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나 자신이 극도의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으면 쉬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면종복배하는 거개의 사람과는 달리 시종여일하는 사람은 내가 아무리 고립무원의 지경일지라도 의리를 지킨다는 얘기이다.
함께 근무할 땐 '호형호제'하며 흉금을 털어놓고 인생을 논하던 직장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그런데 이런저런 조건에 맞춰 연초에 우리회사를 그만두고 전에 근무했던 경쟁사로 다시금 옮겨갔다. 그런데 얼마 후에 "장인이 작고하셨다"며 전화를 걸어왔기에 병원 영안실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분은 "얼마 전의 모친 별세 때도 와 줘서 고마웠는데 이렇게 또 와 줘서 고맙다"면서도 넌지시 내 걱정을 해 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아내와의 냉전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울분을 못 이겨 그만 가출하여 동가식 서가숙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안식구랑은 요즘 사이가 어때?"라고 묻기에 여관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더니 그 분은 대뜸 반말로서 "인생을 왜 그 따위로 사냐?"면서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순간 참으로 당혹스러웠고 또한 어이가 없었다. '감탄고토'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씻을 수 없는 말 한마디로 인해 그게 바로 평생의 상처가 되어 원수로 반목하며 지내는 것 또한 세상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다.
연전에 그분은 나와 함께 같은 직장에서 관리과장으로 근무했었다. 그런데 평소 비양심적이고 표리부동했던 사장이 그의 '전가의 보도'를 다시금 꺼내 구조조정 차원이라며 그분을 권고사직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그분은 "대학에 다니는 자녀가 둘이나 있어서 전 나갈 수 없습니다. 영업이라도 할 테니 영업부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하여 결국 당시 영업부장이었던 내 부서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업의 '영' 자도 모르는 분이었기에 그는 내게 "부디 많으신 도움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정말로(!) 물심양면으로 그렇게 도움을 많이 드렸고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여는 사이까지도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분은 그처럼 비인간적인 대우의 사장에게 환멸을 느껴 스카웃 형식을 빌어 다른 직장으로 나와 함께 옮겼던 것이기도 했다.
그는 나보다도 연상이었지만 내가 그처럼 자신을 극진히 도와줌에 감읍하여 그동안은 내게 반말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회사를 옮기고 나니 그처럼 조변석개하는가 보아서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평소에 그분을 진실한 친형처럼 생각했기에 내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요, 미주알 고주알까지도 죄 일러바치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옮기자마자 그처럼 마치 양두구육처럼 돌변한다 생각하니 '서운함'의 차원을 떠나 차라리 배신을 당한 듯한 처참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도 어차피 여관에서 돈을 주고 자야 할 형편이었기에 당초엔 병원 영안실에서 1박을 해 주기로 작심을 하고 갔었다. 하지만 그의 이중인격에 그만 실망하여 그 즉시로 그 곳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 후로 평소의 내 성격이 개떡같아서인지 아무튼 그분과는 일언반구 대화 없이 지내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예쁘게 만개한 꽃이라도 열흘이상 가질 못하지만 사람은 영원토록 시종여일하고 무변하기에 그러한 노래도 나왔을 터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말이 있으며 반대급부를 위한 베풂은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심오한 철학까지는 실현하기 힘든 일개 필부일 뿐이다. 그에 비해 가히 경제적 절체절명의 내 처지를 지금도 무변하게 항상 걱정해 주는 어떤 지인은 어제도 전화를 걸어와 술을 사 주마고 했다. 하지만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는데 조만간 내가 식사라도 대접할 요량이다.
나는 감탄고토하는 사람보다는 역시(!) 무변하게 시종여일 하는 사람이 좋다. 이러한 나는 에고이스트일까, 아니면 성질이 더러운 놈일까?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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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부라 생각하시고 모르는 척 예전 그대로 실실 웃어 보세요.
그럼 그분이 좀 미안해질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