원령에 더해 두 번째 동원을 배치하도록 강요할 수 있으며, 이는 푸틴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 동원령은 전시 푸틴주의의 진정한 믿음을 시험할 것이다.

동원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며, 군사적 진전이 없는 동원은 충격 그 이상이다. 그것은 군사적, 정치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첫 번째 동원은 전장의 좌절 속에서 일어났고, 크렘린은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이 주기적 버전은 단순히 반복될 수 있다. 아니면 크렘린 정부가 청년 징병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전시 푸틴주의는 또 정체성을 통해 스스로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지 않는다는 암울한 임무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다.

옛 소련이 끝난 후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번영, 정치적 자유, 러시아의 유럽 통합을 약속했다. 그는 집행 과정에서 부족하였으나, 자신의 통치의 초기 단계들에서 그 목표들은 옛 소련을 위한 자극적 임무를 대표하였고, 1991년과 2000년 사이에 옐친은 러시아를 자유 시장과 유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재임 기간 동안 푸틴의 임무는 1990년대 경제 혼란 이후, 러시아 국내에서의 안정과 번영, 러시아 군대의 해외 진출, 국제 정치 테이블의 자리 등 더욱 모호해졌다. 푸틴의 2022년 전쟁은 러시아의 국제적 명성을 손상시켰고, 러시아 군사력에 대한 인식을 위축시켰다. 남은 것은 역설적인 정치적 열망인 군사화를 통한 안정을 위한 추진력이다.

전시 푸틴주의는 축소된 푸틴주의이며, 오늘날 러시아를 (러시아인들에게)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오히려 궁지에 몰린 권력일 것이다. 푸틴이 러시아를 장기 침체의 사이클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열광적인 언론 캠페인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립과 제재모두는 러시아의 경제적, 기술적 쇠퇴에 기여할 것이다. 푸틴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우울한 줄타기를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푸틴의 전쟁 경로는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A 지점에서 다시 A 지점으로 이어지는 순환 경로(circuitous route)이다. 실패를 피하기 위한 미세 조정된 방법인 전시 푸틴주의는 막다른 골목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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