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피아노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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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피아노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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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길 좋아하다

음악의 맛을 조금씩 알아갈 무렵이었다. 당시 시내에 나가면 조그만 골목에 올망졸망 화랑이며, 전시장, 음악다방 같은 것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어릴적 부터 즐겨 찾던 헌책방 골목이 있었고, 그 한 켠에 카톨릭 문화원이 새로 자리를 잡았다. 지하층에 있는 강당에서 비 상업적 영화도 상영하고, 연주회도 하곤 했다.

책을 보다 머리에 쥐가 나면 시내에 나가 한바퀴 화랑들을 순례하는 게 일과였다. 그림을 잘 모르기도 하고, 대부분의 지방 전시회란 게 그저 그렇고 그랬지만 그래도 한바퀴 돌고 오면 가슴이 후련한 것이 이게 바로 살아있는 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큰 재미는 그렇게 몇 년간을 그 골목 순례를 계속하다보니, 화랑에서 일하는 안내 아가씨들과 제법 친해졌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면 과자나 사탕도 주고, 돈 받고 파는 팜프렛을 그냥 줄때도 있었다. 마치 작가가 자리를 비운 시간에는 마치 VIP처럼 작가들이 잘 않는 자리에 대신 폼을 잡고 않아있기도 해봤다.

그 순례행진 중 한가기자 추가가 되었다. 바로 카톨릭 문화원 지하실에 들리는 것이었다. 대개 그냥 돌아오게 되지만 운이 좋으면 큰 걸 건지게 된다. 저녁에 연주회가 있는 날이면, 대개 낮에 리허설을 하는데, 리허설엔 돈도, 입장권도 필요가 없었다. 한번도 쫒겨나지 않고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가득한 실제 연주회에서 듣는 것보다, 조용한 가운데서, 말도 오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았었다. 그래서 그곳은 내 순례의 중간에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는 기착지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번은 리허설이 있는데, 순전히 아이들만 복작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추등학생 정도가 아니라 유치원 정도 아이들이었다. “아이고 오늘은 날 잘못 잡았네!” 생각하면서도 순전히 다리를 쉬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않았다.

그런데 그날 뭔가가 내 마음에 진하게 와 박혔다. 연주를 잘하는 아이들의 화려한 테크닉이 아니라, 힘들게 손가락을 움직여 가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피아노 건반에서 울림으로 울려나는 그 감동이 내 가슴을 갑자기 적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뭐든 마음을 먹으면 시작을 잘한다. 집에서 열심히 찾아보니 내 초등학교 음악책 뒷 편에 붙은 종이 건반이 있었다. 이거면 됐다. 그리고 초등학교 음악책을 열심히 보며 악보와 건반의 관계를 익혔다. 나는 어머니가 예전에 쓰시던 바이엘(예전엔 어린이 바이엘 이란 게 없었다) 악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무척 아팠었다. 통 안 쓰던 근육을 안 쓰던 방식으로 사용하려니 손에서 쥐가 절로 났다. 그래도 종이 건반위에서 쉬운 곡 정도는 슥슥 쳐나갈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흐밍을 하면서 종이 건반을 두드리는 음악의 즐거움이란.

손가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연습을 식탁 아래서도, 버스 안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시간만 나면 했다. 주위사람들이 이상한 놈 다보겠다는 식으로 봐도 상관없었다. 난 원래 이상한 놈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손가락이 부드럽게 돌아가고, 악보가 눈에 익자 바이엘 연습을 시작했다. 한 30번까지는 공짜였다. “피아노 알고 보니 쉽구나.” 란 승리의 미소가 입가에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까지였다. 그 뒤로는 하나하나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의 음악에 대한 갈증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만큼은 되었다. 마침 그 당시 나이가 한참 들어서 피아노에 입문했다는 르빈스타인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로 다른 피아니스트처럼 몸을 흔들지도 않으며, 그렇게 젊잖게 않아서 건반을 울리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음악에 대한 그 뜨거운 마음은 수줍음이 많은 나를 교회 소 예배실에 있는 피아노에 않게 만들었다. 교회에 사람이 가장 없을 만한 시간에 하루 한 두 시간씩 진짜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었다.

소 예배실은 평일에는 기도실로 쓰였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하게 소리를 죽여서 조용하게 연습을 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칫 쫒겨 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기도 중이던 집사님이 “학생, 그것 말고 찬송가 한번 쳐봐요!”라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로 심약한 나의 교회에서의 피아노 연습을 끝이 났다.

남은 곳. 학교 음악관이 있었다. 불운 하게도 거의 내차지였던 미술관과는 달리, 음악관엔 친구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가난해도 하지만, 음악은 가난한 사람이 하기 힘든 전공이 아니었던가. 특히 기악이란 것은. 가난한 민중을 사랑하던 나는 그래서 음악관엔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피아노는 배워야겠기에 음악관 빈 연습실을 기웃거리며 빈방에 들어가 연습을 했었다. 가난한 학교의 몇 안되는 연습실은 시간마다 빼곡히 연습스케줄이 짜여져 있었는데,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그것이 없었다. 그 시간 음악관은 내 차지였다. 그러다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올라온 “교수님이 학생은 무슨 과야?” 라고 묻는 한마디에 음악관에서도 쫒겨났다.

그때가 바이엘의 60번 곡을 치던 중이었다. 나는 그 60번이 참 좋았다. 나중에 나를 비롯해 동생들이 차례로 직장을 얻자, 조금의 여유가 생긴 어머님이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으셨다. 막내 제수씨를 볼 때 즈음이었다. 나는 제수씨를 않혀 놓고 온 가족 앞에서 60번을 연주했다.

다들 피아노를 제법 치는 세 며느리들이 뭐라고 생각을 했던 간에 나는 그날 참 즐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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