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에 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모퉁이에 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발길이 머무는 그곳

나는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는 것이 좋다. 내가 하염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내 삶 또한 그와 같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인생의 끝이 어디로 향해 있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어딘지 모르는 길을 걷는 것처럼, 정처 없이 걸어가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발길 닫는 대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걷다보면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 모퉁이다. 길거리 모퉁이에서 내 발길은 멈추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곳에 선다.

모퉁이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먼지, 담배꽁초, 휴지조각과 껌 종이가 있고 약간의 칙칙함과 어둠이 있다. 저녁 무렵의 약한 태양은 모퉁이에까지 자신의 온기를 골고루 나누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모퉁이에는 또한 약간의 쓸쓸함이 있다. 그렇지만 모퉁이에는 또한 왠지 알 수 없는 포근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 발길은 모퉁이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바람이 인다. 바람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일어나 거리를 휩쓸고 지나온다. 바쁜 걸음으로 뛰어온 바람은 모퉁이에 부딪는다. 바람은 모퉁이에 다가와서 빙글빙글 맴을 돈다. 자신이 몰고 온 먼지며 떨어진 잎이며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모퉁이에 놓여져 있던 것들과 한데 섞으며 바람은 잠시 그곳에 머물다 사라져 간다.

바람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모퉁이에 머물며 휘휘 돌던 바람은 다시 빙글빙글 돌며 바쁜 걸음을 재촉해 거리 저쪽으로 사라져 간다. 거리에서 나타나 거리로 사라져간다. 잠간 어딘가 또 다른 어느 모퉁이에서 머물다가, 다시 다른 거리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바람의 달음질은 그렇게 끝이 없다. 다시 바람이 인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서 바람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다시 길을 걷는다. 가끔 바람이 내 발길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렇게 거리에 머물고, 바람은 내 곁에 머물다 떠나간다. 서서히 어둠이 깃들어 온다. 제법 많은 골목을 스쳐왔다. 천천히 길을 걷다보면 왠지 모르는 평안이 나를 감싼다. 나는 그렇게 평화로움 속에서 길을 걸으며 하루의 오후를 누린다.

다시 모퉁이가 나타난다. 길에는 곳곳에 모퉁이가 있다. 조금씩 느낌은 다르지만 모퉁이에 서면 왠지 모르는 그리움들이 느껴진다. 다시 모퉁이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조금의 피로가 느껴진다. 벽에 기대어 거리 저쪽을 바라본다. 다시 바람이 인다. 바람은 내가 기댄 모퉁이에 잠시 멈추어 빙글빙글 돌다가 하늘로 올라간다. 바람을 따라 모퉁이에 머물던 온갖 미물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모퉁이에는 갇혀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머무는 모퉁이에 달려오는 바람에 휩쓸려 빙글빙글 맴을 돌면서도, 모퉁이에서 솟구쳐 오르는 바람을 따라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참으로 오랜 동안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쓸려 다니면서도 오래동안 머물던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큰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긴 기다림이 지난 후 이윽고 큰 바람이 시원하게 거리를 휩쓸고 그곳에 나타나면, 그때 지루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왔던 것들은 마침내 그곳을 떠날 것이다. 모퉁이의 낮 익은 벽돌과 낡은 빗물 홈통과 헤어진 벽보들을 스치고 지나서 그것들은 마침내 저 먼 곳 어딘가를 향해 떠나갈 것이다.

바람이 불 것이다. 구석진 그곳, 후미진 곳, 버려진 곳, 온갖 것들이 정체되어 있는 그 곳에. 그래서 그곳은 항상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찾아올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먼지와 온갖 잡스런 것들의 커다란 꿈이 머무는 그곳에, 가슴 설레며 언제나 기다림으로 술렁이는 그곳에 언젠가 큰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다시 바람이 이는 것이 느껴진다. 마침내 바람이 인다. 빙글빙글 도는 바람의 힘찬 비상을 따라 모퉁이에 머물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마침내 찾아온 기다림의 끝에 그것들은 내 귀를 스치고 머리를 스치며, 저 위 어둠이 깃든 높은 하늘을 향하여 마침내 치솟아 오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